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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득 코너

뽕짝에 대해서

부흐고비 2009. 3. 14. 01:11

 

뽕짝에 대해서...


"뽕짝"

[국어사전/명사] ‘트로트’를 속되게 이르는 말. 또는 그 가락의 흉내말.

 
색소폰 연주자들은 가끔 무대 뒤로 나갑니다. 그런데 운동하다 지나가면서 어둠속에 들리는 말이
"뭐 저따위 뽕짝을 음악이라고 불고 있냐?"
이 소리를 듣고 삭이던 어느 연주자께서 뒤풀이 장소에서 흥분하셨습니다.
"클래식이나 오페라를 듣는 장소가 따로 있는 것이고 양재천에서는 모든 대중이 좋아하는 음악을 하고 있는데, 자신이 좋아하는 장르가 아니면, 지나가면 될 것이지 어떻게 매너가 저 정도밖에 안 되냐?"
화가 나셨답니다.

뽕짝이라면 왠지 천박하게 느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외국물 먹은 국적 없는 음악이 판을 치고, 지긋한 유명가수들의 옛날 히트 곡들은 흘러간 고물 취급을 받는 참으로 이상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뽕짝은 어쩔 수 없는 우리의 진솔한 일상이자, 생활의 희비애락을 담고 있는 우리의 문화요, 전통가요입니다.

자신의 취향보다는 모두의 취향이 중요함을 왜 깨닫지 못하시는지? 그러는 분도 모임에 나가면 뽕짝을 부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입니다. 한국인의 피 속에서 유유히 흐르고 있는 뽕짝의 기운은 어쩔 수 없을 것입니다.
이제 비하하는 말투로 남을... 연주자들을 속상하게 하는 말투는 쓰지 마세요. 당신의 교양과 매너를 의심하며 다시 한번 얼굴을 쳐다보게 하지 마세요.

지난해 글을 쓰신 '천설'님의 글을 아래에 붙여 봅니다. 

 

 

뽕짝에 대해서 - 天雪, '양재천 일기'에서 http://xop.co.kr

예전 우리나라에는 민요 말고는 이런 류의 노래가 없었습니다. 트로트가 제일 처음 이 민족에게 알려진 것은 1930년 전후로 하여 일본의 엔가를 번안하여 유행시킨 것이 그 시초였습니다. 그러니 우리나라의 트로트는 태생적으로 엔가를 닮아 있을 수밖에 없는데 왜색이니 하여 단속을 했다는 게 아이러니지요.

1932년경부터 국내 작곡한 노래들이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합니다. 극심한 고통에 헤매던 서민들에게 이런 처량한 리듬의 노래는 정서적으로 잘 먹혀들었습니다. 그래서 원류는 일본 것이었으나 우리의 정서를 담기 시작하여 독특한 한국형 트로트인 ‘뽕짝’으로 발전 정착하게 된 것입니다.

요즘은 세월이 좋아 일본 방송도 집 안에서 볼 수 있습니다. 저도 가끔은 NHK 방송을 봅니다. 일본 가수들의 오리지널 엔가를 들을 기회도 많습니다. 그런데 이젠 다르더군요. 분명 한국형 뽕짝과 일본의 엔가는 너무 다릅니다. 각각의 노래 속에는 무엇이 녹아 있는지 금방 압니다.

일본 노래는 모든 발음이 유성음으로만 되어 있습니다. 그들 문자 자체가 50개의 음절로만 되어 있으니 더는 다른 소리를 낼 수도 없지요. 그래서 그 노래들은 아무리 똥폼을 잡고 노래를 해도 통통 튀기는 발음 때문에 영 진지해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천박하고 날라 갈 것 같은 가벼움에 재빨리 질리고 맙니다.

더구나 모든 음에 받침이 없으니 곡 반벙어리가 노래하는 듯 어설픈 소리로 밖에는 안 들립니다. 일본의 언어는 고한국어를 가지고 가서 받침을 빼버린 간략한 형태(그만큼 단순한 사회였기에)로 발전 하였고 그들의 문자도 이두(향찰)를 가지고 가서 그들만이 필요한 것만 취사선택하여(역시 간단하게 50개만 선택하였음) 쓰고 있으니 한국어의 용량을 100%라고 하면 그 중의 10% 정도의 음만 이용하여 소리를 내니 내 속에 찰 일이 없지요.

그리고 뽕짝을 들어 보세요. 우선 발음 체계가 틀립니다.

유성음으로 풀어 제치면 무성음이 뒤를 받쳐주어 맺히면 끊어주고 꺾어서 넘기면 부드럽게 풀어내고... 세상 어느 노래에서도 이 짓은 못하더군요. 그러니 일본 애들은 생경하지요. 일본에서 한국형 뽕짝이 히트를 치지 못하는 까닭도 바로 이겁니다. 그렇게 가볍게만 살았는데 이리 깊은 맛으로 춤을 추는 노래를 도저히 감당하는 훈련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지요.

일본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을 보면 금방 공중부양할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지 않나요. 무성음이 안 되니 억지로 속을 긁는 소리를 간간 삽입시키는데 이게 참 역겹더군요. 아무리 이미자와 나훈아의 노래라도 일본어로 바꾸어 부르는 순간 감흥은 다 날라 가 버리고 말지요.

이미자와 나훈아는 한국형 뽕짝의 백미입니다. 어느 누구도 이들의 목소리를 따라하는 걸 아직은 못 봤습니다. 이 만큼의 최고 절정의 감성을 얹어 노래할 수 있는 실력자가 아직은 없습니다. 그래서 좋아 한다는 겁니다.

뽕짝은 이제 우리 토종이 되어 버렸습니다. 남의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천시하고 낮추어 보는 눈을 가진 사람의 눈이 천박합니다. 무얼 알지도 못하면서 메이커 병에 걸린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까불어도 짜리몽땅한 한국형 체형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아무리 까불어도 한국형 음식에 맛 들여진 피를 지울 수는 없습니다. 그것처럼 내 몸에 녹아 있는 뽕짝의 지기를 어찌 낮추어 본다 하겠습니까?

 


출처 : 베트벳, 최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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