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시詩 느낌

시를 퇴고하는 방법

부흐고비 2019. 11. 25. 01:07

시를 퇴고하는 방법


1. 시를 어떻게 고칠 것인가

- 역사 이래 퇴고의 어려움을 토로한 글은 수없이 많다. 시를 쓰는 것 못지않게 어려운 것이 퇴고다.
- 퇴고를 잘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처음부터 시를 제대로 써야 한다. 시를 고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잘못된 시 쓰기의 방법을 먼저 고쳐야 하는 것이다.
- 때론 어느 정도 작품을 써본 지망생보다는 처음으로 시를 써보는 지망생들의 발전 속도가 더 빠른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 퇴고의 과정은 기본적으로 군살빼기 과정이다. 곧 글의 다이어트인 셈이다.
- 스티븐 킹은 ‘초고-10%=퇴고’라는 공식으로 글을 쓴다고 한다.
- 생텍쥐페리는 “완벽함이란 더 이상 보탤 것이 남아 있지 않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을 때 완성된다.”라고 하였다.
- 러시아 문장을 가장 아름답게 썼다는 투르게네프는 어떤 작품이든지 써서는 책상 속에 넣어두고 석 달에 한 번씩 퇴고했다고 한다.
- 두 번 고친 글은 한 번 고친 글보다 낫고, 세 번 고친 글은 두 번 고친 글보다 낫다.

1) 시어의 쓰임과 문장을 살핀다

■ 맞춤법, 띄어쓰기, 문장부호 사용이 틀리지 않았는지 살핀다.
■ 중복어가 없는지 살핀다.
(역전앞, 초가집, 해변가, 약숫물, 처갓집, 외갓집, 생일날 등)
■ 관념어(추상어) 사용을 자제한다.
■ 한자어 사용을 줄인다.
■ 접속사를 사용하지 않아도 문장이 될 때는 삼간다.
■ 외래어 사용을 자제한다.
■ 조사의 쓰임에 유의한다.
■ 시제의 사용이 맞는지 살핀다.
■ 주어를 생략해도 좋을 곳은 뺀다.
■ 주어와 서술어가 제대로 연결되고 있는지 살핀다.
■ 지나친 수식어 사용을 삼간다.
■ 형용사를 대체할 새로운 비유를 생각한다.
■ 문장의 어순은 올바른지 살핀다.
■ 외래어 표기법에 맞게 썼는가를 본다.
■ 문장의 길이가 적당한지 살핀다.

2) 시의 내용을 점검하고 스타일을 만든다

■ 처음의 생각과 신선함이 지켜졌는지 살핀다.
■ 1차적으로 완성된 시를 소리 내어 읽어보며 시의 형식을 고민한다.
(자유시/산문시, 행갈이/연 나눔 등)
■ 내용 중에 모순과 오해될 데가 있나 살핀다.
■ 더 이상 뺄 것이 없을 때까지 줄인다.
■ 시의 형식이 정해지면 시에 어울리는 어조를 입힌다.
■ 보고 또 보고, 여러 번 소리 내어 읽으면서 조사와 어미를 고친다.
■ 같은 단어나 비슷한 표현이 반복되었는지 살핀다.
■ 멋진 표현이나 근사한 구절에 마음이 쏠려 군말을 늘리지 않는다.
■ 시제는 가능하면 현재형을 쓴다.

3) 퇴고하고 또 퇴고한다

■ 제목과 본문의 조화를 다시 생각한다.
■ 주제가 제대로 구현되었는지 살핀다.
■ 내가 먼저 감동할 수 있는 시인지 생각한다.
■ 이 표현에 만족할 수 있는지 살핀다.
■ 앉은 자리에서 자꾸 고치지 말고 남의 글처럼 낯설어질 때 고친다.
■ 시의 첫인상을 결정짓는 첫 행을 놓치지 마라.
■ 마지막 행으로 깊은 인상을 남겨라.

2. 이미지들 사이에 연결고리를 만들어라

푸른 하늘 같은 건
애초에 없었다
걸어도 걸어도
길은 나오지 않았다

밤마다 속삭이는 검은 그림자
산수유 붉은 울음은
달빛아래 더 서럽다

기다리지 않는 자에게
아침은 오지 않는다
절망은,
어미의 자궁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미친 하늘,
바람 불어온다
가을은,
쑥부쟁이 줄기 따라
유령같이 온다
- 학생 작품, 「슬픈 가을」

이 시는 참신한 비유들이 많고 또 시어들에서 힘이 느껴진다. 그러나 <슬픈 가을>이라는 제목이 너무 상투적인 듯 느껴지고 전체가 4연으로 구성이 돼 있는데 각 연마다 이미지들은 선명하게 잡히지만 안타깝게도 그 연들이 각기 따로 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연과 연 사이에 연결고리 없이 근사한 말들의 향연이 펼쳐진 듯한 느낌이랄까. 무언가 할 이야기가 정말 많고 또 앞으로 좋은 시를 충분히 많이 쓸 수 있을 듯한데 구체적인 시상 하나를 잡지 못하니 시가 좀 어수선해진 건 아닐까.

