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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길 / 김기림

부흐고비 2019. 11. 21. 09:18

길 / 김기림1


나의 소년 시절은 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喪輿(상 여)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 빛에 호젓 때없이 그 길을 넘어 江가로 내려갔다가도 노을에 함북 자주 빛으로 젖어서 돌아오곤 했다.

그 江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 번 다녀갔다. 까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도 떠나간 다음에는 누런 모래둔과 그리고 어두운 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 와 앓았다.

할아버지도 언제 난 지를 모른다는 마을 밖 그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 기가 돌아올 것만 같아 멍하니 기다려 본다. 그러면 어느새 어둠이 기어와 서 내 뺨의 얼룩을 씻어준다.

  1. 金起林: 1908~? 시인․문학평론가․영문학자. 호는 片石村. 함북 성진 출생. 일본대 학 문학예술과 졸업. 조선일보 학예부장. 1933년 九人會 결성. 한국전쟁 때 납북. (이 작품은 1936년 「朝光」 3월호에 발표되었고, 金起林의 수필집 「바다와 육체」에 실려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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