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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랑거리는 물결을 생각하는 집
큰 대륙도 결국은 바다 위에 떠 있는 하나의 섬이다. 작은 섬에 산다고 섬사람이라 놀리지만 육지라고 하는 것도 크게 보면 바다 위에 떠 있는 섬일 뿐이다. 그래서 물이 보이지 않는 한양의 도성 안에 집을 짓고 살면서도 스스로 섬에 살고 있는 양 찰랑거리는 물결을 바라본다고 선언한 사람이 있었다. 제 집 이름을 문의당(文漪堂)이라 붙여 놓고 그렇게 상상으로 물결을 보았다. (이종묵,서울대 국문학과 교수)
신한수(申漢叟)1가 제 집 이름을 문의당(文漪堂)2이라 하고 나에게 편지를 보내어 이렇게 말하였다.
“내 품성이 물을 좋아하기에 늘 도성 안에 볼 만한 샘이나 못이 없는 것을 한스럽게 생각하였소. 비록 물을 바라보는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이를 시행할 곳이 없었소. 그러다 천하의 지도를 보다가 터득한 바가 있었지요. 대개 많은 물이 온 세상 만국에 푸른데, 크게는 배들이 줄지어 늘어선 것과 같은 곳도 있고, 작게는 갈매기나 해오라기가 물결에 뜰락 잠길락 하는 곳도 있지요. 사람들이 온 세상 만국에 두루 퍼져 있는 것은 모두 물 가운데 있는 존재일 뿐이지요. 이 집 이름을 문양이 있는 물결이라는 뜻의 문의라고 한 까닭이 이것이라오. 당신은 나를 위하여 기문을 지어주시지 않겠소.”
내가 이를 보고 웃으며 말하였다.
“세상에는 정말로 그 실체가 없는데도 그 이름을 차지하는 것이 있다오. 이제 당신이 그 집에 이름을 붙인 것은 가히 그 실체가 없다 하겠소. 비록 그러하지만, 당신도 또한 할 말이 있겠지요. 이제 바다의 섬 가운데 집이 있는 사람은, 남들이 반드시 물에서 산다고 하지 산에서 산다고는 말하지 않겠지요. 섬사람들 중에서 정말 담장을 두르고 집을 짓고 문을 닫은 채 들어앉아 있는 자는 매일 파도를 몸으로 직접 접하는 것은 아니라는 이유를 들어 이들이 물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 아니 되겠지요. 이와 같은 것은 사람들이 모두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지요. 그런데 어찌 당신의 말만 의심을 품겠나요? 큰 땅도 하나의 섬이고, 중생들도 모두 다 섬사람이지요. 비록 배를 집 삼아 떠다니면서 매일 물과 더불어 사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형편상 눈을 늘 한 곳에 고정시켜 움직이지 않게 할 수는 없을 것이고, 필시 잠시라도 시선을 움직일 것이요. 그러면 그 순간은 잠시 마음이 물에서 떠나겠지요. 반걸음 간 것이나 천리를 간 것이나 매한가지인 법이지요.
이제 당신이 이 집에 거처하면서 물결이 찰랑거리는 것을 한 번 보고자 하는데, 비록 아침에 도성 안에 있다가 저녁에 강호로 나간다 하더라도, 늘 물에 눈길을 둘 수는 없는 것은 당신과 저 사람이 다를 것이 없지요. 저 사람은 길어도 눈 한 번 깜빡할 순간이고, 당신은 짧아도 아침에서 저녁까지 제법 시간을 두고 있겠지요. 눈 깜빡할 사이는 아침에서 저녁까지와 비교한다면 차이가 있겠지만, 그러나 그 오래 지속되는 측면에서 말한다면, 하늘을 쳐다보고 땅을 내려다보는 짧은 사이에도 이미 지나간 묵은 자취가 된다오. 그 오래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말한다면, 백 년이나 천 년도 하루아침과 같을 것이지요. 저 하늘을 쳐다보고 땅을 내려다보는 시간이 길고 백 년 천 년의 시간이 길지 않다면, 눈 깜빡하는 순간이 아침에서 저녁까지의 시간을 비웃을 것이니, 나는 그렇게 해도 좋을지 모르겠소. 누가 그것이 실체가 아니라고 말하겠소?”
내말을 듣고 어떤 이가 “당신의 말은 따져보면 그럴 듯하오. 그러나 내가 겁나는 것은 남들이 한수에게 산에 살면서 물고기와 자라로 예를 표한다고 책망할까 하는 일이라오.” 라 말하였다. 이에 내가 “정말 이러하다면, 당신은 구양수(歐陽脩)의 화방재(畵舫齋)에서 뱃사공을 부를 수 있겠군.” 하고는 함께 크게 웃었다.
서영보(徐榮輔, 1759~1816)3 〈문의당기(文漪堂記)〉《죽석관유집(竹石館遺集)》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_강희안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신한수(申漢叟)는 신위(申緯)를 지칭하는데 서영보와 절친하였다. [본문으로]
- 문의당이라는 집 이름은 당시 문인에게 그리 낯설지 않았다. 왕세정(王世貞)의 엄산원(弇山園)에 문의당이 있었고 원굉도(袁宏道) 역시 같은 이름의 집을 두고 명문으로 이름난 〈문의당기(文漪堂記)〉를 지은 바 있다. 또 서영보의 후배인 이학규(李學逵) 역시 자신의 문집을 《문의당집(文漪堂集)》이라 하였다. [본문으로]
- 서영보는 본관이 달성, 자가 경세(慶世), 호는 죽석(竹石), 옥경산인(玉磬山人), 약산병리(藥山病吏) 등을 사용하였다. 학문과 문학이 모두 뛰어났고 신위(申緯), 이만수(李晩秀) 등과 절친하였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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