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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틈 / 김태호

부흐고비 2019. 10. 29. 17:09

틈 / 김태호
2019 매일시니어문학상 수상작


벌어진 창틈 사이로 칼바람이 불어온다. 커튼이 가려져 있어도 방안 공기가 차다. 이불을 뒤척이며 잠을 청해 보지만 좀처럼 눈이 감기질 않는다.

고향집을 빈집으로 비워 둔지 수년이 흘렀다. 워낙 두메산골이라 사려는 사람이 없어 지금까지 여름 한철 피서지로 활용하고 있다. 이곳은 나를 낳아주고 키워주며 공부까지 시켜 준 고향집이다. 여름밤이면 마당에 멍석을 깔고 모깃불을 놓아가며, 온 가족이 오순도순 살았던 정든 옛집이 아니던가.

모처럼 고향집 대청마루에 앉아 옛 생각으로 상념에 잠긴다. 걸터앉은 마루 틈으로 애기누에만한 개미들이 바지런히 무엇을 나르고 있다. 가만히 살펴보니 떨어진 빵부스러기를 어딘가로 옮기는 모양이다. 마룻장 빈 틈 사이로 줄을 지으며 겨울 양식을 저장하는 것 같다. 고개를 들어 마루 천장을 바라본다. 오랜 세월 손을 대지 않아 천정 틈 사이로 빗물이 스며든 자욱이 보인다. 장마라도 들면 틈이 더 커져 하늘이 보일 것만 같다.

낡은 고향 집의 틈새들을 바라보며, 고택만큼 오래된 내 삶의 빈틈들을 회상해본다. 칠십 평생 동안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말로 가슴을 아프게 한 적도 있고, 알게 모르게 행동으로 마음의 상처를 주기도 한 것 같다. 아마 이 세상에 빈틈없이 완벽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때로는 내 가슴에 너무 큰 틈이 생겨 인생을 포기하고 싶기도 했다. 학창 시절에 친구들과 어울리느라 공부는 뒷전이고 오락에 빠져 방황하던 때가 있었다. 대학을 다니던 맏형의 갑작스런 요절로 우리 집은 한때 대들보가 부러진 황량한 분위기에 잠겨있어야만 했다. 그때 나는 사춘기인 중3 때라 가슴에 빈틈이 구멍처럼 컸었고, 마음으로 휘몰아치는 바람 때문에 마음이 텅 빈 것만 같았다. 그로 인해 대구로 가는 고입 진학은 포기하고 아버지의 농사를 돕기 위해 인근 면에 있는 농고에 진학했다.

가슴의 틈 때문이었던지, 12Km가 넘는 거리를 자전거로 통학하면서도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느라 3년간 허송세월만 보냈다. 졸업 후 대학을 가려해도 실력이 모자라 대입시험에서는 결국 낙방의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눈물을 머금으며 학업을 접고 아버지와 농사를 지으려고 했었다. 그렇지만 졸지에 장남이 되어버린 나에 대한 할머니의 기대를 져 버릴 수 없어, 대구로 가서 재수를 했고 결국 이듬해에 겨우 대학에 합격할 수 있었다.

나는 여러모로 빈틈이 많은 사람이 분명했다. 틈새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노력 끝에 대학생활은 큰 시련 없이 보낼 수 있었다. 당시에는 교사가 부족해 졸업과 동시에 경북에 있는 오지학교에 발령을 받았다. 첫 발령을 받고는 마치 구름 위에 떠있는 기분이었다. 본래 낙천적인 성격 탓으로 놀기만 좋아하는 무능력한 소유자였는데, 동반자까지 만나자 더 나태해져 갔다. 편할수록 더 편해지고 싶어 하는 인간적인 속성 때문일까.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모르듯 안일무사주의자로 전락해 버렸다.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심에 빠져 현재에 안주하려는 행동이 부끄러운 것인지도 몰랐다.

