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수필 읽기

호미 / 김영미

부흐고비 2020. 12. 14. 09:18

장터 초입에는 늙수그레한 남자가 쭈그리고 앉아 숫돌에 불꽃을 튕기며 무딘 칼끝을 연마하고 있다. 귀청을 때리는 마찰음이 봄 햇살에 부서져 꽃잎처럼 흩어진다. 어린 모종들이 눈을 비비는 식물원 앞에 세모의 날을 세우고 등이 굽어 있는 호미가 발걸음을 붙잡는다. 호미 한 자루를 손에 들고 어머니처럼 그 무게를 가늠해본다. 몸집은 가볍고 생김새는 단순하다. 탁월한 발군의 솜씨에 비해 어떤 치장도 없다. 담금질한 호미 끝이 반짝거리며 마치 주인을 찾고 있는 듯하다. 나는 손끝이 아려오고 눈시울이 붉어진다.

호미를 보면 녹슬지 않던 어머니의 힘이 느껴진다. 명주실같이 팽팽하게 전해지는 전율은 아픔이 되어 명치끝을 누른다. 가게 앞에 서서 고추 모종을 팔고 있는 주인에게 가격을 묻자 “육천 원이요.” 한다.

봄이 오면 들뜬 마음이 되어 혼자서도 밭농사를 지어보겠다며 호미를 사게 된다. 하지만 내가 산 호미로는 겨우 마당에 잡초를 뽑거나 텃밭을 조금 후벼 볼뿐 어머니처럼 남실남실 곡식을 키워내 생기 넘쳐흐르던 밭은 꿈꿀 수가 없었다.

자연의 이치를 따르며 농사를 짓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지 못했다. 땅을 파 이랑을 만들고 씨앗을 심으면 풀이 먼저 돋아났다. 염치를 모르는 풀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 한눈을 파는 사이 묵정밭으로 만들어 버린다. 시간이 흐를수록 어디에서부터 호미질을 할 것인지 막막하기만 하였다.

어린 시절 나는 혼자 집을 지키는 일이 많아 농기구가 벽에 걸려 있던 고방으로 자주 들락거리며 놀았다. 벽에는 호미나 괭이, 낫을 비롯한 갈고리, 삼태기나 코뚜레 같은 물건들이 박물관처럼 나열되어 있고 고구마줄기나 마늘, 익모초나 무청을 엮어 걸어둔 고방에는 마른 풀냄새가 뒤섞여 농익었다. 어머니가 열무 단을 머리에 이고 시장으로 간 뒤 나는 호미를 꺼내들고 뒷밭으로 갔다. 밭이랑에 앉아 호미질을 하면 토실토실한 감자가 나오고 붉은 고구마가 주렁주렁 달려 나왔다. 나는 호미가 땅 밑에서 무엇이던지 캐낼 신기한 눈이 있는 것이라 믿었고 땅속을 누비는 마술사처럼 여겨졌다. 호미를 보면 발견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휘젓고 다니는 것은 그 시절 각인된 기억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머니는 늘 호미를 곁에 두었다. 땅의 깊은 숨소리를 감지하며 묵묵히 밭을 매고 있었다. 손에는 호미 한 자루가 단단히 쥐어졌다. 나무 등걸 같은 손에 잡힌 호미 끝은 무디었지만 한 몸이 된 듯 황무지를 개간하며 거친 생을 함께해왔다.

무학(無學)이었던 어머니는 학문이나 지식을 쌓는 일보다 온몸으로 부대끼며 땀 흘리는 노동의 가치를 최고로 여겼다. 자식들에게 괭이나 호미를 먼저 쥐어주며 무섭도록 일을 가르쳤다. 열다섯 살인 둘째오빠는 동트기 전 재 넘어 건너 마을까지 소를 몰고 논을 갈러 나가야 했고 언니에게도 어김없이 호미를 쥐게 했다.

호미는 어머니가 거센 바람 앞에 밝혀든 등불이었다. 팔 남매인 자식들의 생계를 위해 밭고랑을 누비며 누가 이길 것인가 씨름을 하며 밤늦도록 사투를 벌였다. 사람들은 어머니를 억척스러운 ‘철의 여인’이라 불렀다. 대대로 물려받은 묵정밭을 헐값으로 넘기면서도 “이제야 주인을 찾았다.”며 무릎을 치며 기뻐했다.

무명수건을 쓴 어머니가 학처럼 앉아 콩밭을 메고 있었다. 지난 밤 지렁이 한 마리가 파먹고 간 흙을 호미 끝으로 깊게 파 곡식들의 이랑을 북돋아 주었다. 시간은 흐름을 멈춘 듯 하고 햇빛은 쟁쟁한 소리를 내며 묻혀버렸다. 콩꽃이 내리기 전에 열무를 솎아내고 흙의 뼈 같은 돌멩이는 치마폭에 담아 밭둑에 담장을 쌓았다. 빼곡하게 돌담을 쌓아 깊고 어두운 우물 안 개구리처럼 자신을 가두었다.

