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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것은 익숙하게, 익숙한 것은 낯설게 / 권현옥


나는 수필을 쓰고 싶어서 쓰고 감동받고 싶어서 읽는다. 감동받고 싶은 의지가 있다 해서 마음이 그대로 움직여 주는 것이 아니고, 쓰고 싶은 마음이 절실하다 해서 글이 술술 써지는 것이 아니니 감동을 받는 일도 주는 일도 쉽지 않다.

너그럽지 않은 마음으로 코미디 프로를 보면 보기 전의 기분보다 더 찜찜해지고 말을 많이 하고 난 뒤 등이 허전하여 뒤를 보이고 싶지 않은 것처럼, 나도 쓰고 싶어 글을 쓰지만 부끄러움만 남는다. 활자로 남아 불쑥 누군가에게 감동은커녕 대수롭지 않은 일상으로 다가가 삶을 더 시들하게 할까 염려되어 갈수록 쓰는 일이 힘들다. 그럴 때 나는 처음 수필을 사랑하게 된 시점으로 달려가 힘을 채우고 마음을 데운다.

수필에 대한 사랑이 어떻게 시작되었던가. 욕심도 질투도 없이 다가가서 이유 없이 흥분했던 시기가 있었다. 과거와 현재에 무단히 퇴적해 놓았던 글에 대한 열망이 무의식적으로 살아나 선별의 기준이 되었다면 '이유 없이'라는 말은 거짓일지 모른다. 허구도 과장도 없이 편안하고 진솔한 수필의 모습에 가슴 떨렸던 인연은 행운이었다.

시는 화려한 매무새와 말할 듯 말 듯한 입술의 모호한 미소, 그리고 왁스를 먹인 것처럼 세련된 언어들이 매력적이었지만, 매력 때문에 진실이 잘 안보였을 때 나는 수필을 만났다.

덩치 큰 소설이 진실을 위해 끊임없이 말을 걸고 있었지만, 뜨거운 호흡도 긴 호흡도 조금씩 과장돼 보이고 풀어놓은 이삿짐이나 퍼낸 웅덩이의 흙처럼 실제보다 더 많은 양으로 부산스러워 보일 때, 수필을 만났다.

실크 속으로 보이는 아슴푸레한 살결 같은 시의 모습과 뼛속까지 훑어 내린 소설의 모습도 멋져 보였지만 마음을 먼저 보고 싶은 안달이 생겼을 때 수필을 만났다.

짧은 시를 쓰는 바쇼가 말했다. "모습을 먼저 보이고 마음은 감추라." 그러나 나는 순수하고 진실 된 마음을 먼저 보고 싶었다. 따뜻한 방을 마련해두고 마음을 열어두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수필을 만나 사랑하게 되었다. 시장기를 조금 느낄 때 양과 속도를 잘 지키면 고소한, 비스킷 같은 수필을 만났던 거다. 그때, 그 사랑으로 세상이 환했던 짜릿함을 잊지 않으려 한다.

나는 수필에서 자칫 일상의 고백에 치우치거나 평범한 시각의 나열이거나 설명이 길어져 퍽퍽한 비스킷이 될까 걱정스러워 새로워지려고 노력한다. 새로운 시각과 표현, 새로운 구성이 내 사랑을 지치지 않게 하리라 믿는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아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어찌나 반가운지 어떻게 이 시간 이 장소에서 만날 수 있느냐고 호들갑을 떨었다. 만일 그 사람을 알지 못했다면 그 사람이 내 어깨를 쳤다한들 그냥 지나쳤을 것이고 편치 않은 관계라면 못 본 척 했을 수도 있고 좋지 않은 관계였다면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라는 말을 읊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반가움의 이유는 이미 잘 알고 있는 좋은 관계이거나 편한 사람이라는 것이고, 더 중요한 것은 낯선 곳에서 만났다는 것이다.

모든 예술이 그렇거니와 수필도 마찬가지다. '알고 있는 관계'란 우리가 일상 겪는 경험을 뜻하는 것이고 '반갑다'는 것은 '알고 있는 것'을 새로운 시각으로 본 사색의 결과이거나 표현이며 구성이어서일 것이다. 그리고 '기분 좋은 만남'이란 글 쓴 사람의 성정에서 풍기는 향내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조금은 낯선 곳에서 익숙한 것을 만나는 즐거움, 익숙한 것에서 낯선 것을 발견하는 즐거움, 그런 수필을 꿈꾸면서 쓴다.

