장날 / 김해남
오일장이 서는 날, 집을 나선다. 고무줄 바지에 스웨터 하나 걸치고 나서면 흙마당에 이는 바람처럼 푸석거리던 마음도 진득하게 가라앉는다. 말 그대로 닷새만에 한번 서는 오일장은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여유와 인정이 있다. 자본의 힘이 시장구조를 장악한 도시의 시장에 비해 아직도 원시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게 시골의 오일장이다. 나즉한 장터로 들어서면 텃밭에서 키운 푸성귀 몇 단으로 전을 벌려 조무래기들의 과자 값이라도 마련하려는 할머니들이 부스스한 머리를 이고 나물단처럼 모여 앉아 봄볕을 쬐고 있다. 눈물겨운 가난도 봄볕이 될 수 있는 게 시골의 오일장이다. 나이 든 농부 한 사람이 꼬깃꼬깃 접은 천원짜리 지폐를 침을 발라가며 세고 있는 철물점 앞을 지난다. 낯설지 않은 모습이다. 몇 버인가를 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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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 25.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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