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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별/ 김이랑

부흐고비 2018. 12. 31. 01:25

별/ 김이랑


가끔 그믐밤을 노려 도시를 탈출한다. 어둠을 뚫고 터널을 지나다보면 시공간을 뛰어넘는 기분이다. 비탈진 산길을 한참 오르면 하늘과 땅의 경계에 닿는다. 이제 문명의 빛을 끄면 빛나는 것들과 눈빛으로만 대화하는 신화의 세계다.

어둠은 지상에도 별을 총총 낳았다. 산기슭마다 사람이 깃들여 집을 짓고 해가 지면 집들은 등불을 밝힌다. 멀리서 반짝이는 사람의 마을, 아늑한 지붕 아래에는 오늘도 눈 밝고 마음 맑은 동심이 꿈을 꾸고 있을 것이다.

가난하고 어린 명상에게 쌀은 동나도 별은 동나지 않았다. 봄이면 산에 들에 별꽃이 피고 여름에는 개울가에 물장구소리가 반짝반짝 부서졌다. 개똥벌레와 놀다가 사립문 안으로 들어설 때 마당에서 모깃불이 타닥타닥 잔별을 튀겼다. 고봉밥 한 그릇 뚝딱 비우고 멍석자리에 누우면 하늘에서 별들이 쏟아졌다.

별똥별이 떨어지면 들꽃으로 싹튼다고 믿었다. 밤마다 금싸라기 은싸라기 별빛이 달려와 대롱 끝에 불을 댕기고, 별처럼 반짝이던 꽃이 꺼지면 개똥벌레로, 개똥벌레가 죽으면 별이 되고, 상상이 밤하늘을 날아다니는 사이 먼 산 너머로 별똥별이 빗금을 그었다.

별똥별 주우러 떠난 꿈길, 벼랑을 뛰어넘으려 어깻죽지를 파닥이다가 그만 아래로 추락하고 말았다.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나 홀로 겁에 흥건히 젖어 있을 때, 어둠속에서 두려움을 쫓는 소리가 들렸다.

'어흠 어흠, 이놈 키가 크는 갑다.'

할아버지의 말씀은 꿈을 많이 꾸라는 격려였다. 공상과 모험을 좋아하는 소년은 동화를 읽으며 상상의 우주를 유영했다. 가난한 소녀가 왕비가 되고 겁 많은 소년이 탐험가가 될 수 있는 그것은 유치한 몽상이라도 좋았고 사람인지 나비인지 분간할 수 없는 호접몽이라도 좋았다.

꿈은 늘 뒤죽박죽이었다. 흩어진 꿈의 조각을 맞추어야 온전한 자아自我​가 된다는 걸 알 무렵, 별똥별에서 들꽃으로 개똥벌레에서 별로 이어지던 밤하늘의 신화는 깨졌다. 하지만 앎이 병이 되었는지 우주를 탐독하면서 나는 더 넓고 깊은 세계로 빠져들었다.

해는 건강한 노동을 주고 달은 포근한 휴식을 준다. 그러나 먹이활동을 하고 잠을 자는 일상만 거듭하면 짐승과 다름없다. 꿈을 먹고 꿈을 꾸어야 정신이 건강해진다. 밤하늘에 별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 산등성이 어둠속에서 먹이를 찾아 야성의 눈을 번뜩이거나, 갈맷빛 골짜기 도롱뇽처럼 퇴화된 꿈을 더듬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둠은 별을 낳고 별은 명상을 낳는다. 칠성별, 플레이아데스 그리고 내가 이름을 알지 못하지만 밤마다 줄기차게 윙크를 보내는 무수한 별자리들, 별은 암흑 속에서 제 몸을 태워 존재를 증명하고, 빛은 수 억 광년 거리를 쉬지 않고 달려온다. 그리하여 티끌만한 내 존재에 관한 명상에 불을 댕긴다.

끝을 알 수 없는 시공간, 은하계 한 모퉁이 태양 주위를 도는 행성 가운데 지구에 사는 숱한 사람 중에 한 점, 나는 누구이며 또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길을 찾는 존재론적 질문에 종교는​ 천당과 지옥으로 말하고 철학은 에둘러 말할 뿐, 별에서 와서 별로 간다는 신화만큼 희망을 주는 이야기는 없었다.

도시는 잠시도 잠들지 않는다. 현란한 빛과 거친 질주에 휩쓸리는 일상에서 고요한 어둠에 들어 꿈을 꿀 시간이 없다. 속도에 쫓겨 정신없이 뛰다보면 깜빡깜빡 허기를 느낄 때가 있다. 베개를 돋우고 몸을 뒤척이는 불면의 밤, 바깥에 나가 밤하늘을 바라보면 별은 네온사인 너머에서 희미하게 물어온다, 꿈이 남아있느냐고.

꿈이 결핍되어 통증이 느껴질 때, 원시의 어둠에 들어 별과 눈을 맞추면, 별빛은 솜씨 좋은 침술로 꽉 막힌 혈穴을 뚫고 마음 깊숙한 곳에 있는 통증유발점을 찌른다. 물질문명에 지친 중년의 명상은 유년의 영토를 찾아 영혼의 통증을 치유하고 동이 난 꿈을 충전하는 것이다.

별이 원소를 타고났으므로 우리는 모두 별의 자식이다. 기원과 나를 잇는 직선, 별빛에서 나는 느낀다, 자식이라면 어떠한 밤길도 한달음에 달려오는 모성의 눈빛을.

멀리 별똥별이 떨어진다. 하나가 오면 누군가가 하늘로 가거니. 칠성별이 점지해준 자식 잘 키우겠노라고 정화수 떠놓고 빌던 어머니는 어느 별로 가셨는지.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노래하던 시인은 무슨 별이 되셨는지, 나보다 먼저 별이 된 이들을 생각하며 다음을 가늠해본다.

소멸은 끝이 아니라 생성과 접점이다. 다음 생이 발아한다면 어느 은하 어느 행성일까. 신화의 세계로 떠나는 플랫폼에서 호기심만 경계선 너머로 보낼 뿐, 망망한 암흑 우주에서 제 몸을 태워 실존을 증명하는 별처럼 지금은 이 푸른 행성에서 빛나야 한다.

​ 해와 달은 만인이 공유하므로 내 것이 없다. 별은 다원多元이다.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너 둘​…, 누구나 마음의 중심에 별 하나를 소유한다. 별똥별을 타고 이 땅에 온 영혼은 그리하여 자기 색깔로 피어난다, 분홍 참꽃으로 노란 민들레로 하얀 목련으로.

​ 그리움의 상형문자 憧憬, 憧은 아이童의 마음心이다.​ 별빛 명상에서 깨어나는 아침이면, 이 다원의 뜰에는 별빛에 발화한 들꽃이 망울을 터트리고 아이들의 눈망울도 반짝반짝 깨어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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