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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땀 좀 흘려봐 / 박영란

부흐고비 2019. 11. 29. 17:11

땀 좀 흘려봐 / 박영란


한 여름의 무더위에 흘러내리는 땀이나 많은 사람들 틈새에서 흘리는 땀은 끈적하고 찜찜하다. 땀의 본질이 사람의 땀샘에서 분비되는 찝찔한 액체이지만, 하다못해 100미터를 혼신의 힘을 다해 뛰었을 때 쏟아지는 땀은 사뭇 다르다. 그 찝찝함과 그 상쾌함을 ‘땀’이라 똑 같이 이름 할 수 없다. 그래서 땀은 각기 이름을 지니고 있다.

구슬땀은 새벽이슬을 맞아 풀 섶에 맺힌 물방울을 떠올리게 한다. 영롱하고 깨끗한 순수의 결정체, 그것은 식물의 땀이다. 땀이 꼭 노폐물이 아님을 상징하고 있다. 콩밭 매는 아낙네의 베적삼에 땀이 솟고 가슴 사이로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 어디에 불순물이 있겠는가. 보석이 소중하고 귀한 것처럼 땀에도 그런 비밀스러움이 있다는 것을 엿보게 한다. 그러니 찜질방에서 하염없이 흘리는 땀을 구슬땀이라 하지 말라. 땀을 의식한 땀은 별 의미가 없다. 땀이 구슬을 빌러온 저의가 깜찍하다.

비지땀은 밀도가 있다. 콩의 찌꺼기를 찌어 짠 것이 비지이듯, 인체 구석구석에서 비집고 나오는 다분히 엑기스적인 땀이 비지땀이다. 개미가 살아가는 운명적인 움직임이 있듯, 사람도 누구나 주어진 삶의 바퀴에서 흘리는 부지런하고 진실 된 땀이 여기에 속하지 않을까. 땀 흘리며 일해 보지 않는 사람은 인생의 의미를 모르듯이, 이 비지땀은 ‘땀’의 가장 상징적 의미를 띠며 땀의 보편적 가치를 지닌다. 삶이 고(苦)이듯, 땀이 고생스러움으로 인식되는 것은 당연한 순리인지 모른다.

식은땀은 식은 죽처럼 힘이 없다. 모든 땀이 일단은 역동적이다. 운동과 다이어트의 비결이 곧 땀 빼는 일로 귀결되는 것이고 땀을 빼느라 오늘날 사람들이 들이는 시간과 노력을 생각해 보면, 땀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다. 의식적으로 표피에 땀을 끌어내려면 그만큼 지쳐버리지만 그만한 새로운 생기와 활력을 얻는다. 땀의 아이러니기도 하다. 그런데 식은땀은 온몸에 스멀스멀 돋는 무의식의 땀이다. 등줄기를 타고 내리는 한 줄기 식은땀은 사람을 무력하게 한다. 몸이 땀에 대응하지 못할 때 땀이 몸에 대응하는 상황이다.

진땀은 말한다. 땀의 진수는 자기라고. 고양이가 쥐를 향해 집중할 때 그 먹잇감이 되는 쥐가 흘리는 땀이나, 면접을 보는 입사시험의 마지막 관문에서 내심 떨리면서 솟아나는 땀이 진짜라고. 하긴 진땀은 그야말로 교감신경과 자율신경의 통제를 벗어난 가장 이성적인 상태에서 흘리는 땀이다. 예기치 않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그 긴장이 극에 이를 때 우리의 몸은 숨통을 틔우는 방법으로 땀을 내보낸다. 그때 사람은 스스로 몹시 애를 쓰고 있다는 걸 땀을 통해 확인한다. 자기애를 느끼게 하는 땀이다.

피땀은 땀에도 품질이 있음을 말한다. 피와 동격이 되는 땀. 그야말로 땀의 한계를 극복한 땀이다. 품질로 치자면 당연 명품이다. 황우석 박사가 줄기세포를 얻는데 성공한 쾌거에는 피땀을 흘린 노력이 있었다. 사람의 땀이 피가 되는 경지에 이르는 것은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하는’ 불광불급한 경우이다. 이렇게 피땀을 흘려 뭔가를 창조하는 인간은 아름답다. 언제보아도 황우석도 아름답고 에베레스트 설산에 묻힌 동료를 찾아간 산악인 엄홍길의 그 피땀도 숭고하다. 땀에도 대단한 자존심이 있음을 보여준다.

땀은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모든 만물은 제 나름의 땀을 흘리고 있다. 길에 버티고 있는 저 육교도 안간힘을 쓰고 있고, 나무의 수분 고로쇠은 나무가 용쓰면 살아있다는 증거, 땀이다. 적당할 때는 절대 땀이 나지 않는다. 안간힘으로 살아가는 그 증거가 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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