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령별곡花嶺別曲 / 홍억선
내가 산으로 거처를 옮긴 지도 벌써 십수 년이 흘렀다. 띠풀로 지붕을 이고, 흙벽으로 방을 꾸며 작은 한 몸 누웠으니 심신이야 그지없이 편안하다. 낮이면 따사로운 햇살과 부드러운 바람이 때를 맞추어 찾아오고, 밤이면 달과 별이 늦도록 벗이 되어 세상일은 까마득하고, 세월이 얼마만큼 흘러간 줄 셈을 할 수 없다. 봄 아지랑이가 산등성이를 덮는가 싶더니 어느새 찬 서리 내려 나뭇잎 우수수 떨어지고, 입동을 재촉하는 눈비에 날아가던 새들도 자취를 감추었다. 짧은 해 쉬 지고 긴긴 밤 웅크리고 누워 적막강산 외로운 처지를 돌아보면 불현듯 생각나는 것이 내 인생의 역정이구나. 막상 입을 열자 하면 자랑할 일이 전혀 없고, 그렇다고 말자 하면 영영 묻혀질까 염려되어 무딘 글로 두어 자 적어 본다. 선대께서 당쟁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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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2. 28.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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