예컨대, “산수유 붉은 울음은/달빛 아래 더 서럽다” “절망은/어미의 자궁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가을은 쑥부쟁이 줄기 따라/유령 같이 온다”는 시인만이 발견한 훌륭한 비유들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시가 될 수 있을까? 시의 첫행을 “절망은/어미의 자궁에서부터 시작되었다”로 열면 어떨까. 그 다음에 지금은 빠져 있지만 자신이 절망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이 들어가고, 그 절망과 “산수유 붉은 울음”을 연결 지을 수 있는 고리를 찾아서 퇴고를 하면 좋겠다. 이제부터 필요한 건 바로 선택과 집중이다. 모호한 이미지로만 이야기하지 말고 구체적인 사건을 바탕으로 빛나는 구절들을 조화롭게 배치하면 분명 멋진 시가 될 것이다.

3. 사건을 전략적으로 재배치하라

생일에 받은 꽃바구니에 먼지가 쌓인다
군데군데 찢어진 성의 없는 소포박스에서 나온 성의 없는 꽃바구니
꽃을 나무랄 생각은 없는데
향기라도 나서 만져볼라치면 이리도 뻣뻣한 꽃잎이라니
누구의 손끝에서 만들어졌을까...
비누꽃이 가는 곳에 마음도 가려니 했을 테지
너도 한때는 보들보들했겠지
녹을 듯 타올라 넘치기도 했겠지
그저 맡기기만 하면 되었던 것을
붉은 꽃이라도 푸른 이파리라도
그저 그것만으로도 족했던 것을

생일에 받은 꽃바구니에 먼지가 쌓인다
이파리를 똑똑 따다 손을 씻는다
- 학생 작품, 「오래된 사랑」

살다보면 생일 꽃바구니를 종종 받게 된다. 그런데 그 꽃바구니가 더 이상 사랑의 징표로 다가오지 않을 때, 준비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의례적인 행사로 여겨질 때가 있다. 바로 그 때가 소소한 일상이 시가 되는 때이기도 하다. 이 시는 시를 발견하는 눈은 있지만 완성미가 좀 떨어지는 아쉬움이 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의 삶, 특히 일상성을 좀 더 세심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지금보다 더 구체적인 삶의 이야기들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는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

첫행은 이렇게 시작하면 어떨까. “택배기사가 부려놓고 간/군데군데 찢어진 소포 박스를 뜯는다/올해도 어김없이 꽃바구니다” 이 대목에서 굳이 “성의 없는”이라는 표현은 쓸 필요가 없다. 직접 전해주지 않고 택배로 배달시킨 것만으로도, 또 찢어진 소포 박스만으로도 충분히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결혼 후 받은 00번째 꽃바구니/같은 표정으로 웃고 있는 백 송이 장미/향기라도 만져보려 했더니/꽃잎이 뻣뻣하다/누구의 손끝에서 만들어졌을까/이 비누꽃은?” 이런 식으러 상황과 언어를 압축해서 퇴고를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그런 다음 하고 싶은 말이 많아도 자제하고 자제해서 꼭 필요한 몇 마디만 남겨 놓는다고 생각하면서 인식의 뼈대를 추려보자.

크게 보면 1연은 비누 꽃바구니를 받은 날의 풍경, 2연은 지금처럼 먼지가 쌓이고 “시들지 않는 꽃잎”을 똑똑 따다가 손을 씻는 행동을 간략하게 묘사하면 될 것 같다. 마지막 행은 좀더 인상적인 구절이 필요하다. 예컨대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아냈다” 이런 식으로 마무리해도 괜찮을 것이다.

