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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회 대구수필문학상 수상자 박영순
간절곶
동해의 전설들을 다 풀어헤칠 듯한 파도는 그칠 기미가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해가 뜨는 곳으로 간절곶이 선정된 후, 많은 사람들이 한 해를 맞이할 때마다 그 곳을 찾게 되었다. 어느새 명소가 되어 버린 간절곶, 그 이름만으로도 내 마음은 파도를 탄다. 그 옛날 누군가가 간절함을 가슴 속 한 쪽에 고이고이 간직하고 있다가 이곳에서 그 깊은 사연들을 다 쏟아내었기에 해가 가장 먼저 뜨게 된 건가.
울산에서 부산 쪽으로 종종 동해 남부 해안선을 타고 승용차나 버스로 가노라면 참으로 아름다운 바다 정경들이 눈길을 잡는다. 심장 약한 사람들은 하마터면 호흡 곤란으로 쓰러질지도 모르리란 생각을 하며 스스로 감동을 받기도 했던 그러한 어느 한 자리에 간절곶은 야무지게 편편이 앉아 있었다. 바닷바람이 사철 내내 좀 세차긴 하지만 찾는 이들에게 가슴 속의 묵은 때를 한 번도 씻어주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만큼 해맞이 날이 아니어도 찾아옴 직한 그런 바닷가였다.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에게 해맞이는 큰 행사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유년을 떠올려 보면 달맞이를 더 큰 행사로 치렀던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난다. 대보름과 추석이면 보름달 보는 재미가 지금의 먼저 내 마음이 딴 곳으로 향하여 가버렸기 때문에 소원은 내게 닿지 못하였고, 나는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먼 곳에서 서러워 할 뿐이었다.
내 경험으로 본다면 어린 날 소원했던 많은 것들이 현재 내가 원하고 있는 것과 견주어 볼 때, 소원이 이루어지기 전에 이미 마음이 먼저 변했던 것을 알아내었다. 진정한 소원의 의미를 찾아내어 간절함의 극한 상황까지도 견뎌 이기고 나아가려는 의지가 내 심지에 가득해야만 소원은 이루어지리라 생각한다.
내 가슴에는 아직도 못다 한 간절함이 숨 쉬고 있다. 나의 간절함을 간절곶 그곳에 묻어두고 돌아오고 싶다. 나의 간절함이 파도를 타고 푸른 동해바다를 누비다 달빛을 받아 안고, 햇무리 붉게 퍼지는 그 찬란한 날들의 반복 속에 무르익어 내가 다시 간절곶을 찾는 그 어느 날, 간절함이 내게로 되돌아와 새 날의 해처럼 붉게 물든 이야기를 전하게 되리라.
간절곶은 누구에게라도 기대와 희망으로 찾게 되는 기쁨의 자리가 될 것이다. 사람들의 가슴 속에 간절함이 그토록 간절히 깃들어 있었기에 간절곶을 이름하여 찾아가게 되고, 조용히 자신을 되돌아보며 삶의 곡선을 그리다 그 혜안을 찾아가는 시간이 되기도 할 것이다.
스산한 가을 바다 풍경을 맘에 담아오고 싶은 날에 문득 간절곶이 떠올랐다. 거친 파도도 부드럽게 맞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마음을 풀어헤치는 데에는 파도도 한몫 거들어줄 것이다. 그러고 보니 해와 달, 파도와 같은 자연에 자꾸 힘을 빌리려 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자연이 주는 힘에 도취된 듯 살고 지구가 돌 듯 나도 돌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누군가 내게 말하기를 사람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자연과 친해지기 마련이라고. 그것은 머지않아 우리는 자연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란다.
해맞이 명소로 유명한 간절곶은 해맞이를 통해 사람들의 가슴 밑바닥에 깔려 있는 앙금들을 여과해주는 정신적 거름망 같기도 하다. 모든 사람들은 해 돋는 동녘을 보고 우울해하지 않을 것이고 솟아오르는 해를 보고 절망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간절함은 우리에게 소원이며 희망이기에 간절곶을 찾는 발길은 멎지 않고 많아질 것이다.