소재를 찾을 땐 약간의 영감에 의존하는데 어떤 물건이나 아주 짧은 현상에서 인생의 한 컷이 반짝 스치면 그날은 복권에 당첨된 것처럼 반갑다. 마치 맞선을 보는 것과 같아 상대방이 문을 열고 들어와 두리번거리는 순간 맞선 상대임을 직감하게 되고, 걸어오는 순간 이미 환호와 답답함으로 마음이 흔들린다. 그러나 막상 첫눈에 반해 줄줄 써질 거라고 생각했던 소재도 차츰 매력을 잃고 시들해지는 경우도 있고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매력을 발견하고 첫인상을 극복하듯 소재도 계속 바라보고 정이 들면 새록새록 예상했던 것과 다른 글이 나오기도 한다. 그래서 한 번 맞선을 본 소재는 버리지 않는다. 인연은 모두 소중하니 소재 창고에 잘 넣어 두고 종종 들여다본다.

나는 이때 평범한 소재와 독특한 소재를 편 가르기도 한다. 평범한 사람에게서 의외의 개성이 발견되고 개성이 강한 사람 속에서 의외로 편안함을 발견하여 매력을 느끼는 것처럼, 수필에서도 평범한 소재는 새로운 시각이나 표현으로 접근하여 신선하고 반가운 글이 되길 원한다. 독특한 소재를 다룰 때는 그 독특함 속에서 평범한 진리를 꺼낼 수 있는 혜안이 있어야 감동을 줄 수 있다.

소재가 선택되면 어떤 경험과 연결하여 자연스럽게 주제를 드러내야 할까를 고민한다. 화두를 갖고 심연 속으로 빠질수록 좋은 내용을 끌어 올릴 수 있다. 감동은 의식하지 않는 사이에 흡입하는 공기처럼 존재해야 하니 어떤 구성에 넣을 것인가가 중요하다. 구성은 사람의 마음을 끌고 다니는 핸들과 같다. 감정의 공회전을 주지 않기 위해 우회전과 좌회전 그리고 때로는 후진의 장치와 때로는 돌진의 장치로 긴장을 놓지 않게 하여야 한다. 엉뚱한 곳으로 끌고 가 본질을 잊게 한다든지 거칠게 끌고 가서 힘들게 한다든지 너무 천천히 데려가 답답증을 유발해서도 안 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그 글에 꼭 필요한 유기적 관계이었는가를 살펴야 한다.

그러나 흐름, 즉 구성이 처음부터 끝까지 잡히지 않으면 컴퓨터나 노트에 적어놓지 않는다. 활자화 된 순간 그것은 내 의식을 고정화시켜 옴짝달싹 못하게 하므로 나는 자유롭고 싶다. 몇날 며칠 딴청을 부린다. 멀쩡해 보여도 이때쯤 나는 허깨비로 사는 것이다. 그리움이 커져서 답답함이 극도에 닿고 숨이 차오르면 컴퓨터에 앉는다. 그리움은 상상력을 동원하는 힘을 지니고 안달을 부리는 모양이다.

문체는 자기 나름의 표현방법이라 글에서의 매력에 해당한다. 글을 돋보이게도 하고 아니면 시시하게 만들 수 있다. 말하는 사람의 '말투'와 같은 것으로 말할 때의 분위기에 따라 목소리의 톤과 표정을 달리하듯 문체도 글의 내용에 따라 조절을 할 수 있어야 하지만 꼭 이렇게 해야겠다고 해서 의도적으로 나오진 않는다. 그 사람의 성정과 분위기 그리고 성숙된 생각과 어휘의 수용 상태가 드러나는 것이니 그 사람을 가장 잘 드러내는 인상과 같은 것이다.

글이 다 써지고 나면 다듬는다. 전체의 글 흐름이 우선 자연스러운지 보고 나면 각 문장의 호흡이 맞는지 조사나 부사가 잘못됐는지 살핀다. 그리고 거친 표현과 너무 평범한 표현, 모호한 표현이 있는지 본다. 그러나 한 번에 보이지 않거니와 이미 내 글은 내 눈의 콩깍지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다. 환기를 시켜야 한다. 며칠 후에 다시 보고 또 다시 환기, 그리고 다시 보아야 한다. 때론 누군가에게 보여 주고 쓴 조언을 보약으로 참고 마셔야 한다.

머리가 핑그르르 할 때쯤 잊기로 작정한다. 다시는 안 볼 사람처럼. 그러면서도 부끄러워하고 그리워하는 것은 또 뭘까. 이때 나는 행복과 외로움의 띠를 친친 두르고 뒹굴며 소일한다.

좋은 수필을 쓰는 일이 정말로 쉽지 않다. 유명한 강사가 강연의 끝에 박수갈채를 받고 안 받는 일은 철저히 감동에 있다. 그만 그만인 주제인데도 누군가가 하면 진부한 잔소리가 되고 누군가가 하면 감동의 박수를 받는 이유는 어느 하나만의 능숙함 때문이 아닐 것이다. 어느 것이었든 마음을 새롭게 건드려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수필을 쓰기 전에 평범한 하루 속에서 조금씩 새로워지려고 노력했는지를 점검한다. 그리고 묻는다. '오늘도 잔잔한 감동으로 하루를 살았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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