4. 결정적 순간을 놓치지 마라

명예퇴직한 지 2년
잘 보낸 하루를 생각하며 잠에 빠져 든다

보일러 연소공기압이 위험치 250㎜/㎤을 조금 넘는다.
9월 전력대란 우려가 예상되는 가운데
오늘도 전 직원이 전력상황 뉴스에 긴장하며
아슬아슬한 계기판 움직임에 일희일비 하고 있다
잠깐 옆 발전기 난조상황을 도와주러 갔다가 경보가 울려 돌아보니
수치가 200 이하로 내려갔다
조절가능시간 30초를 생각하며 급히 몸을 돌리니
허벅지 뒤쪽이 당기고 발이 바닥에서 잘 떨어지지 않는다
다리를 끌며 다가가 버튼을 누르자 정상치로 돌아온다

긴장이 풀리며 눈을 뜨자
조금 전 모습들이 희미하게 사라진다
다리를 만지며 하루 삶을 시작하지만
그들을 모습을 바꿔가며 다시 올 시간을 기다린다
- 학생 작품, 「몸에 박힌 숫자들」

이 시는 발전회사에서 32년 간 운전원 생활을 했던 체험을 바탕으로 했다. 제목이 아주 인상적이다. ‘몸에 박힌 숫자들’이라는 제목만으로도 이 시는 절반쯤은 성공한 시처럼 보인다. 조금만 더 내용을 보완하면 구체적인 삶의 체험이 묻어나는 좋은 시가 될 것이다.

우선 구성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금은 3연으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1연은 명예퇴직한 화자가 편안하게 잠자리에 드는 모습이고, 2연은 발전회사로 돌아간 꿈속 상황이다. 그리고 다시 3연은 현재로 돌아오는 회귀 구조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3단 구성을 하다 보니 중간에 나오는 위기 상황에 대한 극적인 설정이 좀 약화된 느낌이다. 이럴 땐 연을 하나 늘려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된다.

예컨대 “잠깐 옆 발전기 난조상황을 도와주러 갔다가 경보가 울려 돌아보니”부터 새로운 연을 구성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문장은 다음 행까지 이어지면서 시적 긴장이 뚝 떨어지고 있다. 치명적인 위기상황인데 너무 만연체로 끌고 간 것이 문제다. “사고는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일어났다” 혹은 “느닷없이 경보음이 울렸다”하는 식으로 주위를 환기할 필요가 있다. 이럴 때는 군더더기 없는 단문이 효과적이다. 위기를 간신히 극복하는 상황도 문장을 나눌 필요가 있다. “다리를 끌며 다가가 버튼을 누르자 정상치로 돌아온다”를 “다리를 끌며 다가가 간신히 버튼을 누른다/멈칫멈칫하던 계기판의 숫자가 정상치로 돌아온다” 이런 식으로 바꾸고 연의 구성을 정돈하면 시적 긴장과 주제의식이 잘 살아 있는 좋은 작품이 될 것이다.

5.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마라

흐리게 보이네.
자세히 보고 참견하지 말라는 뜻인가?

잘 안 들리네.
너무 잘 듣고 아는 체 하지 말라는 뜻인가?

굽어진 내 등.
위만 보고 다그치지 말라는 뜻인가?

곧 다
안 보이고
안 들린 채
누워만 있을 것이리니.

서서히 준비하라는 뜻인가?

준비할 새도 없이
안 보이고
안 들리고
누워야만 했던 이 얼마나 많았던가?

돋보기
보청기
지팡이 찾을 일 아니다.

몸이 지름길로 와
미리 귀띔해주는 건
얼마나 고맙고 행복한 인생인가?
- 학생 작품, 「회갑」

우선 이 시의 제목을 보자. 「회갑」이라는 제목을 읽으면 독자들은 무엇을 상상할까. 그리고 이어지는 시행들을 보자. 독자들의 기대치를 못 넘어선 듯한 아쉬움이 느껴지지 않는가. ‘회갑’은 이 시의 중심 소재이지만 제목으로 쓰이기엔 좀 약하다. 시의 전체 내용을 대변할 수 있는 주제 중심의 제목으로 바꿔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마지막 연에 이 시의 제재와 주제를 아우를 수 있는 핵심 단어가 있다. 바로 “귀띔”이다. 그 단어를 제목으로 삼아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시를 읽어보니 너무 욕심을 부린 듯하다. 다시 말하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서 너무 주제를 뻔히 노출시켰다는 말이다. 특히 이 시의 마지막 연이 그러하다. 이렇게 몸이 알아서 귀띔을 해주니 “얼마나 고맙고 행복한 인생인가?”라고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시는 세상에 대한 시인의 해석이 담긴 것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독자들이 찾아야 할 몫이다. 내가 생각한 인생은 이거야 라고 한마디로 친절하게 정리해주면 시를 읽는 사람은 재미가 없다. 마치 정답을 알려주고 시험을 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일반적인 글과 달리 시에서 상징과 은유를 필요로 하는 까닭이 여기 있다. 말하자면 그것은 돌려 말하기 위한 장치인 셈이다.

