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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황혼 / 김희자

부흐고비 2020. 6. 1. 23:23

저녁노을이 출렁이며 창을 넘어온다. 저물며 빚어내는 선연한 빛이 동살보다 눈부시다. 들녘에 선 대추나무 가지가 휘늘어졌다. 주렁주렁 매달린 저 열매처럼 자식들이 여럿이면 무엇하나? 할아버지는 오늘도 자신의 몸집보다 더 커다란 휠체어에 할머니를 앉히고 조심조심 산책을 한다. 저녁들판에 낮게 깔린 노을이 황혼에 든 두 노인의 어깨 위로 곱게 번진다.

저물녘의 풍경이 평온하다. 가을 들을 물들이고 나무를 물들이는 것이 어찌 지는 해의 손길뿐이랴. 저무는 해가 천천히 숨을 고르는 동안 휠체어를 미는 할아버지의 손길도 잠시 멈춘다. 할아버지는 노을빛으로 물든 할머니의 얼굴을 슬쩍 어루만지더니 어깨 위에 흘러내린 머플러를 다시 여미어 준다. 할아버지 역시 이곳 요양병원에 입원 중인 환자이다. 당신의 육신 또한 온전치 못해 보는 사람이 좌불안석이다.

저 기운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몸체가 풍성한 할머니와는 대조적으로 할아버지는 살집이 없어 빼빼 말랐다. 할머니를 모시고 다니는 것이 노구의 근력으로 부친다는 것을 알지만 할아버지는 오늘도 휠체어 미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할아버지는 달력 몇 장만 넘기면 아흔 고개에 이른다. 어젯밤만 해도 치매기가 설핏 노닐다 갔고 화장실에 가시다가 넘어질 뻔 했다. 젊은 날, 죄가 될만한 허물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할머니를 일방적으로 수발하는 것을 보면 그때의 빚 갚음이거나 아니면 다음 생을 위해 저축이라도 하는 것 같다. 그 모습은 어떤 현자의 말씀보다 뜨겁게 다가온다.

태양이 이글이글, 쇠뿔도 꼬부라든다는 삼복더위 때였다. 환자복대신 물색 셔츠를 입은 할아버지가 간호사실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성근 머리칼을 가지런히 빗어 넘긴 모습이 출타를 할 모양새였다. 물기 묻은 머리를 보고 짐작은 했지만 다가가 여쭈었다. “멋지게 차려 입고 어딜 가시려고요?” 할아버지는 잔웃음을 치며 “읍내 시장에 다녀오마!”고 했다. 입맛이 돌아선 할머니가 추어탕을 먹고 싶어 한다며 외출을 원했다. 주치의가 없는 날이라 곤란하다고 해도 할아버지는 생떼를 부렸다. 정성이 갸륵한 할아버지의 마음을 차마 거부할 수 없었다.

당직의사의 허락이 떨어지자, 할아버지는 지팡이를 딱딱 짚으며 계단을 내려섰다.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정류장으로 향하는 할아버지의 등에는 커다란 하트가 그려져 있었다. 아픈 아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마음이 애틋했다. 허나 당신의 의지와는 달리 육신은 굽고 노쇠해 있다. 짧아졌던 그림자가 점점 길어지는 오후 두시, 뜨거운 햇살에 짙어진 대추나무 이파리가 숨 가쁜 소리를 토했다. 달아오른 지열이 할아버지의 등을 금세 적셨다.

세월이 지나간 뒷모습을 보면 당신도 도움을 받아야 할 처지다. 하지만 여섯 살 아래 인 할머니의 병수발이 늘 우선이다. 입원한 할머니를 돌보고자 당신도 병원으로 들어왔다. 사람들은 입으로는 사랑을 말하면서 진심을 가둬 버리고 사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변함없는 사랑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동케 한다. 걸음걸이도 시원찮으면서 추어탕을 사러 시장에 가시는 걸 보면 두 분은 하늘에서 정해 준 천생 배필임에 틀림없다.

할머니는 자주 입게 가시가 돋친 듯 입맛이 없다 했고 머리가 아프다고 시도 때도 없이 징징거렸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억지투정을 부리는 어린 아이를 보듯 포근한 미소로 대한다. 언제나 한결같은 정성을 수발하는 지아비가 있으니 할머니의 어리광은 유독 심한 게 아닐까. 바지런한 할아버지와는 달리 할머니는 천하태령이다. 동작이 굼뜨고 침대에 누워서 남의 손을 빌리려고만 한다. 할아버지 앞에서 할머니는 마냥 철부지다. 평생 그렇게 살아오신 것 같다.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고 할머니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언덕은 할아버지인 셈이다.

