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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득 코너

참된 지혜 솔로몬, 손변

부흐고비 2009. 11. 25. 09:01

 

참된 지혜 솔로몬, 손변


고려 중기의 재판관으로 손변(孫抃)이라는 사람이 있었답니다.

 

그는 일찍이 경상도의 민정을 살피다가, 누이와 동생이 다투는 송사를 다루게 되었다고 합니다. 남동생은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딸과 아들이 모두 같은 부모의 소생인데, 어떻게 누님 혼자 부모의 재산을 차지하고 저는 나누어 받을 재산이 없겠습니까?” “임종하실 때, 아버지께선 가산을 모두 내게 주셨다. 네가 받은 것은 검정 옷 한 벌에다 갓 하나, 미투리 한 켤레, 그리고 종이 한 묶음뿐이다. 문권에 그렇게 나와 있다.” 라고 누이는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둘이 그렇게 다투니, 수령들도 판결을 내리기가 어려워서, 송사가 여러 해 끌었던 것입니다.

그 송사를 맡게 된 손변이 물었습니다.

“너희 아버지가 죽을 때 너희 어머니는 어디 있었느냐?”

어머니가 먼저 죽었다는 대답이 나왔습니다. 그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때 너희는 나이가 몇이었느냐?”

그러자 누이는 이미 출가했고, 남동생은 어렸다는 대답이 나왔습니다.

그 대답을 듣고 손변이 말했습니다.

“부모의 마음은 아들에게나 딸에게나 마찬가지인데, 장성하여 출가한 딸에겐 후하게 하고, 어미 없는 어린 아들에겐 박하게 할 리가 있겠느냐? 내 생각하건대, 아들이 의지할 곳은 누나뿐인데, 만일 재산을 누나와 똑 같이 나누어 준다면, 누나의 사랑이 혹시 극진하지 못하거나 기르는 것이 온전하지 못할까 너희 아버지는 두려워했을 것이다. 그래서 아들이 크면, 이 종이로 訴狀을 만들고, 검정 옷에 갓 쓰고 미투리 신어 정장을 하고, 관가에 가서 소송을 하면, 판결해 줄 사람이 있으리라는 뜻으로 네 가지 물건만을 물려준 것이다.”

이 말을 듣자, 누이와 남동생은 아버지의 뜻을 깨닫고 감동해서 서로 껴안고 울었다고 합니다.

역사를 이끈 위대한 지혜들 (복거일의 세계사 인물 탐구) 중에서

 


 

[서언]
“좋은 요리사는 해가 지나면 칼을 상하게 하고, 보통 요리사는 달이 지나면 칼을 부러뜨리나이다. 소인의 칼은 열아홉 해 동안 소를 몇천 마리나 잡았지만, 칼날이 숯돌에서 막 가져온 듯하나이다. 마디엔 틈새가 있고, 칼날은 두터움이 없사옵니다. 두터움 없음으로 틈새 있음 속으로 들어가니, 넓고 넓어, 칼을 놀릴 여지가 있사옵니다. 그래서 열아홉 해가 지났어도, 칼날이 숫돌에서 막 가져온 듯하나이다.”

『장자(莊子)』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좀 과장된 면이 있지만, 사물을 다루는 데서 결을 찾는 일이 중요함을 잘 보여준다. 작게는 연필을 깎는 것부터 크게는 나라를 다스리는 것까지, 결을 따르는 것은 중요하다. 순리(順理)나 역사적 교훈이란 개념도, 따지고 보면, 사물의 결을 찾아 그것에 거스르지 않게 일을 처리하는 것이다.

 

복거일, 卜鉅一

소설가, 시인, 사회 평론가. 1946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났다. 저서로 장편소설 『비명(碑銘)을 찾아서』 『높은 땅 낮은 이야기』 『역사 속의 나그네』 『파란 달 아래』 『캠프 세네카의 기지촌』 『마법성의 수호자, 나의 끼끗한 들깨』 『목성 잠언집』 『보이지 않는 손』 『그라운드 제로』 등과 시집 『五丈原의 가을』 『나이 들어가는 아내를 위한 자장가』가 있다. 또한 사회 평론집으로 『현실과 지향』 『진단과 처방』 『쓸모없는 지식을 찾아서』 『죽은 자들을 위한 변호』 『역사를 이끈 위대한 지혜들』 『정의로운 체제로서의 자본주의』 『벗어남으로서의 과학』 『경제적 자유의 회복』 등과 산문집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죽음 앞에서』 『소수를 위한 변명』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 『동화를 위한 계산』 『영어를 공용어로 삼자』 등이 있으며, 그 밖에 『복거일의 세계환상소설사전』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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