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나이 열대여섯 살 적 단오 무렵, 할머니는 앓고 일어난 나를 앞세우고 윗말 진외가에 가셨다. 진외가에는 기력이 쇠진한 진외할아버지께서 드시는 개장국이 늘 가마솥에서 고아지고 있었다. 할머니는 내게 그 개장국을 얻어 먹여서 원기를 돋워 주려는 속셈이셨던 것 같다. 황금 햇살 아래 누런 보리밭 사잇길로 어질어질한 현기증을 느끼면서 할머니를 따라간 기억으로 보아서 그때 나는 몹시 쇠약했던 모양이다. 진외가집은 식구들이 모두 들에 나가고 조용했다. 할머니와 나는 한약 내가 진동하는 사랑에 들어 진외할아버지께 절을 했다. 얼굴이 백짓장처럼 하얀 진외할아버지가 형형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시며 헐헐 숨찬 소리로, 한참 클 놈이 제 할아비를 닮아서 시원치 못하다시며 혀를 끌끌 차셨다. 대청에 나와서 진외할머니께 인사..
수필 읽기
2021. 12. 26. 08:39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 Total
- Today
-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