4연과 6연은 군더더기다. 없어도 이상할 것이 없다. 오히려 이런 시일수록 담백하게 써야 한다. 많이 알아도 조금 아는 척, 이제 겨우 실마리를 잡았다는 느낌으로. 예컨대 “갑년이 지나고 나니/세상이 흐려 보이네/자세히 보고 참견하지 말라는 뜻인가//사람들 이야기도/잘 안 들리네/아는 체 하지 말라는 뜻인가//등이 자꾸만/굽어지네/위만 보고 다그치지 말라는 뜻인가” 이런 식으로 진술에 통일성을 부여하면서 퇴고를 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6. 체험만으로는 시가 되지 않는다

양화대교의 입구

우측엔 노란 불빛과
좌측엔 붉은 불빛이 일렬횡대로 끝없이 펼쳐져 있다

물과 기름처럼 서로가 섞이지 않은 체
불빛의 향연 속에 이곳은 적막감이 감돈다

여인의 머리카락이 풍겨오는 향기와
노랫소리 마냥 들려오는 엔진소리

달콤한 꿈에 취해 검게 물든 하늘을 본다
어두운 낯빛의 강물을 본다

서울의 막차 650번
이곳에 나는 정체되어 있다
- 학생 작품, 「막차」

퇴근길 풍경을 담아낸 시다. ‘막차’라는 제목은 여러 가지 상징으로 읽힐 수도 있는 중요한 요소다. 그런데 이 시에서는 마지막 연의 마지막 행 “이곳에 나는 정체되어 있다”라는 시구를 제외하면 모두 자신이 관찰한 풍경을 스케치한 것에 머물고 있다. 그저 본 것을 그리는 것에 머물고 있기에 시가 깊어지지 못하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막차’를 타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매일매일 일상의 한 반복이든 아니면 정말 인생 ‘막차’를 경험하는 것이든 말이다. 그런데 이 시에서 흥미로운 것은 막차를 타고 가는 시간에도 차가 밀린다는 것이다. 막차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취객 몇이 졸거나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무거운 가방을 메고 올라타거나 일에 지친 회사원들이 거의 짐짝처럼 부려져서 이동하는 수단 정도다. 그래서 꽉 차지 않고 빈 곳이 많은, 어딘가 모르게 쓸쓸하고 헛헛한 느낌이 들게 하는 것이 막차의 일반적인 이미지다. 그런데 이 학생이 경험한 막차는 좀 다르다. 바로 여기가 시가 되는 지점이다.

예컨대 “오늘도 막차에 몸을 싣는다/양화대교를 지나는데 차들이 꽉 막혀 있다/무슨 일일까/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도/보이지 않는다/노란 불빛과 빨간 불빛이 일렬횡대로 늘어선 길밖에/저 불빛들은 물과 기름처럼 서로 섞이지 않는다/어제와 오늘이 그러한 것처럼” 이런 식으로 전개하면서 중간에 결정적인 사건을 배치해보면 어떨까. 양화대교 난간에 매달려 투신하려는 사람 때문에 소동이 벌어졌다든지 하는. 그런 이야기를 나의 이야기 속에 슬쩍 걸쳐놓음으로 해서 ‘막차’가 갖는 상징성이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사회적인 차원으로까지 확장되는 것이다. 실제로 그런 일들은 우리가 목격하지 못해서 그렇지 종종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7. 낡은 표현을 버리고 지배적인 이미지에 집중하라

나는 밤이면 바다로 간다
검푸른 바다는 눈을 감지 않아도 보인다
멀리 어두웠던 바닷가 선술집에 촛불 하나 켜진다
바다가 눈을 뜨고 파도가 검은 혀를 내두른다
썰물이 되어버린 파도는 멀리서 그렁거리고
밀물은 바람 되어 귓속으로 파고든다
눈까풀이 슬며서 내려앉는다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
등 뒤로 축축한 갯벌이 출렁이고
진흙이 발가락 사이로 스며든다
눈까풀이 요동을 치며 올라간다
반 쯤 열린 선술집 미닫이 사이로 촛불연기가 새어나오고
주인여자의 뱃고동 같은 코골이에 미닫이문이 파르르 떤다
촛불 켜진 탁자 위엔 먹다 남은 찌그러진 탁주 한 잔
오늘 밤도 선술집 주인여자는 깨지 않는다
오늘 밤도 타오르는 양초는 촛농이 흐르지 않는다
바다도 잠드는 밤
남겨진 탁주에 눈까풀을 맡기고 아침이 오기를 기다린다
- 학생 작품, 「불면」

습작기에 누구나 한번쯤 쓰게 되는 시가 바로 ‘불면’을 소재로 한 시가 아닐까 한다. 이 학생은 그 괴로운 불면의 밤을 바닷가를 서성이는 화자를 등장시켜 형상화하고 있다. 불면을 표현하기엔 밤바다 이미지가 괜찮은 것 같다.

