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 / 김희자
저녁노을이 출렁이며 창을 넘어온다. 저물며 빚어내는 선연한 빛이 동살보다 눈부시다. 들녘에 선 대추나무 가지가 휘늘어졌다. 주렁주렁 매달린 저 열매처럼 자식들이 여럿이면 무엇하나? 할아버지는 오늘도 자신의 몸집보다 더 커다란 휠체어에 할머니를 앉히고 조심조심 산책을 한다. 저녁들판에 낮게 깔린 노을이 황혼에 든 두 노인의 어깨 위로 곱게 번진다. 저물녘의 풍경이 평온하다. 가을 들을 물들이고 나무를 물들이는 것이 어찌 지는 해의 손길뿐이랴. 저무는 해가 천천히 숨을 고르는 동안 휠체어를 미는 할아버지의 손길도 잠시 멈춘다. 할아버지는 노을빛으로 물든 할머니의 얼굴을 슬쩍 어루만지더니 어깨 위에 흘러내린 머플러를 다시 여미어 준다. 할아버지 역시 이곳 요양병원에 입원 중인 환자이다. 당신의 육신 또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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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6. 1.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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