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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할머니의 세월 / 목성규

부흐고비 2021. 12. 26. 08:39

내 나이 열대여섯 살 적 단오 무렵, 할머니는 앓고 일어난 나를 앞세우고 윗말 진외가에 가셨다. 진외가에는 기력이 쇠진한 진외할아버지께서 드시는 개장국이 늘 가마솥에서 고아지고 있었다. 할머니는 내게 그 개장국을 얻어 먹여서 원기를 돋워 주려는 속셈이셨던 것 같다. 황금 햇살 아래 누런 보리밭 사잇길로 어질어질한 현기증을 느끼면서 할머니를 따라간 기억으로 보아서 그때 나는 몹시 쇠약했던 모양이다.

진외가집은 식구들이 모두 들에 나가고 조용했다.

할머니와 나는 한약 내가 진동하는 사랑에 들어 진외할아버지께 절을 했다. 얼굴이 백짓장처럼 하얀 진외할아버지가 형형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시며 헐헐 숨찬 소리로, 한참 클 놈이 제 할아비를 닮아서 시원치 못하다시며 혀를 끌끌 차셨다.

대청에 나와서 진외할머니께 인사하고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이 녀석이 앓고 나더니 영 밥을 못 먹어요. 개장국 좀 먹이려고 왔어요." 진외할머니께서 손수 부엌으로 들어가시더니 내 앞에 개장국 뚝배기가 놓인 소반을 가져다 놓으셨다. 그런데 할머니가 개장 국 뚝배기를 들여다보시더니 벌떡 일어나서 내 손목을 잡아끌며 온 집안이 떠나가게 소리를 지르시는 것이었다.

"나같이 박복한 년이 친정이 다 무슨 소용이여, 내가 다시는 친정에 오면 풍산홍씨 성을 갈 거여. 아버지 어머니 죽으면 머리 풀구나 올 테니 그리 알아요.”

큰사랑 문이 벌컥 열리며 진외할아버지의 더욱 하얘지신 얼굴이 나타났다. 나는 진외할아버지가 무서워서 자지러지며 할머니 치마폭 뒤에 숨었다. 무슨 큰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진외할아버지가 무서웠다.

"나더러 개장국을 떠다 먹으라면 가마솥을 통째로 떼어다 먹을까봐서 늙은 어머니가 꾸부정거리며 손수 떠다 바쳐요. 그렇거든 맘먹구나 떠다 주든지. 건더기도 없이 멀건 국을 떠다 주면서ㅡ, 이게 딸년 대접하는 거여, 거렁뱅이도 이리 대접할 수는 없어.”

할머니는 소리소리 지르셨다. 기억에 의하면 개장국 뚝배기는 할머니 말처럼 그리 무성의한 건 아닌 것 같았는데 왜 할머니 마음에는 차지 않으셨을지 모르겠다.

할머니는 내 손목을 잡아끌고 횡하니 대문을 나섰다. 진외가에서 얼마쯤 떨어진 후에 돌아보니 진외할머니가 대문 밖에 나와서 우리 조손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서 계셨다.

남풍에 누런 보리밭이 바다처럼 무겁게 너울졌다. 보리밥 건너 동네 뒷산 기슭에 늙은 밤나무에 매여 있는 그네가 수직으로 늘어져서 조용히 멎어 있었고, 물색 옷을 입은 동네 새댁, 색시들의 자지러지던 웃음소리도 그네처럼 조용히 멎어 있었다. 또 한 봄이 지나가는 것이었다. 할머니가 허물어지듯 길옆 보리밭둑에 주저앉더니 빈 그네 터를 건너다보며 서럽게 우셨다. 나는 파도치는 누런 보리밭을 보면서 할머니의 울음이 그치기를 기다렸다. 현란한 새소리, 눈부신 녹음, 멀미나는 보리밭의 누런 물결에 안겨서 어깨를 들썩거리도록 우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단오 무렵이면 눈에 밟힌다. 개장국 뚝배기가 왜 할머니를 그처럼 서럽게 했을까.

할머니와 내가 집에 도착하자마자 뒤따라서 진외가 행랑어멈이 개장국 옹배기를 이고 왔다. 할머니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진외가 행랑어멈은 가져온 개장국을 옹솥에 앉히고 아궁이에 뭉근하게 불을 지펴 놓고 갔다. 잠시 후 개장국 냄새가 추녀 밑으로 감돌았다. 나는 그 개장국을 먹고 원기를 찾았다. 그리고 할머니가 시키는 대로 진외할아버지께 몸 다 났다고 인사를 드리러 갔다. 내 문안 인사를 받으신 진외할아버지가 학 날개 펴듯 활짝 안색을 펴며 좋아하셨다. 진외손주의 건강 회복이 병약한 노인에게 기쁨이었던 모양이다. 나도 진외할아버지만치 기뻤다.