언제나 그렇듯 폭풍이 한번 휘몰아친 뒤에서야 사람은 자기 모습을 되돌아보게 되는 것 같다. 그 당시 승진이라는 목표는 안중에도 없었다. 저만치 동기들은 앞서가고 형체가 사라질 쯤 되어서야 그 뒤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출발점 행동이 늦을수록 몇 갑절의 노력이 있어야 따라갈 수 있지 않겠는가. 탐욕만 가득한 이기주의자에 대한 형벌은 가혹했다. 제일 먼저 건강이 부도를 맞았다. 할 수 없이 한쪽을 포기하고 가족을 데리고 산을 넘고 강을 건넜다. 바람이 몰아치는 땅으로 신기루를 좇았다가 가족을 지키고, 건강을 되찾고, 폭풍 속을 참고 견디며 인생 곳곳의 고비사막을 넘었다.

고통이 늘 상처로만 남는 것은 아닌 법, 때에 따라 위기를 슬기롭게 이겨내면 인내심 강한 지도자로 거듭나기도 하는 것 같다. 인고의 길을 묵묵히 견디다 보니, 오아시스처럼 '교직의 꽃'이라는 자리에 앉게도 되었다.

느지막이 마음을 비우고 모든 것을 내려놓으니, 건강이 돌아오고 가족이 다시 보였다. 요즘은 토끼 같은 손자들의 재롱을 보는 재미도 솔솔 하고, 혼자만의 시간엔 수필이라는 벗이 곁에 있어 좋다. 이 친구는 내 영혼을 살찌우고, 정체성을 확인하는 신실한 삶의 동반자가 되어 주고 있다. 만약에 내 마음에 틈이 생기지 않았더라면 알토란같은 청년시절, 오락에 빠지고 학업에 소홀해서 오늘의 내가 존재했을까 의문부호가 남는다. 내 삶의 크고 작은 보람들이 마음의 틈을 메우기 위해 노력한 결과가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

오래 전에 '맨발의 효자 기봉이'란 프로그램이 방영되어 세상을 놀라게 한 일이 있다. 기봉이는 선천성 지적 장애아로 태어났지만, 노모를 극진히 모시고 자기인생을 행복하게 살았다. 비록 틈이 많은 바보였으나 결국에는 사회에서 인정받는 인물이 되었다. 우리 속담에 '등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말도 있지 않는가.

C작가의 '바보 존'이란 저서에 보면 "바보처럼 꿈꾸고, 바보처럼 상상하며, 바보처럼 모험하라!"는 말이 나온다. 그렇다. 현대처럼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자면 바보처럼 꿈꾸고, 생각하는 것도 오늘을 사는 현명한 방법일지 모른다. 오히려 바보가 길 잃은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하는 수호천사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달라지고 있다. 지난날에는 학습능력이 탁월한 인재들에게 주로 기회가 주어졌다면, 요즘에는 점점 '꿈꾸는 현명한 바보'들에게 기회의 문이 열리고 있다. 오늘날의 사회는 빼어난 천재가 필요한 것만이 아니라, 노력하는 바보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틈이 꼭 부족한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사람 뿐 만이 아니라, 집이나 건물에도 틈이 있어야 햇살과 공기가 잘 통한다. 옛 속담에 '물이 너무 맑아도 고기가 모여들지 않는다.'고 했다. 틈이 있어야 관계 속에서도 타인이 들어 갈 여지가 있고, 이미 있는 사람도 편안하게 할 것이 아닌가. 또한 틈이란 사람사이의 소통창구이기도 하다. 굳이 틈을 가리려 애쓰지 말고, 있는 그대로 열어 놓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 빈틈으로 사람들이 찾아오고, 그들이 인생의 동반자가 되어 삶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고향집 대청마루에 앉아 다시 틈새들을 바라본다. 삶 속의 틈들이 허점이 아니라 여유이기도 한 것을 왜 그리도 몰랐을까. 조급한 마음에 오늘처럼 작은 것을 바라보며 여유를 가져 본 적이 그 언제였던가. 작은 틈이 큰 것들을 내려놓고 자꾸만 나를 돌아보게 한다.

앞으로는 내 마음의 문을 좀 더 열어 작은 틈만큼이라도 더 넉넉한 날들을 보냈으면 좋겠다. 나는 결코 빈틈없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 아니다. 틈이 있는 본연의 모습 속에서도 의미를 찾아, 더욱 알찬 모습으로 하루하루를 메워가고 싶다. 고향집 대청마루의 틈이 오늘은 선지자의 숲처럼 유난히 깊어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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