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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 이어령1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나는 하나의 공간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조그만 이파리 위에 우주의 숨결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나는 왜 내가 혼자인가를 알았다.
푸른 나무와 무성한 저 숲이 실은 하나의 이파리라는 것을… 제각기 돋았다 홀로 져야 하는 하나의 나뭇잎, 한 잎 한 잎이 동떨어져 살고 있는 고독의 자리임을 나는 알았다. 그리고 그 잎과 잎 사이를 영원한 세월과 무한한 공간이 가로막고 있음을.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나는 왜 살고 있는가를 알고 싶었다. 왜 이처럼 살고 싶은가를, 왜 사랑해야 하며 왜 싸워야 하는가를 나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은 생존의 의미를 향해 흔드는 푸른 행커치프… 태 양과 구름과 소나기와 바람의 證人(증인)… 잎이 흔들릴 때, 이 세상은 좀 더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의 욕망에 눈을 떴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들었다. 다시 대지를 향해서 나뭇잎은 떨어져야 한다. 어둡고 거칠고 색채가 죽어 버린 흙 속으로 떨어지는 나뭇잎을 본다.

피가 뜨거워도 죽는 이유를 나뭇잎들은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생명의 아픔 과, 생명의 흔들림이, 망각의 땅을 향해 묻히는 그 이유를… 그것들은 말한 다. 거부하지 말라,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대지는 더 무거워진다. 눈 에 보이지 않는 끈끈한 引力(인력)이 나뭇잎을 유혹한다. 언어가 아니라 나뭇잎은 이 땅의 리듬에서 눈을 뜨고 눈을 감는다. 별들의 運行(운행)과 나뭇잎의 파동은 같은 질서에서 움직이고 있음을 우리는 안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우리들의 마음도 흔들린다. 온 우주의 공간이 흔들린다.

  1. 李御寧: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낸 교육자·저술가·정치가·평론가. 1934년 충청남도 아산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국문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경기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단국대학교 전임강사, 서울대 강사,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로 재직했다.〈서울신문〉·〈한국일보〉·〈경향신문〉·〈중앙일보〉 등의 논설위원과 잡지 〈문학사상〉의 주간을 맡아보았다. 1991년 초대 문화부 장관을 역임했다. 대학 재학시절에 평론 〈이상론(李箱論)〉을 발표한 뒤, 이듬해 〈한국일보〉에 우상화된 기성문단에 대한 도전을 선언한 평론 〈우상의 파괴〉를 발표하여 문단에 나왔다. 이어 평론 〈비유법론고(譬喩法論攷)〉(문학예술, 1956. 11~12)·〈해학의 미적 범주〉(사상계, 1958. 11)·〈사회참가의 문학〉(새벽, 1960. 5)·〈현대소설 60년〉(문학춘추, 1964. 6) 등을 발표했다. 문학비평 활동을 하며 김동리와 작품의 실존성에 관한 논쟁을 벌였고, 조연현의 전통론을 반박하여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그외 소설 〈마호가니의 계절〉(예술집단, 1955. 12)·〈장군의 수염〉(세대, 1966. 3)·〈의상과 나신〉(한국문학, 1978. 5~1979. 2) 등을 발표했다. 소설집으로 〈환각의 다리〉(1977)·〈둥지 속의 날개〉(1984)·〈무익조(無翼鳥)〉(1987) 등, 수필집으로 〈흙속에 저 바람속에〉(1963)·〈신한국인〉(1986)·〈축소지향의 일본인〉(1982) 등, 평론집으로 〈저항의 문학〉(1959)·〈전후문학의 새물결〉(1962)·〈한국작가전기연구〉(1975) 외에 20여 권의 저서가 있다. 1979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2001년 서울시 문화상, 2003년 대한민국 예술원상을 받았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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