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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첫날이다. 비봉, 독종아 즐겁고 행복한 달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남산 아래로 끌어들인 동래의 바다


함해(涵海)라는 것은 내 서실의 이름이다. 내가 빌려 사는 남촌(南村)의 집은 기둥이 겨우 여덟아홉이고, 기둥 바깥에 있는 빈 터도 겨우 백여 평 남짓 된다. 대개 달팽이집이요 게딱지집이라 부르는 곳일 뿐이다. 가운데 기둥 하나를 세우고 초가로 지붕을 이은 곳이 바로 함해당(涵海堂)이라 부르는 집이다. 이곳은 모르긴 해도 바다와 몇 백리는 떨어져 있을 것인데 어찌해서 이런 이름을 붙였는가? 상상해서 이름을 붙인 것이다. 상상한다는 것이 무슨 말인가? 대개 내가 이 집 안에서 책을 읽는다. 책과 붓과 벼루 외에는 손님을 맞을 자리 하나 깔 데가 없다. 동과 서에 문 하나씩 있어 아침저녁 햇살이나 맞고 보낼 뿐이다. 게다가 나에게는 깊이 시름하는 질병이 있어 감당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매번 병이 도지면 문득 눈을 감고 조용히 누워서 평생 겪은 일을 생각해보곤 하니, 이것이 내가 참선의 수행을 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예전 영남을 유람할 때 동래의 해운대(海雲臺)와 몰운대(沒雲臺)를 올라간 적이 있다. 몰운대는 땅이 바다 한가운데로 움푹 들어가서 대가 된 곳이다. 길이 넓은 바다를 끼고 있는데 겨우 몇 길 떨어져 있지 않다. 파도 소리가 해안을 치니 그 때문에 말이 피하여 뒷걸음친다. 몇 백 걸음 가면 땅이 비로소 끝이 나고 하늘과 바다가 끝없이 펼쳐진다. 조금 있으니 바다로 들어가고 남은 햇살이 사방에서 부서진 금처럼 쏘아댄다. 만경창파 넓은 바다에 사나운 바람이 일어 이 때문에 요란한 소리를 낸다. 큰 파도가 허공에 뒤집어져서 마치 비가 내리는 것 같기도 하고 천둥이 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다가 갑자기 물결이 동탕쳤다. 내 마음이 상쾌해져서 근심이 싹 사라졌다. 돌아와 대포진(大浦鎭)의 객사에서 휴식을 취하였다. 조금 있으니 달이 떠올랐다. 바다의 빛은 거울처럼 맑았다. 나지막이 대마도가 바라다 보이는데 마치 잘 차려놓은 잔칫상 같았다. 다 장관이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을 하곤 한다. 눈은 내 방안에 있지만 오래 사방의 벽을 보고 있노라면 벽에서 파도 문양이 생겨나 마치 바다를 그려놓은 휘장을 붙여놓은 듯하다. 절로 마음이 탁 트이고 정신이 상쾌해져서 내 자신이 좁은 방안에 있다는 사실을 잊게 된다. 이 때문에 일어나 내 책을 마주하면 유창하고 쾌활하게 읽힌다. 마치 내 가슴을 바닷물로 적시는 듯하다. 그러니 예전 몰운대가 어찌 바로 내 집이 되지 않겠는가? 이제 내가 사는 달팽이집이 바로 바다가 아닌 줄 어찌 알겠는가? 그러니 집을 바닷물로 적신다는 함해라 한 것은 가능하니 엉터리가 아니다.

내가 또 생각해보았다. 저 동래의 바다는 내 시야에서는 거리가 매우 멀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천 리를 넘지 않는다. 금산(錦山)의 미라도(彌羅島)가 그 서쪽을 막고 있고 대마도가 그 동쪽을 가리고 있다. 남쪽 바다에는 섬들이 안개와 구름에 쌓여 아스라이 보인다. 이는 바다 중에서 작은 것이다. 내 집의 책을 통해서는 동서남북, 하늘과 땅, 과거와 현재에까지 미루어나갈 수 있고, 천지와 사방 안팎의 공간이나 아주 먼 고대의 시간까지 에워싸 차지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추연(鄒衍)이 세상밖에 훨씬 더 큰 세상이 있다는 구주(九州)조차1 책에서부터 벗어날 수 없게 된다. 그러니 책이라는 것의 크기를 어찌 더할 수 있겠는가? 저 바람을 타고 구만 리를 날아오르는 큰 붕새나 몸집이 자그마한 메추라기나 소요(逍遙)를 즐기는 것은 한가지다.

비록 그러하지만 가장 좋은 것은 덕을 확립하는 일이요, 다음은 저술을 이루는 일이다. 내가 물에 대한 관찰을 통하여 내 국량을 키워나가 끝없는 바다에 이를 수 있다면, 또 어떠한 것이 이에 비견할 것이겠는가?

이종휘(李種徽, 1731~1791),〈바닷물로 적시는 집(涵海堂記)〉《수산집(修山集)》

 

 

  1. 전국시대 제(齊)의 변설가(辯舌家) 추연(鄒衍)은 “유자들이 말하는 중국이라고 하는 것은 천하 가운데 팔십일 분의 일에 해당하는 것일 뿐이다.”라 하였고 “구주 밖에 다시 구주가 있다.”고 하였다. 구주는 중국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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