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지혜


2009년 새해가 밝았다. 지난 일 년 동안 국내외 상황은 암담했고, 해가 바뀌었다고 해서 특별히 나아질 기미도 없다. 그러나 우리들은 달력을 바꾸어 걸면서 희망을 품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역접의 접속어도 있는 것이다. 피비린내 나는 현실 속에서도 꿈을 가진 이들이 있어 세상은 조금 더 밝아지지 않았던가. 고전을 읽는 까닭도 이러한 희망을 찾아 가꾸기 위해서인지 모른다.

연말이 되면 한 해를 정리하는 사자성어가 미디어에 오르내린다. 『교수신문』에서 선정한 2008년의 성어는 ‘호질기의(護疾忌醫)’라고 한다. 이 말은 중국 송나라 주돈이(周敦이)의 『통서(通書)』에 나오는 아래와 같은 글에 근거하고 있다.

중유(仲由)는 자신의 허물 듣기를 좋아하여 아름다운 이름이 영원히 전해졌다. 그런데 오늘날의 사람들은 허물이 있어도 남이 지적해 주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마치 병을 숨기고 의원 찾기를 꺼려 결국 자신의 몸을 망치고도 깨닫지 못하는 것과 같다.

어지간하면 병원에 가기보다 대충 참아내려 하는 나에게는 뜨끔한 말이다. 스스로 내성(耐性)을 기른다는 핑계를 대지만 실상 치료의 고통을 피하고 싶은 마음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혹 병이 덧난다고 해도 그것은 내일의 일이다.

당장의 문제만 생각할 뿐 후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신의 아둔함이 부끄러워질 때 떠오르는 경험이 있다. 『전국책(戰國策)』을 읽다가 ‘망양보뢰(亡羊補牢)’의 원의(原義)를 알고 느낀 놀라움이 그것이다.

전국시대(戰國時代) 말기에 초나라의 장신(莊辛)은 양왕(襄王)의 실정을 비판하고 조나라로 가버렸다. 훗날 그 지적이 옳았음을 깨달은 양왕이 장신을 불러 대책을 묻자, 그의 답변은 이렇게 시작한다.

제가 듣건대 세상 사람들이 “토끼를 발견하고 사냥개를 돌아보아도 아직 늦지 않았으며, 양을 잃고 외양간을 고쳐도 아직 늦지 않았다.”고들 합니다.(臣聞鄙語曰, “見而顧犬, 未爲晩也. 亡羊而補牢, 未爲遲也.”)

‘양을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것을 어리석게만 생각하던 나는 이 구절 앞에서 일순 당황하였다. 당시 널리 쓰던 한글 옥편을 찾아보니 ‘망양보뢰’의 뜻을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와 같다고 하였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고 하는 국어사전의 설명도 마찬가지였다. 이것은 『전국책』에서 유래한 이 말의 의미를 완전히 거꾸로 읽은 것이 아닌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양을 잃은 뒤에도 외양간은 고쳐야 한다. 이것이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는 지혜이다. 실제로 ‘망양보뢰’의 예전 용례들도 모두 이런 긍정적 의미로 사용되고 있었다. 중국 친구와 이야기하면서 일부러 이 말을 써 보았더니, 그는 분명히 ‘양을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계책을 칭찬하였다. 전국시대 사람들의 슬기가 현재 중국인들에게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숱한 역사의 부침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자신의 정체성(正體性)을 잃지 않았던 이유를 알 듯하였다. 그리고 옛날부터 세상에 떠돌던 이러한 말과 지혜를 전해주는 『전국책』을 고전으로 불러도 좋을 것 같았다. 21세기에 또 다시 부상하는 중국의 힘도 어쩌면 이렇게 역사의 교훈을 되새기며 미래를 준비한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왜 우리들은 소를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것을 어리석다고 비웃어 왔는가? 혹자는 이 속담에서 중국과 다른 한국의 현실이 잘 드러난다고 할 수도 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양을 거의 기르지 않았고, 농가는 보통 소 한 마리를 치는 것이 고작이었기 때문이다. 기르던 양들 중 하나를 잃으면 우리를 고쳐야겠지만, 한 마리뿐인 소가 도망갔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을 잃어버린 뒤일 터이니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혹자는 ‘망양보뢰’가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으로 바뀌는 과정이 주체적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현명함이라고 우길 법도 하다. 그러나 다시 소를 기르지 않을 작정이면 모르겠으나, 역시 우리는 손보지 않을 수 없다. 외양간을 고치는 것을 비웃는 일은 당장의 효용만 아는 몰역사적 단견(短見)에 지나지 않는다.