그리고 달 밝은 간절곶에서 밤바다의 파도 소리를 들으며 간절함을 전하는 낭만도 적잖이 괜찮은 달맞이 풍경이 되리라 본다. 어느 때를 정하든지 그것은 자신의 일상과 해결할 일이지 떼 지어 몰려 같은 날, 같은 시각에 간절함을 말한다고 해서 더 좋은 예가 되는 것은 아닐 듯싶다.
간절곶으로 내 마음이 향해지는 것은 그 이름만으로도 충분한 명소가 되기 때문이다.
낙화
사월이 왔다. 꽃들은 피어나기 시작했고 봄바람은 내게로 불어 닥쳤다. 그 바람은 은근히 나를 밖으로 몰아내었다. 초순이라 목련은 져가고 벚꽃만이 한창일 거라고 생각하고 집을 나섰다. 가창댐 부근으로 가는 길목이었다. 가로수 벚꽃이 피고 있는지, 지고 있는 지 분간이 어려웠다. 분홍빛만은 눈길을 끌었다. 차를 타고 가며 세 사람은 피는 꽃을 보러 왔는지 지는 꽃을 보러 왔는지 모르겠다며 한참 동안 의견이 분분하였다.
주차하고 벚나무 가까이 다가가서야 이제 막 피기 시작하는 꽃망울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시내보다 조금 늦게 개화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뒤를 돌아보니 주차장에는 한 그루의 목련이 봄날의 화신인 양 미소를 머금고 환하게 서 있었다. 몇 개의 꽃잎만이 땅에 떨어졌을 뿐, 나무 전체가 거꾸로 하트모양을 그리며 사랑을 고백하는 듯했다. 이런 순간은 잘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니라며 꽃과 같이 인증 사진을 몇 장 남겼다.
주위를 밝혀주는 목련꽃과 가루수의 앙증맞은 벚꽃을 보면서 그것들의 낙화를 떠올려 보았다. 목련꽃처럼 큰 꽃이 땅에 떨어져 뒹구는 모습과 벚꽃처럼 작은 꽃이 떨어져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을 그려보았다. 마치 사람들이 살다가 떠나고 난 뒤의 모습과 닮았다고 느꼈다. 무릇 세상에서 큰 사람이라고 타의 추종을 받았던 사람들 중에 그들의 떠난 자리가 목련꽃 떨어진 모습으로 비춰졌다면 그는 아름다운 삶을 살지 못했던 것이다. 멍들고 거무스름한 색이 빨리 마르지도 않고 물러 터져 눈에 거슬리는 것처럼, 큰 사람이 살았을 적에 많은 이들로부터 추앙을 받아 축복 속에 살았더라도 훗날 그의 뒷모습이 기대했던 것과 달리 더럽혀진 모습이라면 그의 인생은 백목련의 낙화와 다를 바 없겠다. 백목련의 고운 빛 뒤에 오는 추한 모습에서 깨끗한 모습이 사라지는 것과 같았다.
작은 꽃처럼 살다간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한낮 바람결에 날려 그 흔적조차 찾을 길 없어도 내가 어떠했노라고 애타게 부르짖지도 않는다. 벚꽃이 떨어질 때 벚나무 가로수 길을 걸어 본 사람들은 알리라. 점점 옅은 분홍 꽃으로 만개한 뒤 소리 없이 흩날릴 때, 꽃눈이라며 혹은 연분홍 눈이라며 눈 맞듯 거닐었고, 밟아도 그리 멍들거나 물러지지 않았다. 또 땅위에 내려앉아 고들고들 마른 꽃잎 되었다가 어디론가 숨어버리는, 그래서 더 진한 여운을 남겼다.
