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 / 김영미
장터 초입에는 늙수그레한 남자가 쭈그리고 앉아 숫돌에 불꽃을 튕기며 무딘 칼끝을 연마하고 있다. 귀청을 때리는 마찰음이 봄 햇살에 부서져 꽃잎처럼 흩어진다. 어린 모종들이 눈을 비비는 식물원 앞에 세모의 날을 세우고 등이 굽어 있는 호미가 발걸음을 붙잡는다. 호미 한 자루를 손에 들고 어머니처럼 그 무게를 가늠해본다. 몸집은 가볍고 생김새는 단순하다. 탁월한 발군의 솜씨에 비해 어떤 치장도 없다. 담금질한 호미 끝이 반짝거리며 마치 주인을 찾고 있는 듯하다. 나는 손끝이 아려오고 눈시울이 붉어진다. 호미를 보면 녹슬지 않던 어머니의 힘이 느껴진다. 명주실같이 팽팽하게 전해지는 전율은 아픔이 되어 명치끝을 누른다. 가게 앞에 서서 고추 모종을 팔고 있는 주인에게 가격을 묻자 “육천 원이요.” 한다. 봄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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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2. 14.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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