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수필 읽기

매미소리를 들으며 / 홍대용

부흐고비 2010. 8. 16. 08:11

 

매미소리를 들으며


대용(大容)은 머리를 조아리고 사룁니다. 작별한 뒤로 평안히 지내시는지, 회시(會試)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지요? 소식을 들을 길 없으니, 한갓 마음이 답답할 뿐입니다. 아아! “즐거움은 벗을 새로 아는 것보다 즐거운 게 없고, 슬픔은 생이별보다도 슬픈 게 없다.1">고, 그 옛날 굴대부(屈大夫)2가 이미 우리의 속마음을 다 말하여 놓았으니, 다시 무슨 말을 더하겠습니까? 오직 형이 보내신 편지에서 ‘우정이 깊고 이별이 괴로운 것이 기대가 간절하고 촉망이 지극함만 못하다.’ 하신 몇 마디 말을 마음에 새겨두고 조석으로 늘 조심하고 경각함으로써 나의 좋은 벗을 저버리지 않고자 할 따름입니다.

이 아우는 4월 11일에 압록강을 건넜고 5월 2일에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 달 15일에 제공(諸公)들의 간독(簡牘)을 모두 4개의 필첩(筆帖)으로 묶어 《고항문헌(古杭文獻)》이라 제목(題目)을 붙였고, 6월 15일에는 그 동안 우리가 주고받은 필담(筆談)과 우리 만남의 전말, 주고받은 편지 등을 아울러 수록, 3권으로 만들어 《건정동회우록(乾淨衕會友錄)》이라 제목을 붙였습니다.

때는 늦여름이라 매미소리가 더욱 맑으니, 늘상 평상복을 입고 치건(緇巾)을 쓰고서 향산루(響山樓)3에 편안히 앉아서 마음 내키는 대로 이 책들을 뒤적이노라면 즐거워서 근심이 잊혀지고 그 수택(手澤)을 만져보노라면 바로 그 사람을 보는 듯합니다. 이것이 이른바 조석으로 만난다4는 것일 터입니다.

나머지 얘기는 동지사(冬至使)로 가는 편에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선 자세히 적지 못하니, 지기(知己)인 형이 묵묵히 알아주길 바랄 뿐입니다. 이만 줄입니다.

홍대용(洪大容),〈추루 반정균에게 보낸 편지[與潘秋루(广+串)庭筠書]〉《담헌서외집(湛軒書外集)》1권

 

 심사정_화훼초충도_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해설]
북학파 실학자인 홍대용(1731-1783)이 중국의 벗 반정균(潘庭筠)에게 보낸 편지이다. 홍대용은 1765년(영조 41) 36세 때 서장관이 된 숙부를 군관(軍官)으로 수행, 북경에 갔다. 그 이듬해인 1766년, 홍대용은 북경의 유리창(琉璃廠)을 거닐다가 엄성(嚴誠)ㆍ반정균(潘庭筠)ㆍ육비(陸飛), 세 중국 선비를 만났다. 당시 엄성은 35세, 반정균은 25세, 육비는 48세였다. 이들은 곧바로 의기투합하여 홍대용이 북경에 머무는 두 달 동안 수시로 편지와 필담을 주고받으며 깊은 우정을 나누게 된다. 그러나 마침내 이들은 이승에서는 영영 만날 기약이 없는 작별을 하게 되었는데, 이 편지는 홍대용이 조선에 돌아와서 얼마 뒤에 쓴 것이다.

반정균이 보낸 편지에서 ‘우정이 깊고 이별이 괴로운 것이 기대가 간절하고 촉망이 지극함만 못하다.’ 했다는 것은 우정이 깊어서 이별이 괴롭지만 장래에 성취를 기대하는 마음이 더 간절하기 때문에 참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별을 앞두고 쓴 반정균의 그 편지는 절절한 우정으로 읽는 이의 심금을 울린다.

마침내 영영 이별입니까! 마침내 다시는 만날 수 없단 말입니까! 저 푸른 하늘은 어찌 이토록 잔인하단 말입니까! 이생에도 이제 그만인데 내생에야 말할 게 있겠습니까! 간장은 어이하여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단 말입니까! 어쩌면 우리들의 우정이 아직 깊지 못하여 영구한 이별의 괴로움이 아직도 참담하지 못한 것입니까!

족하는 일찍이 말씀하기를 “훗날 저마다 성취하는 바가 있으면 모두 지인지명(知人之明)을 저버림이 없을 터이니5, 비록 영구히 만날 기약이 없더라도 한스럽지 않을 것이다.” 하였으니, 그렇다면 우정이 깊고 이별이 괴로운 것을 기대가 간절하고 촉망이 지극함과 비교해 보면 어느 쪽이 무겁고 어느 쪽이 가벼움이 있을 것입니다. 훗날 덕을 망치고 행실을 잃어서 좋은 벗을 몹시 저버린다면 비록 훗날 서로 만나더라도 어찌 얼굴을 들 수 있겠습니까. 훗날 행실을 닦고 명예를 세워 고인(古人)에 부끄러움이 없다면 비록 다시 살아서 만나지 못하더라도 무슨 여한이 있겠습니까. 천애 밖의 이 사람은 장차 눈물을 거두고 웃게 될 터이거늘 우정이 깊고 이별이 괴로움에 연연해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비록 그렇지만 우리의 우정은 참으로 깊고 이별은 참으로 괴로우니, 간장이 오늘 끊어지지 않으면 내일 반드시 끊어질 것입니다. 오늘 내일 이후에도 영영 끊어지지 않는다면 실로 요행일 뿐이요 끊어질 도리는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슬프다! 다시 무슨 말을 하리오. 압록강 물살이 급하니, 부디 몸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이만 줄입니다.6 홍대용은 북경에서 돌아오자 곧바로 이 세 선비들과 주고받은 필담, 서찰 등을 모아서 장정해 책을 만들었다. 그리고 매미소리를 들으며 이 책들을 뒤적이며 그리운 마음을 달랬다.

