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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청빈예찬 / 김진섭

부흐고비 2019. 11. 22. 10:11

청빈예찬淸貧禮讚 / 김진섭1


이는 또 무어라 할 窮相(궁상)이 똑똑 흐르는 사상이뇨 하고, 독자 여러분 은 크게 놀라실지도 모른다. 확실히 사람이 이 황금만능의 천하에서 淸貧( 청빈)을 예찬할 만큼 곤경에 빠져 있다는 것은 비참한 일이다. 그러나, 이 왕 부자가 못된 바에는 貧窮(빈궁)은 도저히 물리칠 수 없는 일이니, 사람 이 청빈을 極口禮讚(극구예찬)함은 우리들 선량한 貧者(빈자)가 이 世上을 살아가는 데 있어 그것은 절대로 필요한 한 개의 힘센 무기요, 또 위안이다. 혹은 부유라 하며, 혹은 빈곤하다 말하나, 대체 부유는 어디서 시작되는 것 이며, 빈곤은 어디서 시작되는 것이냐? 사람이 부자이기 위해서는 대체 얼마나 많이 가져야 되고, 사람이 가난키 위해서는 대체 얼마나 적게 가져야 되느냐? 그러나, 물론 이것을 아는 이는 없다. 보라! 이 세상에는 부자임에도 불구하고, 실로 대단한 부자임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가난하다 생각하며, 사실에 있어 또 이 느낌을 항상 지니고 다니는 徒輩(도배)는 허다하지 않은가?

그들은 어느 날에 이르러도 자족함을 알지 못하고, 전연히 필요치 않은 많은 것을 요망한다. 말하자면, 위에는 위가 있다고 할까, 도달할 수 없는 상층만을 애써 쳐다보곤, 아직도 자기에게 없는 너무나 많은 것을 헤아리는 것이다. 포만함을 알지 못하고 「충분타」하는 아름다운 말을 이미 잊은 바 , 그러한 徒輩를 사람은 도와줄 도리가 없다.

그런데, 또 보라! 이 세상에는 극도로 어려운 처지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넉넉타 생각하며, 사실에 있어 또 이 느낌을 항상 지니고 다니는 사람은 허다치 않은가? 이 사람들에겐 명색이 재산이라 할 만한 것이 없음은 물론이요, 대개는 손으로 벌어서 입으로 먹는 생활이 허락되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들은 정말로 필요한 것조차를 필요하다고 여기지 않고, 말하자면 밑에는 밑이 있으니까, 밑만 보고 또 이 위에도 더욱 가난할 수 있을 모든 경우를 생각하고, 그리하여 얼마나 많은 사람이 切迫(절박)한 곤궁 속에 주리고 있는가 생각한다. 이리하여, 이 위안의 名流(명류)들은 마치 그들이 그들의 힘과 사랑을 어딘지 다른 곳에다 두는 듯한 느낌을 우리에게 주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원래가 빈부의 객관적 표준은 있을 수 없으므로, 빈궁의 문제를 쉽사리 규정하여 버릴 수는 없다. 문제는 오직 조그만 주머니가 곧 채워질 수 있음에 대하여, 구멍난 大囊(대낭)이 결코 차지 않는 물리적 이유에만 있을 따름이다.

그리하여, 결국은 빈부의 최후의 결정자는 그 사람 자신일 뿐이요, 주위에 방황하는 제3자가 아니다. 그러므로, 또한 사람이 참된 부유를 자손을 위하여 남기려거든, 드디어 한이 있는 물질보다는 밑을 보는 才操(재조)와 缺乏(결핍)에 사는 기술을 전함에 지남이 없을 것이다. 자족의 취미와 자기의 역량을 어딘지 다른 곳에다 轉置(전치)할 수 있는 정신적 재능이야말로 사람을 부자이게 하는 바 2대 요소이다.