그런데 구체적인 표현들을 살펴보니 아쉬운 부분들도 보인다. 우선 첫행이 너무 평범하네요. 좀 더 감각적으로 바꿔 보면 좋겠다. 그리고 이어지는 썰물과 밀물 이미지는 둘 다 쓰여 좀 혼란스럽다. 상식적으론 밤이면 밀물이 들어야 맞다. 그런데 잠을 이룰 수 없는 화자에겐 좀처럼 밀물이 찾아오지 않는 상황으로 그려져야 한다. 예컨대, “파도는 저 멀리서 끓어오를 뿐 돌아오지 않는다”라는 식으로. 그 다음엔 불빛 한 점 없는 어두운 바닷가를 혼자 걷는 그림이 그려져야 한다. 발가락 사이를 비집고 올라오는 갯벌의 이미지가 지금보다 더 선명하게 그려져야 한다. 한밤중에 갯벌을 쏘다니는 그 이미지야 말로 불면을 소재로 한 이 시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선술집, 촛불, 탁주 이미지는 모두 시 속에 등장시키기엔 다소 무리가 따른다. 일단 시어들이 많이 낡은 느낌을 준다. 차라리 좀 더 현실적인 선택을 하면 어떨까. 밤새 불면에 시달리며 밤바다를 헤매다 어느 순간 “현기증처럼 잠이 들지만” 눈을 떠보면 시침은 단 한 칸도 이동하지 못했다든지. 내가 놓친 뱃고동 소리인 듯 옆 사람의 코고는 소리가 나지막이 들린다든지.

8. 호소력이 강한 단어로 시선을 집중시켜라

시집도 안 간 막내딸년이
아비의 사타구니를 닦는다
마지막 자존심을 도둑맞은
아비의 낭패한 눈

물티슈가 지날 때마다
옹망추니 옹송그린 기둥이
이리저리 줏대 없이 흔들린다
저 시름에 겨운 뿌리가 진정
나의 근원이란 말인가

기억 저편에 잠들어 있던 나를
어미에게 부려놓은 완강한 뿌리
나는 지금 아비의 뿌리에서
나의 심장으로 이어진
피톨처럼 선명한 물관을 찾고 있다

그가 가랑이 벌려 일그러진 알집을 보여준다
지중해처럼 고요한 거대한 뿌리
시름조차 풍화한 한 사내의 서글픈 중심
- 휘민, 「불알」

아픔이 클수록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 이 시는 병석에 누운 아버지를 간호한 시인의 개인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시를 쓰면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제목을 붙이는 일이었다.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 시는 물티슈로 몸져누운 아버지의 사타구니를 닦는 그 짧은 순간의 에피소드를 전달하고 있다. 하지만 아버지의 생식기를 뿌리로 인식하는 순간 그 의미의 차원은 ‘아버지와 딸’이라는 관계를 넘어, 인류 보편의 이야기 혹은 생물 보편의 이야기로까지 확장될 수 있다. 그래서 좀 더 설득력 있고 호소력이 큰 단어가 필요했다.

최종적으로 제목이 ‘불알’로 결정되기 전까지 다양한 생각들이 오갔다. ‘뿌리에게’ ‘거대한 뿌리’ ‘알집’ ‘서글픈 중심’ ‘아버지의 기둥’ 등등. 그중 ‘뿌리에게’는 나희덕 시인의 시와 겹쳤고, ‘거대한 뿌리’는 김수영 시인의 시와 겹쳤다. 그렇다고 남은 제목들도 썩 와 닿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 시를 쓴 지 몇 달 지난 뒤 시집에 들어갈 원고를 다시 퇴고하는 과정에서 ‘불알’로 결정했다. 그 단어가 갖는 센 어감 때문에 아버지 이야기를 쓴 시에 감히 붙일 수 있을까 고민도 많았다. 하지만 생명력의 시원으로서 불의 씨앗을 지니고 있는 그 대상을 설명하기엔 이보다 적절한 단어가 없었다. 시를 쓸 땐 이처럼 세상의 인식을 찌르는 과감한 파격도 필요하다.

출처: 하루하루/글쓴이: 가짜시인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