매미소리가 조선시대 선비들에게 각별한 의미를 갖게 된 것은 퇴계(退溪) 이황(李滉)으로부터 비롯하였다. 퇴계가 주자(朱子)의 편지를 추려서 《주서절요(朱書節要)》를 편찬할 때 주자가 친구 동래(東萊) 여조겸(呂祖謙)에게 보낸 답서 중에서 “요 며칠 동안 매미소리가 더욱 맑으니, 들을 때마다 그대의 높은 풍모를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었네.[數日來, 蟬聲益淸 每聽之, 未嘗不懷高風也.]”라는 구절만 발췌해 실었다. 남언경(南彦經 1528~1594)이 ‘이런 헐후(歇後)한 구절을 왜 뽑았느냐.’고 물은 데 대해 퇴계는 “나는 평소 이러한 대목을 매우 좋아하였다. 그래서 여름철 녹음이 우거지고 매미소리가 귀에 가득 들려오면 마음 속에 언제나 두 선생(주자와 여동래(呂東萊))의 풍모를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하였다. 이로부터 《주서절요》가 많이 읽힌 조선에서는 매미소리를 듣는 것이 벗을 생각함을 뜻하는 고사로 항용 쓰이게 되었다.

홍대용과 이 중국 선비들과의 깊은 우정은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이〈회우록서(會友錄序)〉ㆍ〈홍덕보묘지명(洪德輔墓誌銘)〉과 같은 명문으로 유감없이 표현해 놓았다. 그리고 홍대용이 세상을 떠난 지 60년 뒤 그의 손자 홍양후(洪良厚)는 북경에 갔을 때 반정균의 손자 반공수(潘恭壽)에게 편지를 보내 세의(世誼)를 이었으니, 이들의 우정은 실로 시공을 초월했다 해도 좋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의 사물마다 하나의 기억을 떠올리곤 한다. 그 기억이 명료한 것도 있고 희미한 것도 있고 혹은 중첩된 것도 있지만, 기억을 통해서 사물을 인식하고 그러한 기억과 인식이 모인 것이 우리가 ‘마음’이라 하는 마음이다. 얼마 안 남은 올여름에는 매미소리를 들으면서 옛 선비의 맑은 우정을 떠올림으로써 좋은 기억 하나를 마음에 새겨두는 것은 어떨까.

글쓴이 / 이상하 (한국고전번역원 부설 고전번역교육원 교수)

  1. 전국시대 초(楚)나라 굴원(屈原)의〈구가(九歌)〉에 보인다. <文選 卷33 [본문으로]
  2. 굴대부(屈大夫) : 굴원(屈原)을 가리킨다. 굴원이 삼려대부(三閭大夫)였었기 때문에 이렇게 부르는 것이다. [본문으로]
  3. 향산루(響山樓) : 홍대용의 서재이다. 반정균(潘庭筠)이 필담을 하면서 홍대용에게 “향산루에는 장서가 몇 천권입니까?” 하니, 홍대용이 “7,8백권 있습니다.” 하였다.[蘭公曰: “響山樓藏書幾千卷?” 余曰: “有七八百卷.”] 《湛軒書外集 2卷 乾淨衕筆談》 [본문으로]
  4. 조석으로 만난다 : 《장자(莊子)》〈제물론(齊物論)〉에 “만세 후에라도 한 번 대성인을 만나게 되어 그 뜻을 알게 된다면 그것은 아침저녁으로 만나는 것과 같은 행운이라 할 것이다.[萬世之後而一遇大聖 知其解者 是旦暮遇之也]” 한 데서 온 말로 오랜 뒤에라도 훌륭한 성인(聖人)이나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면 이는 마치 아침저녁으로 만난 것과 같은 행운이라는 말이다. 여기서는 이 책들을 통해 조석으로 늘 지기(知己)의 벗을 만난다는 뜻으로 쓰였다. [본문으로]
  5. 훗날……터이니 : 헤어진 뒤에 열심히 노력하여 서로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훌륭한 선비가 된다면 저마다 나를 지기(知己)로 인정해준 벗을 저버리지 않게 된다는 뜻이다. [본문으로]
  6. 蘭公書曰 : 竟永別耶! 竟不得再唔耶! 蒼蒼者天, 何其忍若是耶! 此生已休, 况他生耶! 肝膓何以欲斷未斷耶! 豈我輩之交猶未深而永別之苦猶未慘耶! 足下曾諭云: “異時各有所成, 皆無負知人之明. 雖永無見期, 不恨也.” 然則交之深別之苦, 以視期之切望之至, 有重輕也. 使他日敗德喪行, 深負良友, 縱他日相對, 亦復何顔; 使他日砥行立名, 無愧古人, 縱再生不遇, 亦復何恨! 天涯之人, 將破涕爲笑, 而又何必沾沾於交之深別之苦耶! 雖然, 交誠深也, 別誠苦也. 肝膓今日不斷, 明日必斷也. 卽今明以後, 竟永不斷, 亦偶幸耳. 而可斷之道, 仍在也. 嗚呼, 復何言哉! 鴨江水急, 千萬珍重. 不具. 《湛軒書外集 3卷 杭傳尺牘 乾淨衕筆談》 난공(蘭公)은 반정균의 자이다. [본문으로]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