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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의 소멸, 윤장대에 서다 / 김미향
제5회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


피가 흐르는 생채기보다 피도 나지 않은 상흔이 더 아프다는 것을 살아가면서 알게 되었다. 나 또한 세상을 살면서 왜, 죄 한번 짓지 않았겠는가. 누군가에게 독한 말을 뱉고 나서 홀로 잠 못 들던 밤도 많았다. 내 속에 또 다른 내가 살고 있음을 알고부터는 스스로를 태질하며 예천 용문사 윤장대를 찾기 시작했다.

구붓한 일주문을 지나면 이름 없는 낡은 다리가 하나 있다. 이 다리를 건너야만 부처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다. 여기를 지나는 수많은 중생들의 발길에 무수히 밟히는 다리조차도 살아가는 방법을 깨달은 것일까. 구부정한 등을 말없이 내어준다. 조심스레 발맘발맘 걷는다. 돌 틈에서 자라나 얼마의 세월을 버텨온 지도 모를 노송의 몸에 박힌 옹이가 눈에 들어온다. 세파에 시달린 나와는 달리 저 솔옹이에는 여래의 가르침으로 가득 차 있으리라.

이른 아침의 용문사는 신라시대로부터 막 튀어나온 듯 위풍당당한 모습이다. 백년도 못사는 사람에 비하면 허물어지고도 남았으련만, 아직도 제 모습을 고집하며 천년의 세월을 증명이라도 하듯 끄떡없이 자리하고 있다. 신라 때 창건된 3대 용문사 중, 용의 심장에 해당되는 가람으로 전국 사찰에서는 볼 수 없는 윤장대가 간직되어 있어 유명세를 더한다. 곳곳에 수많은 이들의 간절한 기도가 켜켜이 쌓여 있는 듯하다.

신라의 품에 안긴 고려시대의 윤장대輪藏臺가 깊은 잠에서 깨어날 시간이다. 범접할 수 없는 열반의 세계에서 만난 팔백년이 넘은 자태에 할 말을 잃는다. 고려 명종 3년에 안치된 윤장대는 경전을 보관하던 책궤이다. 정자 모양의 지붕을 한 팔면체 형태로 가운데 축을 달아 회전할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 한 바퀴 돌리면 불경을 한번 읽은 것과 같은 공덕이 있고, 업이 소멸될 뿐만 아니라 번뇌를 내려놓을 수 있어 많은 중생들이 걸음을 하여 극락을 기원했다고 전해진다.

중생들의 업보를 짊어진 채 사바와 극락을 쉼 없이 드나들었을 윤장대. 무엇이 윤장대를 여기 있게 했을까. 윤장대가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시선을 따라가니 의연한 자세로 마주하는 자운루가 보인다.

나는 발길을 돌려 자운루로 향한다. 자운루는 임진왜란 때 승병들이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 서로 뜻을 도모하던 곳이며, 속인들이 승병을 돕기 위해 짚신을 삼았던 호국의 장소이기도 하다.

불제자들의 손에서 얼마나 많은 인간의 형체가 사라져 갔을까. 도를 닦는 수행자로 살생을 하지 말라는 부처의 가장 첫 번째 교법을 뼈저리게 알면서도 살생을 행할 수밖에 없었던 승병들의 삶은 또 어떠했을까. 왜군이라도 생명은 소중하거늘 산목숨을 생으로 베었으니 고뇌는 또 오죽 했을까. 위태로운 나라를 위해서 그 순간만은 승려들도 서슴없이 해치워야하는 건장한 사나이로 돌아갔을 터이다. 큰 가르침 앞에도 흔들림 없이 살육을 저질렀던, 그들의 마음은 천만번도 더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었을 것이다.

윤장대로 다시 걸음을 옮긴다. 그 길은 마치 구도의 길처럼 느껴져 발 품새가 절로 차분해진다. 역사를 품어야 하는 숙명 때문일까. 그들의 업을 위해 이 자리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윤장대는 자운루의 무게를 대신 지고 있는 듯하다. 떠오르는 붉은 해를 가운데 두고 서로 얼굴을 맞댄 채 긴 포옹을 한다. 보이지 않는 흐름을 돌며 지금도 그들의 업을 소멸하고자 묵묵히 기도를 하고 있다.