곡선의 호미 끝으로 그려놓은 밭이랑에 야윈 잎을 감싸는 바람이 휘돌아들고 푸른 보리밭은 춤을 추며 출렁인다. 입에 붓을 든 구필화가(口筆畵家)가 심혈을 기울여 가슴으로 그린 풍경화처럼 우렁우렁 목이 멘다. 서걱거리는 잎사귀 마디마디 알이 밴 옥수수, 고개 숙인 수수목이며 붉은 고추밭, 황금빛 호박 넝쿨은 담장을 서늘하게 덮고 도라지 꽃 생생하게 피고 졌다.

해가 설핏 기울어 내가 어머니를 찾아 나서는 메밀밭은 눈이 부시다. 비탈진 자갈밭에 키재기를 하는 메밀은 자줏빛 대궁에 붉은 바람을 터질 듯이 채웠다. 어머니의 눈물과 땀을 먹고 자라 소금꽃이 되어 하얗게 피었다. 메밀이 까맣게 익어갈 무렵이면 어머니는 남몰래 삭혀가던 속울음을 메밀밭에 뿌려 놓았다. 밭둑에 앉아 먼 산 노을을 바라보며 담배 한 개비 피워 물고 지난한 세월의 북받치는 설움도 무심한 눈빛으로 달래었다.

어머니는 열일곱 살 처녀의 몸으로 혼자 배를 타고 일본으로 시집을 갔다. 나이가 스무 살이나 많은 아버지를 만나 이국땅에서 혼례를 치렀다. 해방이 되자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이듬해 전쟁이 터지자 피난길에서 아버지와 헤어지는 아픔을 겪기도 하였다.

배고픔과 결핍은 스스로를 가두어 가혹한 고통을 치르게 하지만 기적처럼 일궈가는 삶의 방편 역시 땅을 밟고 서 있는 이 순간임을 터득하셨던 같다. 어머니는 가볍지만 결코 가볍지 않는 정직한 일꾼인 호미 하나에 버거운 생을 지탱하며 살았다. 호미 하나를 살 때마다 손에 쥐고 그 무게를 가늠했던 것은 어머니의 절박했던 심경의 무게는 아니었을까.

아버지가 떠난 사십여 년 동안 호미자루가 헐거워지거나 부서지면 철사 줄로 다시금 꽁꽁 동여맸다. 때로는 돌멩이 위에 대못을 박듯 호미를 거꾸로 세워 쾅쾅 내리쳤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봇물 같은 슬픔의 물꼬를 스스로 틔워가며 흩어지려는 마음자리를 팽팽하게 당겼을 터이다.

광에는 호미의 수가 점점 늘어날수록 들판의 논과 밭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불어났다. 세상 밖 시시비비에 귀를 닫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여름 땡볕에 삼베적삼이 몇 벌씩 삭아진 대가였다. 저녁이면 모깃불을 태우는 어머니 몸에도 마른 풀냄새가 베어들었다. 낮에는 논밭을 메고 밤이면 누에를 치거나 그림자처럼 베틀에 앉았다.

나이가 들수록 어머니의 몸은 점점 호미를 닮아갔다. 허리는 기역자로 꺾였고 하늘을 바라보기보다 땅을 보며 걸어야만 했다. 태산 같은 짐을 머리에 이고 다닐 수 없게 되자 굽은 등에 짐을 지고 다녔다. 몸은 말라 점점 가벼워지고 키는 자꾸만 작아 졌다. 허리를 곧추 세우지 못해 새우잠을 잤다. 땅 위에 동그랗게 비쳐진 그림자를 밟으며 끊임없이 자신을 가두었던 호미를 끝끝내 놓지 못한 채 호미처럼 눕게 되었다.

어머니는 깊고 긴 숨을 몰아쉬었다. 건너 마을 사찰에서 들려오는 은은한 종소리가 끊어졌다 또 다시 이어졌다. 돋을새김의 범종소리, 그 꽃잎 같은 여음을 따라 먼 길 나설 참인지 어머니는 조용히 눈을 감고 나직하게 말씀하셨다.

“문 열어 드려라.”

“문 열어 드려라.”

매운바람이 불었다. 비탈에서 메밀꽃 대궁이 붉은 바람을 죄다 비워내느라 울고 있는 것일까. 그렁그렁한 눈물을 매달고 하얀 손을 흔들고 있었다.

봄이면 호미 한 자루를 벽에 걸어두고 무릎 끓고 싶어진다. 호미는 닳고 무뎌진 어머니의 손이었기 때문이다.

'수필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의 무기는 / 곽흥렬  (0) 2020.12.15
밀당의 미학 / 노혜숙  (0) 2020.12.14
궤나 소리 / 구활  (0) 2020.12.11
빗방울 전주곡 / 구활  (0) 2020.12.11
새에게는 길이 없다 / 김정화  (0) 2020.12.10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