큰 꽃의 낙화가 멍든 삶을 대변하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우리는 큰 사람들이 행한 사회적인 공헌에 많이 기대며 살았기에 기대치가 높은 만큼 실망하여 허탈할 때도 많았다. 그러면서도 또 다른 큰 사람이 다시 나타나기를 희망한다. 큰 사람들이 한 번쯤은 자신의 뒷모습을 소중히 생각해보는 마음을 가져보라고 저기 백목련 꽃은 해마다 그렇게 피었다 지는 것이리라.
작은 꽃 같은 사람들은 살아서 이름 한번 내비치지 않고도 있는 듯 없는 듯 잘 살아낸다. 누구를 위해 살았노라고 목소리도 높이지 않는다. 그저 사람들의 인연 속에 스치며 살 뿐이다. 오로지 자신의 삶에 우직할 뿐이다. 그러다 언젠가 그들의 작은 일상도 소리 없이 흩날려갈 것이다.
작은 꽃 같은 내 삶이 어찌 벚꽃의 낙화와 비길 수 있겠는가. 작은 삶이라도 그처럼 곱다고 말할 수 없다. 방긋 웃다가 사라지는 그 작은 몸짓을 난 더욱 사랑하리라. 봄날의 풋풋한 하루를 꽃과 더불어 생각해본 날이다. 작은 꽃의 낙화가 내 마음 속 깊이 거대한 산처럼 꼿꼿하게 자리 잡아주었다. 지금부터라도 더 밉지 않는 작은 꽃이 되는 삶을 살고 싶다. 작은 꽃잎 흩날리며 사라지는 조용한 마지막을 위하여 내 진정 고운 꽃을 피워보리라.
강을 바라보며
아직 구월의 더위가 달아나지 않은 요즘은 아침과 저녁은 그야말로 가을이다. 어느새 귀뚜라미 소리 들을 수 있으니 계절의 바뀜은 언제나 새롭기만 하다.
금호강 가에는 수풀들이 기죽은 듯 서 있다. 가을의 강물 소리도 요란하지 않은 작은 물살이다. 푸른 기상으로 매일 자라나던 풀들의 성장이 주춤하다. 파르르 떠는 푸른색 기운 위에 누런 빛이 조금 내려와 앉아 있다. 마치 젊음이 조금씩 사라지는 경계의 나이 오십의 여인처럼……
강을 바라본다. 내 나이를 강의 길이에 포개어 보았던 삼십 초반에는 인생의 길이를 예순으로 잡았는데, 어느 덧 나이 오십을 넘었으니 그때의 인생설계로는 바닷가에 인접해 있겠다. 그러나 이제 백 살을 내 인생의 길이로 정하고 강 길이와 맞추어 본다. 내가 강이라면 바닷물이 되기에는 아직 먼먼 곳에 머무르고 있을 터, 아직 인생의 중반을 달리는 내 삶의 여정은 길다고 말하고 싶다. 어떤 이는 추한 모습을 남에게 보이기 싫어 추하기 전날까지만 살고 생을 마감하겠노라고 억지를 부린다. 생명은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 법이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에 누구보다 의미 있는 삶을 살다 죽으리라 다짐했던 날이 있었다. 이런 내 이야기를 들은 셋째 오빠가 “와, 너 미쳤구나.” 했었다. 어쨌든 이름을 남기기보다 값진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던 것은 사실이다. 내 미래를 얼마나 많이 계획하고 수정하였던가. 지금도 그 계획을 세우고 지우고 낙서장 같은 인생을 사느라 야단법석이다.
