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습득 코너

제 몸에 맞는 약 / 이복휴

부흐고비 2009. 7. 9. 08:14

 

제 몸에 맞는 약


교검(校檢) 성대중(成大中)은 나이가 예순인데도 피부가 팽팽하고 윤기가 흐른다. 훤한 얼굴과 하얀 머리카락이 사람들의 눈을 시원하게 한다. 노인의 기색이 거의 없다. 내가 그 이유를 캐물었더니 성대중이 이렇게 말하였다.

“사람들은 저마다 몸에 약을 가지고 있지요. 다만 모르고 있을 뿐이랍니다. 나는 어릴 적에 병약하였고 태어나 열대여섯이 되도록 잡인들과 함께 거처한 적이 없어 음란한 일을 알지 못하였지요. 열일곱에 비로소 가정을 꾸리게 되었는데 남녀의 일을 잘 하지 못하여 1년에 겨우 몇 번만 관계를 가졌답니다.

불행히 일찍 과거에 급제하여 여러 번 찰방(察訪)과 고을원이 되었는데, 종종 관아의 물건이 흘러 들어오면 차지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지요. 이에 발분하여 잘못을 깨달아 뉘우치면서 이렇게 생각하였지요. ‘여기에는 네 가지 해로움이 있으니, 재물을 손상하고 정신을 소진하며 재앙을 부르고 비방을 얻게 된다.’ 마침내 그런 마음을 버리게 되었더니, 과연 몸에 병이 없어지고 재산도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쉰이 넘은 뒤로는 안방에서라도 부인을 가까이하지 않았지요. 그랬더니 잠도 잘 자고 밥도 잘 먹게 되어 평생 병이 없었답니다. 집사람 역시 병이 적어지고 밥도 많이 먹게 되었으며, 피부도 한결같았지요. 그래서 마침내 부부가 해로하게 된 것입니다. 색을 좋아하는 일은 비단 남자에게만 손상을 끼치는 것이 아닙니다. 여자에게는 더욱 심한 법입니다. 여자들의 타태(墮胎), 혈붕(血崩), 노점(勞漸)1 등의 병은 모두 성관계 때문에 상처를 받아 생기는 것입니다.

내가 웃으면서 말하였다.

“팽견(彭鏗)2이 무슨 약을 먹었기에 아내를 마흔 아홉 명씩이나 장사지내면서도 혼자 아무 병이 없었던 말인가? 정말 몸속의 약을 복용하여 노쇠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승려나 도사 중에 어찌 머리가 허연 사람이 있을 수 있겠는가? 만약 봉천(奉倩)이나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이 이야기를 듣는다면 머리를 흔들며 냉소를 머금지 않겠는가?”3

이복휴(李福休, 1729~1800), 〈신약설(身藥說)〉《한남집(漢南集)》

 

  《동사여담》에 실려있는 성대중 초상화

해 설 - 이종묵(서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성대중(成大中)은 학문이 대단한 인물이었으나 서얼 출신이라 제대로 재주를 발휘하지 못하였다. 그 울분에 건강을 해쳤을 법도 한데, 오히려 남들보다 건강하여 예순 살에도 노인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게다가 온갖 보양식과 보약을 먹는 부자들과 달리, 성대중은 평생 약조차 먹지 않았다. 그의 건강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하였을 것이다.

이복휴는 성대중에게 그 비결을 물었다. 성대중은 여색을 탐하지 않는 것을 가장 큰 비결로 들었다. 젊은 시절에도 부부 관계를 자주 갖지 않았고 쉰 살이 넘어서는 아예 관계를 끊었기 때문에 부부가 모두 건강을 유지하여 해로할 수 있었다고 답하였다. 성대중에게 제 몸의 약은 절제된 성생활이었던 것이다.

이복휴는 부부 관계를 갖지 않은 것이 건강과 장수의 비결이라는 성대중에게 반론을 제기하였다. 800년을 사는 동안 49명의 아내를 두었던 팽조, 금슬 좋게 백년해로한 봉천과 사마상여의 예를 들면서 부부 관계가 장수와 무관하다고 말하였다. 남녀 관계를 갖지 않는 승려나 도사도 늙는 것만은 피할 수 없으니, 성대중의 주장은 논리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면박을 준 이복휴는 머쓱하였던지 이 글 뒤에 짧은 글을 하나 덧붙였다. 후한(後漢)의 명의 곽옥(郭玉)은 부귀한 이를 치료하기 어려운 네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하였다. 의사를 믿고 맡기지 않는 점, 근실한 태도를 취하지 않는 점, 골격이 나약하여 약이 잘 받지 않는 점, 나태하여 몸을 수고롭게 하지 않는 점이 그것이다. 이복휴는 이 말을 본떠 이렇게 말했다. 나태하게 거처하여 사심이 많은 점, 어릴 적부터 방탕한 점, 부귀를 바라느라 편안하고 담담하게 살지 못하는 점, 좌우에서 여색을 권하는 점이야말로 몸에 지닌 약으로 치료해야 할 병이다. 이것은 말하기는 쉽지만 실천하기는 어려운 일이라 하였다.

이복휴가 성대중에게 한 이야기는 사실 농으로 한 것이다. 필사본으로 전하는 이복휴의 문집에 이 글을 삭제하라는 표시가 되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글을 통해서 옛사람의 생활을 살필 수 있다.

  1. 모두 부인병이다. 타태는 유산하는 것이고, 혈붕은 월경 시기가 아닌데 하혈을 하는 것이며, 노점은 폐결핵처럼 피를 토하는 병이다. [본문으로]
  2. 팽견은 장수의 대명사 팽조(彭祖)이다. 800년을 살았는데 아내가 49명, 자식이 54명이었다고 한다. [본문으로]
  3. 봉천은 삼국시대 위(魏)나라 순찬(荀粲)의 자이다. 조홍(曹洪)의 딸과 혼인하였는데 아내와 금슬이 매우 좋았다. 벗들이 아내에 빠져산다고 놀리자, 봉천은 “부인에게는 덕을 따질 것이 없고 색(色)을 위주로 해야 옳다.”고 하였다. 그는 아내가 열병을 앓으면 밖에 나가 냉기를 몸에 받아와서 부인의 열을 식혀 주곤 하였는데, 부인이 죽은 뒤에는 지나치게 상심한 나머지 요절하고 말았다. 한나라의 문장가 사마상여는 탁왕손(卓王孫)의 집에 초대를 받아 가 청춘과부로 있던 그의 딸 탁문군(卓文君)과 눈이 맞았다. 이들은 함께 도주하여 가난하지만 금슬 좋게 살았다. [본문으로]

'습득 코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강의 팔경 / 서유구  (0) 2009.07.13
산노래란?  (0) 2009.07.10
빌려 타는 말 / 이곡  (0) 2009.07.08
육화경 / 목암선향  (0) 2009.07.02
남산 아래의 동래바다 / 이종휘  (0) 2009.07.01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