그때 할머니는 환갑을 지나셨다. 할머니는 열일곱에 열다섯 먹은 신랑한테 시집오셨다. 신랑은 장가들고 잔병치레를 하시다가 남매를 두고 요절하셨다. 나는 증조부 품에 안겨는 보았어도 정작 할아버지 품에는 안겨 보지 못했다. 족보에 보면 할아버지는 스물일곱에 돌아가셨다. 그러니까 할머니는 스물아홉에 혼자되신 것이다. 생각해 보면 그날 할머니가 개장국 때문에 친정 부모님께 소릴 지른 불효는 청상(靑孀)으로 환갑을 넘긴 여자의 춘한(春恨)이었는지 모른다.

보리밭둑에 앉아서 서럽게 우시던 할머니가 울음을 그치시고 옆에 시무룩해서 앉아 있는 나를 안으며 “어이구, 우리 강아지, 이렇게 아파서 어디 장가가겠어. 네 할아버지는 너만해서 이 길로 할머니를 데리고 삼일 되받이를 갔는데, 옥색 명주 두루마기를 입은 열다섯 새신랑 뒷모습이 얼마나 의젓하던지, 꼭 깎아 놓은 밤 같았느니라. 우리 강아지도 얼른 병이 나서 장가가 야지.” 그런 요지의 말씀을 하신 것 같다. 할머니의 그 말씀이 생각나면 나는 지금도 쓴웃음을 짓는다. ‘깎아 놓은 밤 같은 새 신랑이 겨우 스물일곱에 돌아가셨을라고, 나처럼 병골이셨을테지.’ 내 열다섯 때 모습과 닮은 할아버지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어서다. 진외할아버지께서 나를 미워하신 까닭은 병약한 내가 당신 사위 같아 보여서일지 모른다.

할머니는 구십일곱, 돌아가실 때까지 눈물겨운 한평생을 길쌈으로 달래셨다. 할머니의 명주 길쌈 솜씨는 단연 탁월했다. 그러나 정작 당신은 한 번도 명주옷을 입으신 적이 없다. 돌아가실 때 수의로만 입으셨을 뿐이다. 그런데 할머니는 찬바람만 나면 내게 명주옷을 입히려고 애를 쓰셨다. 바지저고리뿐만 아니라 명절날이면 옥색 명주 두루마기도 지어 입히셨다. 그걸 입 고 나갔다가 동네 애들이 꼬마 신랑이라고 따라다니며 짓궂게 놀리는 바람에 한번 입어보고는 다시 안 입었다.

명주옷은 개굿하게 크는 애들이 입을 옷이 못 된다. 물만 흘러도 얼룩이 선명해서 하루만 입으면 땟자국이 알롱달롱했다. 그러면 옷을 험하게 입는다고 나만 어머니에게 닦달을 당했다. 그래서 나는 명주옷이 싫었지만 할머니는 굳이 내게 명주옷을 입히려고 애를 쓰셨다. 그 할머니의 집착을 그때 나는 왜 몰랐을까. 깎아 놓은 밤 같은 열대여섯 새신랑의 의젓한 모습에 대한 할머니의 애잔한 환상 때문인 것을.

할머니가 짜놓은 명주는 때맞춰서 피륙장수 여자가 가져갔다. 나는 피륙장수 할머니의 세월을 올올이 짜낸 바닥 고운 명주 필을 돈 몇 푼에 가져가는 게 아까웠으나, 할머니는 그 피륙장수에게 명주 필을 넘겨주면서 값을 논하지는 않으셨다. 뿐만 아니라 할머니는 명주 필 값을 받아들고 과금(過金) 아니냐며 금에 만족해하시던 걸로 보아서 그 피륙장수는 할머니의 명주필에다 시세보다 한 금을 더 놓은 게 분명하다. 혼신을 다한 길쌈 공정에 대한 경의였을 것이다.

참 오랫동안 할머니와 피륙장수 여자는 거래를 했다. 그것은 비단 상거래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피륙장수가 문상을 와서 곡을 하는데 어찌나 서럽게 울던지 명주 피륙으로 맺어진 인연이 의외로 깊은 데 감동했다. 피륙 장수 여자가 애착한 할머니의 명주 피륙은 분명히 열다섯 새신랑이 삼일 되받이를 갈 때 입었던 옥색 두루마기감을 능가하는 바닥이었으리라.

나는 '워리'라고 불리던 이 땅의 모든 개들이 보시(布施)한 개장국 맛을 할머니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가마솥에서 뭉근한 장작불에 세월없이 고아지던 개장국은 개가 단백질과 무기질과 섬유질로 분해되어 남을 건 남고 용해될 건 용해된 것으로 부처님께 공양을 해도 죄송할 게 없는 음식이다. 염원과 성의가 깃들인 공정이기 때문이다. 그 점은 우리 할머니의 명주 길 쌈 공정과 일맥상통한다.

보리가 누렇게 고신 단오 무렵이면 진외가 툇마루의 청동화로에서 달여지던 한약 냄새와 어우러져 서리서리 추녀 밑을 감돌던 개장국 달이는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우리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던 스물일곱 살 적 침울한 우리 집에도 그 냄새가 추녀 밑에 서리서리 감돌았을 것이다. 할머니는 그 냄새를 맞으면 청상에 홀로되어 수절한 여자의 생애가 발작처럼 서러울 거라는 짐작이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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