삼십대에는 이룬 것도 없고 뭔가 보이는 듯한 확실한 열매 하나 못 거둔 것 같아 흐르는 강물을 역류시키고 싶었다. 내 나이를 거꾸로 가게 하여 용광로처럼 뜨거운 삶을 다시금 살았으면 하고 안타까워하였다. 지금 바라보는 강은 금호강이며 그 옛날의 강은 울산 태화강이었다. 어느 날 저녁 무렵, 노을 진 태화강 가를 바라보며 어린 날의 금호강을 생각하였다. 강을 바라보며 미래에 대한 상상으로 밤을 설쳤던 때가 있었다. 이제 다시 돌아온 금호강 가에서 그날의 태화강을 떠올려 본다. 하구에 가까운 강의 자리에 서 있어서 그러했는지 몰라도 무척이나 불완전한 자신의 상태가 서글픈 인생의 서막으로 서둘러 다가올 것만 같았던 절박함이 느껴졌었다. 어린 날의 강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희망 그 자체였는데, 결혼을 해도 내가 할 그 무엇이 있는지 늘 찾아 헤매기를 수십 년째인 것 같다.
오늘 이 강은 내게 묻고 답한다. 너의 인생에서 네가 한 것 모두를 기뻐해보라고. 너는 어디쯤 와 있는지 그것에만 집착하고 있다고. 왠지 부끄러웠다. 강물은 흘러가면 다시 되돌아오지 않으니 단 한 번의 인생과 많이 비유한다. 실상은 그 강물이 수증기로 하늘에 올라가 구름이 되어 어느 날엔 빗줄기로 다시 내려와 강물이 되는데도 우린 흐르는 그 강물의 유속만을 느끼며 인간의 생명도 그러하다고 강물처럼 사라지는 데 대한 서글픔을 노래한다. 강물이 뙤약볕에서 수증기로 올라가 하늘여행을 하다가 강을 바라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마치 우리 사람들처럼, 죽은 뒤에 영혼이 하늘을 떠돌다 우리 인간을 보기나 하는 것처럼 묘한 생각이 들었다. 강물은 하늘에서 내려올 때 수직 낙하하는 바람에 놀라 하늘 이야기는 다 잊어버렸다. 좀처럼 하늘 이야기는 들려줄 줄 모르고 언제나 흘러만 간다.
구월에 흐르는 강물 소리는 봄날처럼 포근하지 않다. 저만치서 밀려오는 차가운 시선이 조금은 냉정하게 가슴을 밀고 들어온다. 구월이 일 년 중 하반기로 접어드는 시기여서 그런지 한 해의 시작과 끝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올 새해에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떠올려 본다. 가장 큰 것은 가족의 건강과 평화였다.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면 내게 있어서는 사순 시기에 감기 걸리지 않는 것과 체중조절로 당뇨 경계수치를 정상으로 가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 예전에 하루 세 시간씩 걷기 운동하던 것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고 행복한 자신이 되기 위해 취미 생활하는 사람들끼리 더 가깝게 지내는 것, 어려운 사람을 생각해보는 것이었다.
이쯤에서 점검해보면 사순 시기에 감기는 걸리지 않아 다행이었으나 몸을 과보호하여 체중이4kg 더 늘어 유월에는 사상 최고치의 몸무게를 유지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건강검진에서 당뇨를 조심해야 한다고 운동을 강력히 권하였고 살을 빼라는 경고도 받았다. 오월부터 수성못을 걷지 않은 것도 아닌데 어찌된 일인지 좀체 살이 빠지지 않았다. 집념으로 두 달을 걸었더니 그제야 살이 3kg 정도 빠졌다. 여름비 오는 날에도 걷기를 강행하였다. 그래도 몸무게는 별 움직임이 없었지만 계속 두 시간 이상 수성못을 오가며 걸었다.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해 사람들과 잘 지내기로 맘먹은 것은 늘 바쁘다는 핑계로 거의 형식적인 모임에 치중하여 그 단체마다 봉사해야 할 일을 다른 사람들이 떠맡아 하였던 것이다. 서로 잘 지내는 것도 도움을 주는 사람이라 여겨져 다짐했는데 괜찮은 결과를 얻었다. 제주도 여 회원과의 사귐을 청보리밭 문학여행에서 얻었다. 그의 문자 메시지에 의하면 “난 제주 감귤아가씨, 그댄 대구 사과아가씨, 이 둘의 맛을 가진 과일은 뭘까요? 그것은 키위입니다.” 키위 사진과 함께 전송된 메시지를 받던 날 참 행복했으니까. 얼마 전 모임에서 그녀는 귤을, 난 키위를 갖고 와 회원들을 즐겁게 해 주었으니 이 정도면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어려운 사람을 생각하기로 했는데 미약하나마 실천하였다. 아프리카로, 수단으로 한국의 아이들에게 작은 사랑을 주었다. 더 많은 사랑을 전해야 하는 것이 내가 나이 먹어가며 느끼는 마땅한 일 중의 하나라고 본다.
