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착하지 못한 충혼(忠魂) -성삼문(成三問) 신주 봉안 논쟁- 번역문 또 아뢰기를, “홍주(洪州) 노은서원(魯恩書院)의 유생인 유학 최건(崔謇) 등의 상언(上言)에 ‘충문공(忠文公) 성삼문(成三問)의 사판(祠版)은 그 부인이 직접 쓴 필적인데, 오랫동안 묻혀 있다가 다행히 다시 나타났습니다. 다만 제(題)한 방법이 또 예식(禮式)과 달라 가묘(家廟)에서 모시기에는 적합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차마 다시 묻을 수도 없어 그대로 노은서원의 위판(位版) 뒤에 봉안하였으니, 후세의 사람들이 감회를 일으키는 것은 진실로 여기에 있고, 선현이 의기(義起)하여 깊은 뜻을 둔 것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중간에 대신 제사를 지내는 자손이 모시고 갈 것을 청하였으니 이는 선현이 이미 정한 의론에 크게 위배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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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5. 18.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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