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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득 코너

소요유 (造遙遊) / 장자

부흐고비 2008. 1. 24. 09:39

 

소요유(造遙遊)

 

 

 

북극 바다에 한 마리 고기 있어 곤(額)이라 부르나니, 그 몸이 하도 커서 몇 천리나 될지 알 수 없었다. 어느 날 한 마리 새로 탈바꿈하여 붕(鵬)이라 이름 하니, 붕새는 더욱 커서 그의 등짝만 해도 몇 천리에 달하여 도시 잴 길이 없었다.

 

푸드렁 하늘을 날면, 그 날개는 하늘에 드리운 구름장과도 같았다. 붕새는 바닷가 뒤끓게 모진 바람이 일 때마다 남극 바다로 옮겼고, 무한히 넓은 남극 바다는 하늘의 못이라고도 불렀다. 때문에 《제해(齋諦)》라는 책엔, '붕새가 남극 바다로 옮길 때엔 날개가 너무 커서 처음엔 삼천리나 멀리 수면을 치면서 날다가, 거기서 일어나는 바람을 타고 구만리장천에 오른다. 붕새는 거기 남극 바다에서 반년쯤 쉬게 되니라' 했다.

 

봄날 언덕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가 하늘에 하느작거리는 먼지처럼 가득 있고, 모든 생물들은 서로 숨을 내뿜는다. 저 하늘의 짙푸름은 하늘의 본래 빛깔일까? 아니 저렇게도 짙푸르게 보이는 것은 먼 때문일까? 붕새가 하늘을 날 때도 이 지상을 보면 역시 이렇게 푸르기만 할까?

 

무릇 물이 낮으면 큰 배를 띄울 수 없다. 한 잔의 물을 옴폭 패인 뜰에 부었을 때, 한 잎 겨자는 뜨지만, 거기에 하나의 잔을 띄우면 땅에 걸리고 만다. 물은 낮고 배는 크기 때문이다.

 

바람의 체적이 작으면 커다란 새의 날개를 받칠 수 없다. 그 날개가 제아무리 구만리장천에 올라도 그 날개 밑으로 바람이 있어야 한다. 붕새는 이 바람을 타고 하늘을 난다. 등을 저 아득한 하늘에 번득이며 아무것도 걸리는 게 없이 남극을 찾아 훨훨 날아간 것이다.

 

말매미와 어린 비둘기가 붕새를 보고 비웃으며, "나는 때로 재빨리 날아 느릅나무나 박달나무 있는 데로 갈 수 있었지만, 반드시 바람이 있어야 하진 않았고, 때로는 높은 나무에 이르지 못한 채 땅에 떨어지는 수도 있었지만, 반드시 바다를 건너 구만리장천에 이르렀다가 남극에 갈 거야 없지 않은가?"했다.

 

근교에 갈 사람은 아침밥을 먹고 저녁에 돌아온대도 배고픈 일은 없고, 백리 밖 먼 길을 가려면 밤샘할 양식을 준비해야 하고, 천 리길 떠날 때엔 석 달 양식을 준비해야 하거늘 그 말매미나 새끼 비둘기 되어 어찌 붕새의 이치를 알겠는가?

 

어리석은 자는 슬기로운 자를 알지 못하고, 하루살이 목숨은 장수자를 알지 못하거늘 어이타 그런 도리를 알겠는가? 아침에 피었다 저녁에 지는 버섯은 한 달의 섭리를 알지 못하고, 아침에 태어나 저녁에 죽는 쓰르라미는 봄 ·가을의 변화를 모르거니, 이들더러 단명하다 한다.

 

초(楚)나라 남쪽엔 명령 (冥靈)이란 나무가 있거늘, 5백 년을 살아도 그에겐 봄 한철, 가을 한철 지낸 것에 불과하다 했고, 상고(上古) 때 대춘(大椿)이란 나무는 8천 년을 살아도 그에겐 봄 한철, 가을 한철 지낸 것에 불과하다 했다. 지금 세상에 몇 백 년 살았다는 팽조(彭祖)를 들어 장수의 상징으로 삼아, 사람마다 부러워한다니, 어찌 슬프다 하지 않겠는가?

