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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책을 읽는 즐거움 / 장혼

부흐고비 2010. 1. 19. 00:08

 

 

책을 읽는 즐거움


사람들이 즐거워할 만한 것은 많습니다. 귀에는 소리가, 눈에는 색깔이, 입과 코에는 냄새와 맛이 그러하지요.1 이러한 것들이 눈앞에 몰려들어 마음을 흔들면, 반드시 온갖 지혜를 다 짜내고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내 하고자 하는 바를 이루려고 하지요. 그러나 그 좋아하는 바는 불과 잠깐 사이의 일일 뿐입니다. 여러 가지 음악이 떠들썩하거나 맑은 노래 소리가 울려 퍼지거나 간에, 연주가 한 번 끝나고 나면 산은 텅 비고 물만 흐를 뿐이지요. 하얗게 분을 바르고 새까맣게 눈썹을 칠하고서 웃음과 교태를 바치는 여인이 있다 하더라도, 이들이 한 번 흩어지고 나면 가물거리는 촛불과 지는 달빛만 비칠 뿐이지요. 난초와 사향이 향을 풍겨도 한 번 냄새를 맡고나면 그만이지요. 맛난 고기가 가득 차려져 있어도 불과 한번 먹고 나면 그만이지요. 이 모두가 태허(太虛)에 회오리바람이 먼지를 쓸어 가버린 것2과 다름이 없겠지요.

이에 비하여 눈과 귀에도 즐겁고, 마음과 뜻에도 기뻐서, 빠져들수록 더욱 맛이 있어 늙음이 이르는 것도 알지 못하게 되는 것은3 책을 이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비록 혼자 호젓한 때 적막한 물가에 있다 하더라도, 문을 닫고 책을 펼치고 있노라면, 완연히 수백 수천의 성현이나 시인, 열사와 더불어 한 침상 사이에서 서로 절을 하거나 질타하는 것과 같으리니, 그 즐거움이 과연 어떠하겠습니까? 사람들 중에 나의 법도를 따르고 나와 마음을 함께하는 이는 거의 드물겠지요. 육예(六藝)에 종사하지 않는다면 그만이겠지만, 종사하는 이가 있다면 책과 더불어 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저 금과 옥은 보배고, 문장도 또한 보배지요. 백 근이나 되는 묵직한 물건은 보통사람이라면 감당하기 어렵겠지만, 다섯 수레의 책도 돌돌 말면 가슴 속 심장 안에 넣어 간직해둘 수 있을 것이요, 이를 쓰면 조화에 참여하고 천지에 가득하게 되겠지요.

아, 사람이 어찌 쉽게 늘 이를 누릴 수 있겠습니까? 지금 세상에 이를 누릴 이가 그 얼마나 되겠습니까? 제가 당신과 알게 된 지는 오래되었으나 만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사귐이 얕은데 말이 깊은 것은 선철께서 경계한 바지요.4 그런데도 당신은 저를 못났다 여겨 멀리하지 않으셨으니, 이 때문에 감격하여 부끄럽습니다. 보답을 하고자 생각을 하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하였습니다.

예전에 당신의 문장을 보았습니다. 또한 가히 정교하고 치밀하다고 말할 만하였습니다. 그러나 공자께서 “좋아하는 것은 기뻐하는 것만 같지 못하고, 기뻐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같지 못하다.”5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대개 배울 줄은 알지만 좋아할 줄 모르는 자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좋아하지만 그 뜻을 가다듬어 그 힘을 다하지 않는다면, 앞서 말한 입과 코, 귀, 눈이 누리는 짧은 즐거움과 그 거리가 한 치도 되지 않는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저와 당신이 서로 권면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말이 망령되다 마시고 가려 받아들이신다면 참으로 다행이겠습니다.

장혼(張混,1759~1828),〈김용재에게 주는 편지[與金庸齋書]〉,《이이엄집(而已广集)》

 

송석원시사아회도(松石園詩社雅會圖)_이인문_개인 소장


[해설] - 이종묵(서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장혼은 여항의 가난한 선비였다. 인왕산 자락 옥류동에서 시와 글을 사랑하면서 살았다. 가난하지만 글을 좋아하여 〈평생지(平生志)〉라는 글을 지어 자신이 사랑하는 삶을 담아내었다. 현실에서 누리기 어려운 많은 책과 꽃나무를 글로 담아 우아한 삶을 상상으로나마 즐겼다.

