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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카르타고 / 주인석

부흐고비 2019. 10. 17. 10:36

카르타고 / 주인석

탈출의 끝은 또 다른 탈출이다. 탈출을 즐길 수 있다면 더 이상은 위기가 아니라 모험이다. 위기는 넘어야할 고비이고 모험은 수용해야할 유쾌한 행동이다. 그래서 탈출의 목적은 빠져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영혼을 얻는 것이다. 정착도 아니고 편안함도 아니다. 새로운 동기요, 도전이며 성취다. 평온은 가장 다정한 모습으로 우리의 인생에 수갑을 채우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한다. 3천 년 전에도 그랬다. 지금의 레바논 지역, 티로스라는 나라에 디도 공주가 살았다. 티로스 왕이었던 공주의 오빠는 욕심 많은 사람이었다. 그는 부자였던 공주의 남편을 죽이고 재산을 빼앗으려 했다. 공주는 어리석은 왕에게 복종하지 않고 북아프리카의 튀니지로 탈출했다. 포기와 도전은 동전의 앞면과 뒷면처럼 가깝다.

“쇠가죽 만큼의 땅만 주십시오. 황금잔을 드리겠습니다.”

남의 나라에 도착한 공주는 또 한 번의 고비를 넘기 위해 튀니지의 베르베르족 통치자를 찾아갔다. 황금잔에 욕심이 났던 족장은 곧바로 승낙했고 공주는 지혜를 짜냈다. 쇠가죽을 최대한 가늘게 잘라 묶은 다음 긴 끈을 만들어 울타리를 쳤다. 이렇게 얻은 땅에 ‘나의 주인’이라는 뜻을 담은 ‘카르타고’라는 나라를 세우고 공주를 벗어나 여왕이 되었다.

그렇지만 여왕은 안주하지 않았다. 주변 강대국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고 백성이 자유로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을 했다. 원형 항구와 4각·6각 항구를 건설하여 로마와 견줄만한 강대국으로 만들었다. 모든 것이 안정되고 평화로웠다.

여왕은 더 이상 도전하지 않았다. 편안하기만 한 삶의 연장은 개인에게는 나락의 길이요. 국가에게는 멸망의 길이다. 위기 때마다 탈출을 시도했던 공주가 역사에 남긴 것은 쇠가죽으로 얻은 나라 ‘카르타고’와 ‘디도여왕’이라는 이름이다. 그러나 여왕이 안주하지 않고 끝까지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면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몇 번의 탈출을 경험하고 무엇을 남기는 걸까. 모태로부터의 탄생과 삶으로부터의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탈출이다. 진정한 자유의 길로 진입이다. 결혼도 그렇다. 부모로부터 독립은 개인의 역사를 남길 수 있는 가장 큰 탈출이다. 모든 것이 다양해진 지금, 한 곳에 머물러 주저앉지만 않는다면 어떤 경험이든 개인에게는 의미 있는 탈출이 될 것이다.

자신을 가로막는 것은 자신 밖에 없다는 것을 알기에 어떤 고비를 만날 때마다 나는 카르타고의 공주를 생각한다. 몸의 소멸보다 영혼의 복종은 더 깊은 추락이다. 혹시 내가 작가라는 이름만 달고 앉아서 겉멋만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똑같은 강의에 엇비슷한 글을 쓰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하게 되었다. 입안에서 버석거리던 글자를 씹고 또 씹으며 지새웠던 불면의 밤을 점점 잊어가고 있었다.

안주의 끝은 소리 없는 소멸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면에서 소리 없이 사라지고 있다. 어느 도시에서든 조금만 높은 곳에 서서 돌을 던지면 시인 아니면 수필가가 돌을 맞는다는 말도 들었다. 돌을 맞는다는 것은 무분별하게 늘어난 숫자만 가리켜 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안주, 정체, 재탕, 무지, 무사안일.......나도 돌 맞을 사람 중에 한 사람이고 지면에서 사라질 사람 중에 하나였다.

나는 굴속으로 들어갔다. 위기에 맞서기보다는 돌을 피하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굴이 깊어질수록 고개를 숙이고 엎드려야 했다. 빳빳했던 고개는 아래로 아래로 떨어져 마침내 바닥을 기고 있었다. 하루 열두 시간 이상 책을 읽어도 내 자존심은 좀처럼 살아나지 않았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책을 읽지 않았는지, 공부를 하지 않았는지를 알게 되었다. 3년 동안 도서관과 학교를 오가면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자세로 도전했다.

공부를 할수록 나는 초라해졌고 세상은 눈부셨다. 내 경험과 생각이 얼마나 적고 좁았는지를 알게 되었다. 좁디좁은 나의 세계에서 벗어나 최단시간에 수많은 사람들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눈이 따갑도록 영화를 봤다. 진실한 마음으로 사람들 사이에 들어가서 감정을 공유해보고 시공도 초월해 보았다. 정신세계가 열리니 몸은 저절로 열렸다.

내 감정은 건조했고 세상 흐름은 유연했다. 영화보다 생생한 현장이 필요했다. 영화에서든 책에서든 의미가 있는 지역부터 찾아 다녔다. 내가 밟았던 길, 느꼈던 자연, 만났던 사람들은 내 삶의 증거이며 역사가 되었다. 여행에서 만난 모든 것은 나에게만 존재하는 의미가 되었다. 쌓기만 했던 내 지식이 세상을 만나 지혜가 되었다. 260개의 이야기를 썼고 콘텐츠를 탄생시켰다. 내 행동은 배움을 완성시켰고, 내 영혼은 참 자유와 조우하게 되었다.

돌 맞는 작가가 되지 않기 위해 필사적인 탈출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하나의 탈출이 또 다른 탈출을 불러온다는 것, 어느 순간 나는 탈출을 꿈꾸고 그것을 즐기고 있더라는 것, 탈출 안에서만 내가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 있더라는 것, 이토록 숭고한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그것을 자청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탈출을 시도하지 않는 것보다 더 두려워해야 할 것은 안주하는 삶이다. 한 번의 안주는 두 번을 허용하지 않지만, 두 번의 안주는 여러 번을 묵인하기 때문이다.

내가 읽은 책의 양 만큼, 내가 찍은 발자국 수 만큼 땅을 얻어서 나라를 세우는 상상을 해 본다. 아직까지는 너무나 작은 나의 카르타고지만 그 작은 나라 안에서도 행복할 수 있는 것은 탈출이 주는 참 자유를 알았기 때문이다. 멈추지만 않는다면 이 축복은 영원히 누리는 자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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