 

탕왕(湯王)이 극(棘)과 말씀하는 가운데 이런 대목이 있다.

 

'북극 불모지에 명해(冥海)라는 바다가 있는데, 그 바다가 바로 천지(天池)였다. 거기에 한 마리 물고기가 있거늘, 넓이가 몇 천 리나 되는지 아무도 그 길이를 아는 사람 없어 이름을 곤이라 했다. 또 거기에 사는 한 마리 새가 있거늘 이름을 봉이라 하니, 등짝이 태산 같고 날개는 하늘에 드리운 구름장 같아 일어나는 폭풍에 날개를 치고 구만리장천을 선회하니, 거긴 구름도 희박할이만큼 높은 곳, 다시 창공을 등에 업고 남으로 남극 바다로 날아갔다.

 

연못가 작은 새가 이를 보고 비웃었다.

 

"저 녀석은 어디로 가자는 걸까? 나는 날개를 활짝 펴 몇 길도 못 올라, 그만 쑥대밭으로 떨어져 퍼덕이는데, 이것도 날았다 하거늘, 저 녀석은 어디로 가자는 걸까?"

 

여기에 크고 작은 분별이 있다.

 

그러므로 다만 하나의 관직밖에 할 수 없는 재능을 가졌다거나, 다만 한 고을의 백성을 보호할 수 있는 선행밖에 되지 못하든지, 한 임금을 섬길 덕망 밖에 없어서 겨우 한 나라 백성들만이 알아주거나, 이렇게 그들의 지위는 서로 다르지만 서로 스스로를 높이고 있음은 저 연못가 작은 새와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 송영자(宋榮子)는 여전히 이들을 비웃고 있다. 그는 온 세상 사람이 그를 칭찬하여도 스스로 더욱 분발하지 않고, 온 세상 사람이 그를 헐뜯는다 해도 끄떡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는 자기와 세상과의 관계가 없음을 알고 모든 치욕과 영광을 잊어버릴 줄 아는 사람이니 이 세상에선 드물게 보는 사람이다.

 

그는 그렇게 세상의 말들에 급급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아직 불혹(不惑)의 자세로 목눌(木訥)한 경지에 있다고는 못 한다.

 

열자(列子)는 바람을 타고 떠돌아다니니 아주 즐거울 듯하지만, 보름이 지나면 홀연히 집으로 돌아온다. 그렇게 신선 복을 지닌 사람도 몇몇에 불과하지만, 열자는 겨우 발로 걸어 다니는 수고로움을 면했을 뿐이고, 끝까지 바람을 타지 않고는 어쩔 수 없는 인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하늘과 땅의 자연 정도(正道)를 타고 음양(陰陽) ·풍우(風雨) ·회명(暗明) 등 육기(六氣)의 변화를 궁달(窮達)하여 무궁한 경지에 노닌다면 다시 그 무엇에 의지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래서 '지덕(至德)한 사람은 자기와 세상을 완연히 초월하고, 신명 (神明)한 사람은 공 세우기를 잊고, 성인은 이름을 구하지 않는다.'고 했다.

 

요(堯)임금은 천하를 허유(許由)에게 양보하려 했다. "해와 달이 밝게 비치는데 횃불을 또 밝히는 것은 빛을 내는 데 헛된 수고가 아닐까?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데 논밭에 물을 대는 일은 논을 적시는 데 도로(徒勞)가 아닐까? 선생께서 친자(天子)가 되어서 천하를 다스린다면 잘 다스려질 것입니다. 내가 임금 노릇을 하면서 스스로 내 부끄러움을 알았노니, 청컨대 이 천하를 물려받아 주십시오."