『전국책』은 주지하듯이 전국시대 유세가(遊說家)들의 변설(辨說)이나 제왕(諸王)과의 대화 등을 나라 별로 모은 책이다. 우리들이 지금 보는 것은 전한 말에 유향(劉向)이 편찬한 책의 일부이고 신뢰도 높은 역사서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책에 실린 내용은 사실무근의 날조가 아니며 전국시대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1973년 장사(長沙)의 마왕퇴(馬王堆) 한묘(漢墓)에서 출토된 『전국종횡가서(戰國縱橫家書)』는 한초에 이미 『전국책』과 같은 글이 널리 읽혔음을 실증한다. 전한 말에 쓰인 『신서(新序)』에도 앞서 본 초 양왕과 장신의 대화가 축약되어 나오는데, 그 표현이 조금 달라졌어도 ‘망양보뢰’의 지혜는 여전히 보존하고 있다.

전국시대는 중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혼란과 격변의 시기였다. 기존의 질서나 원칙은 무의미해졌고, 이 와중에서 세상이 바뀌었음을 강조한 법가(法家)의 주장이 득세하였다. 과거의 선례 이야기를 ‘수주대토(守株待兎)’의 비아냥 거리로 삼았던 한비(韓非)의 논리가 진시황(秦始皇)의 새로운 국가체제를 만드는 데 일조하였다. 그러나 이 시기에도 긴 호흡으로 과거의 잘못조차 되새기는 ‘망양보뢰’의 지혜를 가진 사람들이 세상에 많았다. 진나라의 업적과 과오를 조정(調整)하여 수백 년 지속될 왕업(王業)을 구축한 한대에도 이 말은 계속 반추되었다. 어쩌면 이러한 ‘망양보뢰’의 실천이 한 왕조를 존속시켰음은 물론 유구한 중국의 역사를 만든 토양일 수도 있다.

이른바 ‘근대’는 세계를 크게 바꾸어 놓았고, 오늘의 우리는 그 이전 시기의 기억과 경험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인간이 줄곧 ‘이기적 존재’로만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그 좋은 예이다. 지금 ‘문명사적 대전환기’를 맞이하였다고 소리치는 경우도 이러한 잘못을 범하기 쉽다. 이들에게는 현재의 체제만이 유일한 문명이고, 미래를 예측하기만 할 뿐 과거를 되돌아볼 겨를이 없다. 소를 잃어버리면 곧 외양간을 고치는 일은 안중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불확실한 미래에 제대로 대처하기 위하여 차분히 헤아려 볼 과거의 사실은 없는가? 비록 새로운 세계가 다가온다 해도 그 중심에는 오래 전부터 살아온 사람들이 있다. 설령 「심우도(尋牛圖)」의 주인공처럼 소를 찾아 떠나지는 않더라도, 일단 외양간부터 고칠 일이다. 소가 중요하다면…….

참으로 답답하고 안타깝던 작년이었다. 누군가 실수나 잘못을 하였고, 어디에선가 과실과 착오가 있었다. 이 모든 것을 잊고도 싶지만, 우리들이 이 안에서 숨 쉬는 한 그럴 수는 없다. 새해 벽두부터 즐겁지 않은 기억을 떠올리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기왕에 소를 잃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손보아야만 하는 것이다. 세상은 이러한 지혜를 간직하고 있었고, 우리들은 이를 전해주는 고전을 읽으며 살아 왔다. 이를 통해 역사는 이어지고, 그 중심에는 꿈과 희망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결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을 어리석다고 비웃지 않을 것이다.

하원수 (성균관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 부교수)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