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슬픔 / 이정숙
몇 년 동안 방치해 두었던 난이 작년 봄에 꽃을 피웠다. 그때도 뜻밖에 찾아온 손님처럼 반가웠지만 꽃이 진 뒤 기다림도 그리움도 키우지 않고 무심히 세월을 흘려보냈다. 첫 만남의 감격이 컸기에 아주 잊은 건 아니어서 가뭄에 콩 나듯이 눈길을 주었을 뿐인데, 어럽쇼, 귀띔도 없이 그는 내게로 다시 한 발짝씩 다가왔다. 그러니까 작년에 이어 두 번째 만남이다. 동지섣달 꽃은 아니지만 나 좀 바라봐달라고, 나한테 사로잡혀달라고 묵시적 신호를 보내며 장엄한 호흡을 시작했다. 제구실을 다하기 위해 온 힘으로 꽃대를 밀어 올리는 저 생명의 불꽃. 세 개의 꽃대에 다섯, 일곱, 열한 개의 마디마디에 터를 잡더니 꽃 고추마냥 연둣빛으로 봉긋하게 부풀어오르며 날이 갈수록 여인네 버선코 모양을 하고 수줍은 듯 금방이라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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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2. 18.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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