그러면, 이 세상에는 과연 빈궁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일까? 아니다. 우리는 여기 두 가지 종류의 빈궁을 지적할 수가 있다. 그 하나는 물질적 빈궁이 라 할 수 있으니, 이제 벌써 할 일이 없고, 그러므로 쓸데없는 존재가 된 사람이 그보다 밑바닥에 있는 사람은 없는 까닭으로 활동과 생존에 대한 권리를 이미 잃고, 여기는 영구히 자족과 質素(질소)의 어떠한 예술도 적용될 수 없을 때, 실로 그때 그는 참으로 가난하며, 실로 거기 참된 빈궁은 있다. 다른 하나는 정신적 빈궁이라 할 수 있으니, 그것은 사람이 그의 참된 역량 과 그의 참된 사랑을 바칠 수 있는 하나의 정당하고, 또 아름다운 「다른 곳」이 세상에는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치 못하기 때문에, 이러한 「다른 곳」을 어리석은 나로서 嘲笑(조소)하므로 의하여 자기 자신을 無用(무용)의 長者(장자)로 뿐만 아니라, 그의 생존과 활동이 의미를 상실할 때, 이 결핍을 맛보라 하지 않고, 지향 없이 탐욕만 추구하는 그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다른 의미에서 가난한 자라 아니할 수 없으며, 또 우리는 이곳에 다른 하나의 참된 빈궁을 발견치 않을 수 없다.


그리하여, 여기 우리가 가장 슬퍼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제2유형의 빈자 가 냉담하고 倨慢(거만)한 태도로 제1유형의 빈자 옆을 지나친다는 사실이 다. 일찍이 디오게네스는 그의 조그만 통 속에서도 극히 쾌활하게 살았다. 그러나, 알렉산더에겐 이 세상 전체가 한없이 작은 것이었다. 여기 만일에 사람이 철학자 디오게네스의 富를 더욱 큰 것이라 단언할 수 있다면, 그의 청빈은 확실히 적은 「재산」은 아니다.

  1. 金晉燮: 1908~미상, 호는 청천(聽川). 전라남도 목포출신. 전라남도 나주에서 보통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와 1920년에 양정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이듬해 일본으로 건너가 1927년에 호세이대학[法政大學] 문학부 독문과를 졸업했다. 일본유학시절부터 귀국 후 광복 전까지는 주로 문학 및 연극운동에 참여했다. 1945년 경성방송국, 1946년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장 및 서울대학교·성균관대학교 교수를 역임하다가 한국전쟁 때 납북되었다. 일본유학시절 손우성(孫宇聲)·이하윤(異河潤)·정인섭(鄭寅燮) 등과 ‘해외문학연구회’를 조직하고 1927년 잡지 『해외문학(海外文學)』 창간에 참여했다. 창간호에 평론 「표현주의문학론」 외에 만(Mann,H.)의 소설 「문전(門前)의 일보(一步)」 등 독일의 소설과 시를 번역, 소개했다. 귀국 후 경성제국대학 도서관 촉탁의 일을 보면서 1931년 윤백남(尹白南)·홍해성(洪海星)·유치진(柳致眞) 등과 극예술연구회를 조직하는 등 연극운동에 참여했다. 1947년 첫 수필집 『인생예찬』에 이어 1948년 그의 문명을 떨치게 한 제2수필집 『생활인의 철학』을 간행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본격적인 수필을 개척한 작가로 지목되고 있는 바, 1929년『동아일보』에 「수필의 문학적 영역」을 발표하여 수필의 문학적 정립을 시도하면서, 직접 「백설부(白雪賦)」·「생활인의 철학」·「주부송(主婦頌)」 등 경구적·사색적·분석적인 명수필을 잇따라 발표하여 당시 이양하(李敭河)와 함께 우리 수필문단의 쌍벽을 이루었다. 이양하의 수필이 서정적·고백적인 데 반하여 그의 수필은 서정적이나, 환상을 배제하고 사색적이고 논리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간 점이 특징이다. 저서로는 평론집 『교양의 문학』(1950)·『청천수필평론집(聽川隨筆評論集)』(1958) 등이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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