200년 쯤 전 인왕산 자락 옥류동에는 가난하지만 학문과 문학을 사랑하던 이런 선비들이 많이 살았다. 장혼의 이이엄(而已厂) 외에도 천수경(千壽慶)의 송석원(松石園), 왕태(王太)의 옥경산방(玉磬山房), 김낙서(金洛瑞)의 일섭원(日涉園), 이경연(李景淵)의 적취원(積翠園)과 삼우당(三友堂) 등 작지만 운치 있는 집이 있었다. 장혼과 절친하였던 김의현(金義鉉) 역시 근처에 살았다. 김의현은 자를 사정(士貞)이라 하고 호를 용재(庸齋)라 하였는데, 그의 시집 《용재집》이 전한다. 장혼과 함께 규장각에서 하급 관리로 일하였다.

장혼과 그의 벗들은 하급 관리로서 문서더미 속에 살았지만 그럼에도 풍류를 알아 짬을 내어 자주 옥류동에서 모임을 가지고 함께 시를 짓곤 하였다. 번듯한 양반의 신분이 아니기에 후세에 시인으로서 이름을 남기기 위하여 아름다운 시를 짓고자 노력하였다.

장혼 역시 그러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시에만 몰두하지 않고 문학과 교육 등에 대한 많은 책을 편찬하고 또 인쇄하였다. 장혼은 참으로 책을 사랑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벗 김의현이 아름다운 시를 지어 보였지만 시보다 책을 더욱 사랑하라는 충고의 말을 넌지시 던졌다. 학문을 진정으로 배우고 진정으로 사랑하며, 이를 위해서는 책을 진정으로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 것이다. 인생의 쾌락은 길지 않다. 맛난 음식, 아름다운 음악, 예쁜 얼굴도 돌아서면 허망하다. 가난하고 외로운 처지라도 문을 닫고 차분히 책을 읽으면 마음을 함께 할 수 있는 벗이 나오고, 함께 학문과 문학을 논할 만한 고인을 만날 수 있다. 이들과 책상을 함께 하여 나란히 있으니 이보다 즐거운 일이 무엇이겠는가?

장혼은 여기에 더하여 명언을 하나 보태었다. 수백 근 되는 무거운 물건을 들고 다닐 수 없지만, 수백 권의 책 속에 들어 있는 지식은 돌돌 말아 가슴 속에 담아 다닐 수 있다 하였다. 가끔은 어깨 위 무거운 명리의 짐을 내려놓고 가슴속에 천 권의 책을 담아 다니는 것이 어떨까?

  1. 《맹자》에 “입은 좋은 맛에 대하여, 눈은 좋은 색에 대하여, 귀는 좋은 소리에 대하여, 사지는 안일함에 대하여 취하려 드는 것이 본성이다.[口之於味也, 目之於色也, 耳之於聲也, 四肢之於安逸也 性也]”라 하였다. [본문으로]
  2. 왕양명(王陽明)의〈남원선에게 답하는 글[答南元善]〉에 “만약 눈앞의 먼지를 씻고 귀속의 마개를 뽑아 버린다면 부귀와 빈천, 득실과 애정이 이르는 것이 마치 회오리바람과 떠다니는 노을이 태허에서 오가면서 변화하는 것과 같아서, 태허의 실체는 늘 텅 비어 막힌 것이 없을 것이다[若洗目中之塵, 而拔耳中之楔, 其於富貴貧賤得喪愛憎之相值, 若飄風浮靄之往來變化於太虚, 而太虚之體, 固常廓然其無碍也]”라 하였다. [본문으로]
  3. 공자가 《논어》에서 “발분하여 밥 먹는 일도 잊고 학문을 좋아하여 근심을 잊어서, 몸이 늙어가는 것도 알지 못한다.[發憤忘食, 樂以忘憂, 不知老之將至]”라 한 말을 바꾼 것이다. [본문으로]
  4. 《전국책(戰國策)》에 교분이 얕은데 경솔하게 깊은 내용을 말하는 것을 경계하라는 말이 보인다. [본문으로]
  5. 《논어》〈옹야(雍也)〉에 “도를 아는 것은 도를 좋아하는 것만은 못하고, 도를 좋아하는 것은 도를 즐기는 것만은 못하다.(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라 하였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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