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포트 하나 / 허세욱
스탠포드 캠퍼스에선 후버타워의 종이 시간마다 쟁기질했다. 처음 울릴 때부터 조신스러웠지만 그 여운도 길고 아련했다. 마치 보리밭 긴 긴 이랑 끝으로 사라지는 나른한 뻐꾸기 울음 같았다. 그 종소리가 여섯 번 울리면 배가 고팠다. 그리곤 주섬주섬 책상을 정리하곤 연구실 문을 나섰다. 찰그락 잠기는 소리가 기다란 복도를 흔들었다. 연구실 뒷마당에서 내 자전거를 끌고 나왔다. 고물 자전거는 삐그적거렸다. 캠퍼스 동남쪽엔 작은 구릉이 있었고 그 구릉엔 교수들의 주택이 마을을 이루었다. 종교학 교수의 집 차고 옆에 달린 행랑방을 빌려서 한여름을 나기로 했다. 허름한 목조 건물인데다 동쪽과 남쪽이 빽빽한 정원수라서 짙은 잎 냄새에 꼬리한 곰팡내까지 배여 있었다. 자전거를 몰면서 널찍한 캠퍼스를 가로지를 때 내 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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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8. 13.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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