더운 여름날에는 하루의 반성도 쉽지 않았다. 강 앞에서도 오로지 시원함의 유혹에만 마음 끌렸었는데, 구월의 찬 공기는 도리어 내 마음을 반성으로 달구어 준다. 언제나 시작은 시끌벅적하고 끝은 흐지부지한 것을 어찌 인간의 불완전함 때문이라고 넘겨짚을 수 있단 말인가. 강가 수풀의 초록이 없어지기 전에 내 안에 갇혀 이루지 못한 사랑도 끄집어내야겠다. 강물은 아직도 속살대며 잔잔히 흐른다. 저 강물의 잔잔한 흐름처럼 잔잔한 웃음 머금은 얼굴로 한 해를 보낼 수 있기를 바라본다.
강을 바라보며 오십을 넘긴 여자에게도 가슴 두근거리는 열망이 살아있음을 확인하였다. 내 삶은 아직 불타고 있으며 작은 소망조차도 이루기 위해 얼마나 애쓰던 삶이었던가. 수십 년이 흐른 뒤에도 나는 또 강을 바라볼 것이다. 그때에도 강은 새 언어로 나를 끊임없이 진실한 곳으로 내보내려 할 것이다. 지나간 삶은 그저 아름다울 뿐이고 다가오는 삶은 오직 희망일 뿐이라고. 난 늘 그렇게 강을 바라보며 애써 용기를 얻어 살아낼 것이다.
∣수상소감∣
참 기쁩니다.
대구수필문학상을 받는 것은 기쁨이지만 한편으로는 부끄럽기도 합니다. 저보다 훌륭한 수필가가 우리 대구수필문학회에 많이 계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부족하지만 저에게 대구수필문학상이란 큰 상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대구수필문학회에 많은 공을 들이셨던 선생님들이 계시기에 이렇게 좋은 상이 수여되고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분 중의 한 분이 고 배부성 전 회장님이십니다. 이런 날 함께 계시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고 배부성 선생님을 통해 대구수필문학회에 입회하였고 장호병 선생님과 함께 저를 수필가로 등단하게 도와 주셨습니다. 고 배부성 선생님과 장호병 선생님께 깊이 고마움을 전합니다.
좋은 글을 쓰기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쓰면 쓸수록 그것을 알게 되었지만 쉽사리 펜을 놓고 지내기란 더욱 어려웠습니다.
글 쓰는 천재성을 타고 난 것도 아니어서 틈틈이 쓰고 갈고 닦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너무 쉽게 글을 세상에 내놓곤 하였습니다. 그런 후에 후회하고 속앓이도 많이 하였습니다. 글을 쓰며 웃고 울면서 스스로 마음을 치유하였던 시간이 행복으로 다가왔을 때, 이런 낭만을 그만두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아무쪼록 저에게 주신 이 상은 더욱 정진하여 수필가로서의 제 몫을 다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겠습니다. 한 걸음씩 나아가는 참한 수필가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 상을 선정해주신 김혜숙 회장님과 그 외 이사님들과 여러 선생님들께 고개 숙여 고마운 인사를 드립니다. 앞으로 더욱 행복한 글쟁이가 될 수 있도록 회원님들의 아낌없는 사랑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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