 

허유의 대답은 이러했다.

 

"당신이 천하를 다스리매 천하는 이토록 태평합니다. 그런데 내가 당신을 대신하여 천하를 다스린다면 나는 그 이름을 꾀하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름이란 빈[空] 것입니다. 그리고 실체 자신이 아닙니다. 실체가 주인이라면 이름은 손님 같은 것입니다. 내가 그 손님 노릇을 해야 합니까? 뱁새가 나뭇가지에 보금자리를 친다 해도 겨우 한 가지에 불과하며, 두더지가 냇물을 마신다 해도 겨우 그 매를 채우면 그만입니다. 돌아가십시오. 나에게는 천하라는 그렇게 큰 것도 쓸모가 없습니다. 부엌일 보는 이가 아무리 밥 짓기를 거절한다한들, 설마 시축(尸祝)이 제수(祭需)를 대신 요리할 수 있겠습니까?"

 

견오(肩吾)가 연숙(連叔)에게 물었다.

 

“나는 일찍이 접여(接輿)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만 하도 커서 당치 않았으며, 하도 허황하여 걷잡을 수 없었습니다. 마치 저 하늘에 은하수의 끝을 찾을 수 없는 거나, 문밖과 들안의 거리가 너무 아득한 것 같아 차라리 놀라와서 알 길이 없습니다. "

 

"무슨 얘긴데?"

 

연숙이 물었다.

 

"그 얘기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먼먼 고사산(姑射山)에 신인(神人)이 살고 있었답니다. 살결이 얼음이나 눈처럼 희고, 손짓도 보드라와 처녀를 닮았다합니다. 사람이 먹는 오곡을 먹지 않고, 다만 바람을 마시고 이슬을 핥아먹는답니다. 구름을 타고 용을 부려서 사해(四海) 밖으로나 멀리멀리 노닐더랍니다. 그러다가 정신을 응집하면 만물이 병들지 많고 오곡이 무르익더랍니다. 나도 하도 미치광이 수작 같아 차마 믿지 않았습니다만……"

 

듣고 있던 연숙은,

 

'그래? 소경은 아름다운 문채를 볼 수 없고, 귀머거리는 아름다운 종고를 들을 길이 없다는군. 어찌 육체에만 소경이 있고 귀머거리가 있겠는가? 지식에도 소경과 귀머거리가 있을테니 바로 자네가 그런 걸세. 그 신인의 덕은 만물을 혼연히 융합하여 그것을 하나로 만들어 둔 거요. 아무리 천하를 다스려달라고 한들 누가 천하의 정사에 속을 썩이며 그 일에 나서겠는가? 이런 신인은 만물이 모두 그를 훼손 할 수 없으니, 하늘에 닿게 장마가 진다 한들 빠져 죽지 않을 것이며, 금석이 녹아 흐르고, 산과 흙이 타는 가뭄이 든다 한들 데지 않을 걸세. 그가 먼지나 찌꺼기, 겨 같은 하찮은 폐물로도 요순 같은 거룩한 공업(功業)을 빚어 낼 수 있을 테니 어찌 세속 일을 맡는다 하겠는가?"

 

또 하나의 이야기다.

 

송(宋)나라 사람이 은(殷)나라 때 만든 관모(冠帽)를 가지고 월(越)나라로 팔러 갔다. 그런데 월나라 사람들의 풍속은 머리를 깎고 알몸에 문채를 그리는 습관이 있어 모자는 쓸모가 없었다.

 

요임금은 천하를 통치하여 백성이 태평하자, 멀리 고사산(姑財山)-분수(汾水)의 북쪽에 자리한-을 찾아가 네 사람의 신인을 만났던 바, 그들의 초탈한 인품에 깨달은 바 있어, 다시 천하의 정치로 속 썩이는 일이 싫어 천하를 말끔히 잊어버렸다한다.

 

혜자(惠子)가 장자에게 말했다.

