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박눈 / 정목일
덕유산에서 두 해 겨울을 보낸 적이 있었다. 덕유산의 눈은 한 번 내리기만 하면, 숲처럼 내렸다. 산봉우리와 산봉우리가 어깨를 짜고 길게 뻗은 산맥 위에 호호탕탕히 쏟아졌다. 원시림처럼 무성히 내렸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두 손을 모우고 모두 고개를 숙였다. 아무도 항거하지 않았다. 고개를 들고 독야청청 하는 나무가 있을 리 없었다. 산들도 고즈넉이 눈을 감았다. 함박눈은 실로 무서운 정복자였다. 산이고 들이고 마을이고 순식간에, 모든 것을 남김없이 차지해 버렸다. 요란한 승리의 군화소리도, 펄럭이는 깃발도 없이, 모든 것을 정복해 버렸다. 아무도 함부로 손댈 수 없이 신성해 보이던 덕유산 봉우리도, 변함없이 졸졸거리던 개울도, 울울창창한 침엽수림도 모두 무릎을 꿇었다. 정복자들은 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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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1. 30.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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