두어 시간 후 할아버지는 김이 모락모락 피는 봉지를 들고 돌아왔다. 맛깔스런 추어탕과 죽을 먹고 있는 할머니를 위해 고슬고슬한 밥까지 싸들고 왔다. 추어탕에는 무른 죽보다 밥이 더 낫다는 걸 아신 것이다.

노인들의 수명이 길어지면서 요양병원은 어르신들의 마지막 집이 되어간다. 그러다보니 노부부가 입원을 하게 되는 경우도 더러 있다. 하지만 남녀가 유별하니 서로 다른 병실에서 기거한다. 끼니때가 되면 할아버지는 밥을 후딱 드시고 할머니의 병실로 가서 식사를 거든다. 밥술을 떠먹이는 할아버지의 눈길에는 언제나 온정이 넘친다. 사랑과 정성이 담긴 음식은 얼마나 맛이 더하겠는가?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자면 절로 입이 벌어진다. 내 눈빛이 한 번만 더 당신의 마음을 흔드는 저녁 종소리이기를 소망하는 듯 보인다. 역정 한 번 내지 않고 시중을 드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삶이란 수채화처럼 점점 낡아가는 것. 거동이 점점 어려워지자 할머니는 복도에 나가는 것조차 꺼려한다. 처음 입원을 하셨을 땐 두 분이 나란히 복도 소파에 앉아 눈을 맞추기도 했다. 사랑의 눈길을 보내는 두 분의 눈이 너무도 닮아 있었다. 은혼식, 금혼식을 치르고 육십육 년 동안 한 이불을 덮었다는 부부이니 말을 더 보태 무엇 하리. 소파에 나란히 앉은 두 분의 어깨 위에 창으로 든 노을이 곰살갑게 앉기도 했다. 어느 날은 애절한 눈빛을 주고받았고 어떤 날에는 운동을 하는 할아버지 옆에서 풋잠이 들기도 했다. 그런 두 분을 볼 때면 아무도 없는 휴게실에 모셔다 드리고 싶었다.

입원 후, 할아버지는 매일 계단을 오르내리며 몸을 단련시켰다. 우울증으로 쳐져 있는 할머니를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가쁜 숨을 고르며 계단을 오르내리는 할아버지의 발자국 소리가 힘찼다. 처음에는 병수발을 위해 같이 입원했지만 할머니를 돌보다가 할아버지마저 넘어졌다. 할아버지가 덜컹 침대에 눕게 되자 할머니는 간병사가 있는 병동으로 내려왔다. 사층에 할아버지를 두고 온 할머니는 불안해했다. 동태가 궁금해서 안달을 냈다.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걱정이 태산이었다.

견우직녀처럼 서로를 걱정하고 그리워하다 할아버지도 같은 병동을 내려왔다. 그때부터 할머니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회복한 할아버지가 다시 수발을 들었다. 다정도 병인 양, 그 모습을 보며 질투를 하는 할머니도 있었다. 할아버지가 할머니 병실로 들어서면 눈을 흘기는 사람도 생겼다. 홀로 계신 분들에게는 눈꼴 시린 존재였고 시샘이 나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눈물 많은 K아주머니는 이불로 얼굴을 가렸고 남편이 오면 펑펑 울음을 터트렸다. 그마저도 오래가지 않았다. 처음에는 옆 할머니들의 눈치를 보는 듯했지만 이제는 남의 눈 살피지 않고 병실을 들락거린다. 모두가 인정을 하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오늘따라 황혼이 유별나게 황홀하다. 저물녘의 하늘이나 인생 끝자락에 선 두 노인의 풍경이 은은히 울려오는 종소리 같은 빛을 낸다. 황혼이 저렇게 아룸다운 이유는 아집을 버렸음이다. 인간사의 덧없음과 생의 끝에 닿았을 때 어떻게 가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다. 저녁노을이 모든 것을 벗고 들판에 누울 때면 어둠의 옷을 입은 평온한 밤이 찾아온다. 그렇게 저무는 것을 바라는 때가 황혼기다.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으로 머물기를 바라는 시기이며 틀니 하나를 두고 부부가 번갈아 가며 밥을 먹을 수 있는 사이가 된다.

남편의 작은 허물도 용서하는 일조차 버거운 나로서는 곱디곱게 저무는 풍경 앞에서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지어미를 애지중지하는 할아버지의 마음이 경이로울 따름이다. 나도 인생의 끝자락에 들었을 땐 나를 다 버리고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평면적이지만은 않기를 소망해본다. 깊고 아늑하고 고요한 저 황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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