 

"위왕(魏王)은 나에게 큰 박씨를 주었습니다. 그것을 심어 따게 된 박은 다섯 섬들이가 되게 컸습니다. 그러나 그것에 물을 부었더니 박이 튼튼치 않아서인지 들면 부서질 것 같아 이번엔 그것을 두 쪽으로 쪼개어 표주박을 만들었더니, 편편하고 얕아서 많은 물을 담을 수는 없었습니다. 아무리 큰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소용이 없으므로 나는 그것을 깨뜨려 버렸습니다. "

 

장자의 대답이었다.

 

"당신은 정말 큰 것을 쓸 줄 모르는군요. 옛날 송나라에 손이 트지 않게 하는 약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이 있었소. 겨울에 물을 만져도 트지 않기에 대대손손 빨래질을 해왔다는 거요, 마침 지나가던 나그네가 그 약방문을 듣고 백금으로 그걸 사자고 했더니, 일가들을 모아 놓고 상의하기를, '우리 집이 대를 물려 빨래질이나 하면서 돈 몇 푼 벌다가 하루아침에 백금을 벌게 되었으니 팔기로 하자.' 이래서 약방문은 팔렸답니다. 나그네는 약방문을 입수하자 오왕(吳王)을 찾아가 그것을 드렸답니다. 그리고 그것을 수전(水戰)에 쓰자고 설득하였답니다. 아닌게 아니라 월나라의 침략이 있자 오왕은 그를 장군으로 임명하고, 겨울 빙판에 월군(越軍)과 수전을 벌였거늘 월군은 대패하고 그는 많은 땅을 분봉 받았다 합니다.

 

손을 안 트게 함은 어느 쪽이나 같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그것으로 땅을 분봉 받았고, 한 사람은 겨우 빨래질이나 면하였으니, 이는 쓰는 방법이 서로 달랐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대가 다섯 섬들이 박이 있다 하거늘, 왜 커다란 술통을 만들어 허리에 차고 강호에 띄워 유유히 놀아 볼 생각은 않고, 오히려 조각난 바가지가 편편하고 낮아서 쓸모없는 것을 걱정하고 있는 거요? 당신의 마음씀이 답답하지 않습니까?"

 

혜자가 장자에게 말했다.

 

"우리 집에 큰 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남들은 가죽나무라고 해요. 그 줄기엔 옹이가 많아 울퉁불퉁 하여 먹줄을 대어 널빤지로 쓸 수 없고, 그 가지는 어찌나 구불퉁한지 곡척을 댄들 어디 쓸모가 없단 말이오. 길가에 서 있어도 목수가 거들떠보지도 않더란 말이오. 마찬가지로 당신의 말이 크기는 해도 쓸모가 없기에 누구도 상대를 해주지 않는 것입니다. "

 

장자가 말했다.

 

"당신은 삵괭이를 본 적이 있나요? 몸을 땅에 납작 붙이고 들쥐가 나오기를 기다리다가 동서로 깡총 깡총 뛰고 아래위를 겁없이 덤비다가 필경은 덫에 치어 죽거나 함정에 빠져 죽어 버리는 삵괭이를……. 그런데 저 들소를 보아요. 저놈은 하늘을 덮는 구름만큼 멍청하게도 크지만, 쥐 한 마리 잡을 능력도 없단 말이오.

 

지금 당신은 그 커다란 나무가 쓸모없이 덩그렇게 서 있는 것만을 걱정하지만, 끝없이 휑한 들판에, 그리고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그 가장자리에 나무를 심고, 때로는 하염없이 그 곁을 거닐다가 차라리 그 곁에 누워 드르렁거리고 낮잠을 청해 볼 생각은 안 하십니까? 쓸모가 없기에 그 나무엔 도끼가 덤빌 염려도 없고, 누구도 해치려 들지 않을 겁니다. 쓸모없다는 것이 어찌 근심거리가 된단 말입니까?"

 

출처 : 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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