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되어 소망한다 / 구효서
내 어린 날의 추석은 포도와 누나의 향기로 그윽했다. 그때만 해도 내 고향 강화도엔 포도가 거의 생산되지 않았다. 누나는 대나무 바구니 가득, 서울의 시장에서 산 포도를 들고 고향집을 찾았다. 남정임 윤정희 같았던 머리, 소매가 잠자리 날개처럼 얇고 투명했던 옷, 그리고 이국의 향기를 닮은 화장품 냄새. 희디 흰 얼굴. 차부에서 내려 고향집까지의 시오리 길을 걷는 동안, 사람들은 문밖에 나와 서울내기가 되어 돌아오는 누나를, 뒷모습이 다 사라질 때까지 우두커니 바라보곤 하였다 한다. 누나가 집에 머무는 며칠 동안 고향집은 포도와 누나의 향기로 은은했다. 결코, 맹세코 잊을 수 없는 건 포도와 함께 가져왔던 두 개의 라면. 온 식구가 나누어 먹었던 그 라면 맛은 서울이 어떤 곳이라고 떠드는 백 마디 천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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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6. 25.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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