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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득 코너

집으로 돌아오라 / 조술도

부흐고비 2008. 7. 21. 14:39

 

집으로 돌아오라


지난해 보던 매화의 남쪽 가지 끝에는 벌써 봄소식이 올라와 있건만, 우리 벗님은 올해 어느 곳에서 맴돌고 있는지 모르겠구려. 추운 날 꽃가지 곁에 서서 마음속으로 꽃술을 헤아릴 때마다 ‘이 꽃은 소식이 분명하건만 벗의 소식만은 그렇지 못하구나!’라고 생각했더랍니다.

노형의 발걸음이 근자에는 어디에 머물고 계신지 모르겠군요. 마릉(馬陵)의 농가에 계신가요? 아니면 금석(金石)의 옛집에 계신가요? 이번 행로는 몇 곳으로 잡았으며, 몇 곳의 산수를 다 보셨는지요? 큰 가뭄이며 홍수는 어느 곳에서 만났고, 어느 곳에서 비바람을 만났는지요? 혹시 서쪽 길을 잡아서 서울을 거쳐 개성의 천마산과 박연폭포를 들르고, 멀고 먼 대동강에 이르러 동명성왕(東明聖王)의 사당을 알현하고 정전(井田)의 유적지를 구경한 다음, 연광정을 올랐다가 곧바로 의주의 통군정(統軍亭)까지 도착했는지요? 그게 아니라면 동쪽 길을 택해 원주와 춘천을 거쳐 강릉과 양양을 들르고, 굽이굽이 돌아서 낙산사와 총석정을 향하다가 시원스럽게 비로봉 꼭대기까지 올랐는지요?

하늘과 땅을 집으로 삼고, 강과 산을 식구로 여기며, 안개와 노을, 구름과 달을 양식으로 삼아 한 평생 남으로 갔다 북으로 가고, 동으로 갔다 서로 가기를 조금도 어렵게 생각지 않는군요. 그러나 쓸쓸한 규방의 부인은 노형을 눈이 빠지게 기다리며 가슴을 치면서 장탄식하고, 외로운 청상과부 며느리는 적막 속에서 벽에 등을 기대고 숨을 죽인 채 한숨을 쉬고 있다오. 노형이 아무리 대장부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런 것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단 말이오? 노형은 백륜[伯倫, 죽림칠현의 한 사람]처럼 광달하고, 보병[步兵, 진나라의 완적]처럼 미친 노릇하며, 만경[曼卿, 송나라의 석연년]처럼 기발하고, 동보[同甫, 송나라의 진량]처럼 호탕하다오. 그렇지만 그것이 병인지 병이 아닌지, 중도를 넘었는지 중도에 미치지 못했는지를, 한 평생 옛사람의 책을 읽은 노형이 왜 모르겠소?

요즈음 노형의 근체시 한 수를 읽어보았더니 그 가운데 “수풀 아래 한가로이 누워서 / 영원히 중용 속 사람이 되는 것이 낫겠네!”라는 구절이 있더군요. 노형은 남에게 중용 속 사람이 되라고 권유하고 정작 자신은 중용 밖 사람에 머물고 있소. 비록 하기 쉬운 것이 말이라고는 하나 실천하기 어렵기가 정말 이런 정도일까요?

우리들의 기질에서 오는 병통이 누군들 없겠소? 이 조술도는 뻣뻣하고 앞뒤 꽉 막혔으며, 어둡고 물정 모르는 꽁생원이니 참으로 우리 노형이 말하는 천유(賤儒)에 속하오. 그러나 뻣뻣하고 앞뒤 꽉 막혔으며, 어둡고 물정 모르는 꽁생원일지라도 그래도 옹졸하게 살아가다보니 대단한 문제를 일으키는 지경에는 이르지 않소. 앞서 말씀드린 광달하고 기발하고 강개하며 격렬한 삶은, 명목은 모두 아름답지마는 곧잘 뜻이 기운에 빼앗기고 기운이 몸에 이용당한다오. 그 폐단은 자기만을 귀하게 여기고 남은 무시하며 방자하게 눈을 부릅뜨는 상태로 귀결되기 쉽소.

바라건대, 백 번 생각하고 천 번 고민하여 지금까지의 길을 바꾸기를 바라겠소. 그래서 부질없는 한 세상 사람이 되어 후세 사람들이 다시 후세 사람을 비웃도록 하지 마시오.

이 조술도는 노형과는 정이 깊기에 걱정도 깊고, 걱정이 깊기에 말을 숨기지 않고 꺼냈소. 노형이 정말 내 말을 옳다고 생각한다면, 좋은 길로 가도록 간절하게 권하는 뜻을 너그러이 받아들이시고, 내 말이 그르다고 생각한다면, 이 조술도는 숨김없이 말한 벌을 달게 받겠소. 용서하기 바라오.

조술도(趙述道)

 

 

▲ 그림은 정란이 1781년 백두산과 금강산을 등반하고서 단원 김홍도의 집에 들른 것을 추억하며 4년 뒤인 1785년에 단원이 그린 <단원도>이다.

왼쪽 중앙의 집 안에 앉아있는 세 사람이 각각 김홍도, 정란, 강희언이다.

오른쪽 아래의 문밖에는 정란이 타고 다닌 노새와 종의 모습이 보인다.

(해 설)
이 글은 조술도(趙述道, 1729~1803)란 경상도 문인이 창해일사(滄海逸士) 정란(鄭瀾, 1725~1791)에게 부친 편지이다. 정란은 여행이 좋아서 조선 천지를 발로 누빈 전문적 여행가로 간주할 만한 인물이다. 종(縱)으로는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횡(橫)으로는 대동강에서 금강산까지, 산천에 자신의 발자국을 남기려고 애써서 당시에 유명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여행체험을 후세에 전하고 싶어 하여 산수 여행의 체험을 담은 시문을 썼고, 많은 화가와 문장가들로부터 자신의 산행을 묘사한 그림과 글을 받았다. 그 그림과 글을 모아 ‘썩어 없어지지 않는다’는 뜻의「불후첩(不朽帖)」을 만들었고, 그 첩이 현존한다.

조술도는 정란의 고향 친구이자 사돈간으로, 정란의 외아들 정기동이 조술도의 조카딸에게 장가들었다. 정란이 산수에 미쳐 조선 땅을 떠도는 사이 집을 지키던 아들이 죽었다. 조술도는 그런 조카사위를 애도하는 애사를 지어서 장래성 있는 젊은이를 애도하는 한편, 홀로 된 조카딸의 처지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담았다.

조술도의 경우도 처음부터 그의 여행 자체를 반대한 것은 아니었다. 정란과 함께 지리산을 함께 등반한 일도 있다. 그러나 정란처럼 모든 것을 저버리고 여행에만 몰두하는 것은 내버려둘 수 없는 문제였다. 가정과 생활을 포기하면서까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은 조술도의 말대로 ‘명목은 아름다운 것’이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가족과 본인의 희생과 폐단이 따르므로 이른바 ‘중용 속 사람’으로 돌아오기를 권유하였다.

안대회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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