나는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미워했던가. 지천명의 나이를 바라보면서도 가까운 동료부터 먼 이웃까지 때로는 알지 못하는 이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그들을 분노케 하고 모난 데를 건드리기도 했다. 덕담보다는 악담에 익숙해져 소문만으로도 그 대상을 살생하기에 바빴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죄라면 결코 가볍지 않은 죄였다. 나는 그 세월이 버거워 지난날을 고백하며 참회에 젖는다. 섬세하고 정교하게 적힌 부처님의 가르침을 보고 있자니 적혀있던 법문이 뛰쳐나온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얻는다.

옛사람들의 마음이 비춰진다. 나와 같은 심정으로 윤장대를 돌리지는 않았을까. 그 마음을 느끼고 싶어 윤장대에 다가섰다. 손을 얹는다. 부처와 현실 세계의 어리석은 중생이 만나는 시간이다. 진정 지혜로운 사람으로 마음이 한 뼘 더 자라나길 바라며 내 안에 존재하는 많은 생각과 감정을 꺼내놓는다. 간절한 마음으로 홀로 돌고 또 돈다.

업이란 무엇일까.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선악이 업이라면 태산과 같은 업이 쌓인 나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날마다 뒤뚱거릴 것이다. 좋은 것 보다는 남의 흉허물을 이야기 하고, 발끝에 채인 미물도 하찮게 여겼으며, 마음속엔 매일없이 욕심을 담았으니 윤장대를 얼마나 많이 돌리고 돌려야만 지은 업이 소멸 될는지. 승병들은 나라를 위해 업을 지었지만 나는 내 잘못인데도 타인을 원망하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가 일쑤였다. 그것은 우매하게도 스스로에게 업을 쌓는 일이었다.

두 손을 모아 합장하며 마음으로 쉼 없이 돌리고 또 돌린다. 돌이 깨지고 부서져 모래가 되듯, 각진 마음도 숱한 세월을 돌아 나오면서 둥글둥글하게 변하길 바라본다. 내 속에서 혹은 저를 올려다보는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서 윤장대는 오늘도 업의 소멸을 마다하지 않으리라.

발품 팔아 제 품으로 들어온 이를 부처는 빈손으로 보내는 일은 없나 보다. 온 몸 구석구석이 경전으로 가득 채워지는 것 같다. 한 바퀴 돌리면 업이 사라지듯 모든 것의 시작과 끝도 돌고 돌아 결국에는 하나의 원으로 만나게 된다는 진리를 다시금 느끼게 한다. 함부로 내뱉은 언어가, 함부로 행한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불단 위의 부처가 관용의 얼굴로 다시 한 번 일러준다.

고개를 들어 절집을 우러른다. 갈무리 된 세월은 천년이 지났지만 기세등등한 고찰 위로 붉은 기운이 스며든다. 눕고 서고 기대고 금이 간 와당들이 이제 막 떠오른 겨울햇살을 쬐고 있다. 우리네 삶을 보는 듯하다. 소백산이 시린 손을 비비고 얼어붙었던 기왓장도 어깨를 편다.

어제와는 다른 마음으로 한 발짝을 뗀다. 산사의 바람이 따라나선다. 사람이 지닌 것 중 가장 무거운 것은 마음인 것 같다. 사람을 과거로 미래로 이끄는 도량에서 세속에 얽매였던 번민을 털어낸다. 그 마음 내려놓으니 비워진 자리에 석가모니의 교법이 들어찬다.

목탁 소리가 들려온다. 청아한 울림으로 오늘도 스스로를 비워내며 잠들었던 뭇 생명을 깨운다. 지나온 날을 돌아보게 하고, 세상을 일깨우고, 마음을 일깨우는 범종소리가 산사에 가득 울려 퍼진다.

회전문을 나선다. 다 비우고 가라는 붓다의 뜻이 담긴 듯도 하다. 돌계단을 내려서니 작은 물길이 청량감을 더한다. 그저 흘러가는 물소리에도 마음의 때를 씻어내고 가라는 속내는 아닐는지. 육신은 좁은 길 위에 서 있는데 마음의 길은 한층 더 넓어진다. 뒤돌아보니 한 장 한 장 올린 기와 위로 여래의 하늘이 수북이 담긴다.

장엄한 아침이 밝아온다. 천년의 하늘을 뚫고 해가 모습을 드러낸다. 여명의 기대감이 경이로움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이토록 소리 없는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데 어찌 지혜로워지지 않을 수 있을까. 깨달음을 취한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된다. 여기서 나는 해탈을 하려나 보다.

번뇌의 불이 사그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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