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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대통령 드라마' 관전법
첫 여성 대통령 탄생을 다루는 SBS 드라마 '대물'이 화제다. 정치권의 관심은 이 드라마가 누구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인가에 쏠려 있다. 민주당에선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를 띄우려는 것 아니냐"고 불만이고, 한나라당에선 "당내 차기 대선주자들도 신경이 많이 쓰일 것"이라며 조심스러워하는 눈치다. 한 친박계 의원은 "기대 반, 걱정 반"이라고 했다.
TV 드라마 한 편에 정치권이 시끌한 이 장면, 어디선가 본 듯하다. 2005년 미국 ABC 방송이 미국의 첫 여성 대통령을 등장시킨 '커맨더 인 치프(Commander in Chief)'를 시작했을 때 꼭 이랬다. 제아무리 민감한 이슈를 다룬다 해도 TV 드라마일 뿐이다. 좋아하는 사람은 보고 아니면 그만이다. 그러나 미국 역사상 여성으로서 대통령 당선 가능성에 가장 근접한 힐러리 클린턴 당시 민주당 상원의원의 존재 때문에 이 드라마를 둘러싼 논란과 음모론이 끊이지 않았다.
미국 영화와 드라마를 만들고 출연하는 사람 중 민주당 지지자가 많다는 건 다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이들이 힘을 합해 힐러리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다고들 했다. 드라마를 통해 '여성 대통령'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려 한다고 했다. 그러나 큰 관심을 갖고 이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던 친구들은 하나 둘 흥미를 잃기 시작했다. "계속 보니 대통령이 여자인지 남자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고 그저 정치 드라마에 불과하더라"는 게 이유였다. 드라마는 '여성'에 초점을 맞췄는데, 보는 사람들은 그런 식의 구분에 큰 관심을 갖지 않게 된 것이다.
사실 당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자질을 갖춘 후보라면 여자든 남자든 상관하지 않고 뽑겠다'는 응답이 50%를 넘었다. 2년 후엔 그 비율이 88%로 높아졌다. 유럽이나 아시아에선 흔한 여성 대통령과 총리를 보면서 마음의 벽은 빠른 속도로 낮아졌던 것이다. 사정은 우리나라도 비슷하다. 최근 한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 절반 이상이 10년 내에 여성 대통령이 탄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면 '자질이 중요하지 성별은 중요하지 않다'일 것이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는 "내 아버지는 영국인들이 절대로 여성 총리를 뽑을 리가 없다고 단언했지만 얼마 안 가 마거릿 대처 총리가 등장하더니 선거에서 세 번이나 승리했다"면서, "최고 지도자를 뽑아야 하는 상황 앞에서 국민이 인종이나 성별 같은 편견에 사로잡힐 가능성은 생각보다 적다"고 했다.
다음 대선이 치러지는 2012년은 한반도를 둘러싼 환경이 급변하는 해다. 중국에선 시진핑(習近平) 시대가 열리고, 미국과 러시아도 대선을 치른다. 일본 정치는 예측불허다. 20대 아들에게 3대 세습을 선언한 북한도 2012년을 강성대국 진입의 해로 삼고 있다. 이렇게 변하는 미국과 중국, 중국과 일본, 여기에 북한까지, 그 틈새에서 선진국 진입을 이뤄야 하는 것이 다음 대통령의 임무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 '흑인 대통령이냐, 여성 대통령이냐'로 고민하던 미국인들은 결국 '변화'를 택했다. 아마 우리의 선택도 그럴 것이다. '여성 대통령이냐, 남성 대통령이냐'가 아니라, 한국이 한 단계 뛰어넘을 수 있는 더 큰 무엇을 택해야 할 것이다.
조선일보 강인선 정치부 차장대우(2010.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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