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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와 거울 / 주인석
어떤 사물을 보고 사람 같은 구석을 발견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이상하게도 그 사물에 푹 빠진다. 사람에 대해 알고 싶으면 사물을 자세히 관찰하고 지혜를 터득하면 될 일이다. 사물을 통찰하여 사람과 연관 지어 보면 그 성질과 성격이 모두 칭찬할 만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낱낱이 흠잡을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지인은 거울에 푹 빠져있다. 앉으나 서나 손거울을 들고 산다. 나와 마주 앉은 시간에도 나보다 거울을 보는 횟수가 더 많아서 ‘거울 마님’이라고 별명을 지어주었다. 거울 보는 시간을 조금 줄여서 창밖에 꽃들도 볼 줄도 알아야 멋있는 사람이 된다고 했더니 오히려 나더러 나이가 들수록 거울을 더 자주 봐야 멋지게 늙어 갈 수 있다며 거울을 건넨다. 지인이 준 동그란 손거울은 생각의 굴속으로 연결하는 통로였다.
거울과 유리는 가장 닮았으면서도 가장 닮지 않은 친구의 모습일지 모른다. 석영이나 탄산타트륨을 원료로 해서 높은 온도에서 융해시킨 다음, 그것을 식히면 유리가 된다. 이 유리에 은백색의 수은을 입히면 거울이 된다. 둘의 태생은 같은데 수은이라는 하나의 옷을 입고 사느냐, 입지 않고 사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성격으로 살아간다.
거울이 자신에게 정직하다면 유리는 타인에게 솔직하다. 거울은 있는 모습 그대로를 비춰준다. 거울을 보고 있을 때는 남을 생각하지 않는다. 거울 속에서 자신이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자신만 볼 줄 알고 자신 밖에 모르니 거울은 자기중심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유리는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준다. 유리 밖을 보고 있으면 나보다는 남을 더 생각하게 된다. 유리 밖에는 남이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남을 통해 나를 알게 되고, 남을 올바르게 알아가니 유리는 타인 중심적이라 할 수 있다.
거울은 불투명하고 유리는 투명하다. 거울은 왠지 ‘꿍’한 구석이 있다. 한 면만 비춰주면서 다른 면은 늘 궁금하게 만든다. 그것도 밀착하여 접근하는 사람에게만 은밀하다 싶을 정도로 비춰준다. 다 비춰주는 것 같으면서도 왠지 속을 감추는 듯 하여 뒤가 찜찜하고 말끔하지 않다. 이에 비해 유리는 오지랖 넓은 구석이 있다. 겉과 속을 쉽게 노출 시켜버려서 신비감이 없다. 누구든 다가오는 사람에게는 짧은 시간에 친구가 되어 주고, 오줄없다 싶을 정도로 속내를 드러낸다. 실속 없어 보이는 것이 유리의 흠이지만 그래도 영혼이 맑다.
거울이 소극적이라면 유리는 적극적이다. 거울은 안에서든 밖에서든 한 방향으로만 생각한다. 소통보다는 불통에 더 가까운 성격이다. 자율보다는 타율이 더 어울리고 다가가기보다는 다가오기를 더 좋아한다. 드러내서 술술 풀어내기 보다는 하나를 알뜰히 비춰주면서 오래 담아두는 성격이다. 이에 비해 유리는 안에서 밖을 내다 볼 수 있고 밖에서도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양방향 소통을 한다. 사물을 대하는 태도가 긍정적이라 할 수 있다. 유심히 비추어 까다롭게 대하지 않고 보이는 대로 보면서 마음에 담아두지 않고 툴툴 털어버리는 성격이다.
거울이 뒤끝 있는 성격이라면 유리는 뒤끝 없는 성격이다. 거울은 깨지고 난 뒤, 바닥에 누워서도 보이는 것을 빠짐없이 비춘다. 현상을 작은 조각 속에 일일이 주워 담는 잔소리꾼이다. 그러나 유리는 깨지고 나면 끝이다. 더 이상 지난 일을 들먹거리지도 않고 현재를 나무라지도 않은 채 입을 다물어 버린다.
거울이 실속파라면 유리는 기분파다. 거울은 자신 앞에 선 이에게만 최선을 다한다면 유리는 눈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을 위해 늘 분주하다.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 대우하는 것이 거울이라면 사람의 차별을 두지 않고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대하는 것이 유리다.
거울이 여성적이라면 유리는 남성적이다. 매사 꼼꼼하게 짚고 넘어가는 것이 거울이라면 대충대충 넘어가는 것이 유리다. 여자들이 거울을 보며 화장 고치는 일에 더 많은 투자를 한다면 남자들은 자동차 유리를 닦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거울과 유리는 둘 다 경계가 있다. 거울은 안과 밖의 경계가 처음부터 분명하여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사람을 대한다면, 유리는 안과 밖의 경계가 분명히 있으되 없는 것 같이 행동을 하여 거리감 없이 사람을 대한다. 거울은 한 사람에게 집중하여 한 사람과 친분을 맺기 때문에 꼼꼼한 인맥관계를 맺는다. 하나를 집중 조명함으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은 확실히 있지만 딱 부러지는 성격 때문에 냉정하다 소리를 듣기도 한다. 유리는 모호한 경계 때문에 여러 사람 이마에 간간히 혹을 달아준다. 사람 불러 모으기를 좋아하며 매사 화끈하고 직설적이기 때문에 성격 좋다 소리도 듣지만 가끔 오해를 사는 적도 있다.
거울과 유리는 둘 다 성깔이 있다. 둘 다 단단하면서도 잘 깨진다. 그러면서도 영 다른 모습으로 살아간다. 많은 사람들은 세상물정 몰라서 융통성 없이 살기도 하고 투명하고 맑게 사는 것만이 전부인 줄 알고 살아가기도 할 것이다. 유리의 쓰임이 거울보다 훨씬 많은 것만 보아도 우리들의 모습이 어떠한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어느 한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쳐 있는 삶을 두고 지혜롭다 할 수는 없다. 유리처럼 맑고 깨끗한 영혼을 바탕에 깔고 살되 거울 같은 끼를 부릴 줄 안다면 멋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지인은 나와 자라온 환경이 비슷함에도 촌발 날리는 나와는 달리 멋이 있다. 아직까지 고향 사투리를 쓰지 않으면 언어전달도 안 되는 나에 비해 지인은 막힘없이 표준어를 구사한다. 지인처럼 나도 손거울을 보며 얼굴을 살핀다. 지인은 찻집을 나오면서 대형 유리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매무새를 다듬는다. 나도 슬쩍 따라해 본다. 삶도 이러해야하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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