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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등피 / 김희자

부흐고비 2019. 12. 5. 08:07

등피 / 김희자
제1회 2009 천강문학상 대상


산마루에 걸린 마지막 햇살을 거두고 해는 저물었다. 산장 밖 밤하늘에 손톱달이 떠 있다. 세월의 더께가 앉은 등에서 불빛이 새어나온다. 유리관에 둘러싸인 심지는 산장으로 드는 바람에도 꺼지지 않고 활활 탄다. 투명한 등피의 보호를 받으며 타오르는 불빛을 보니 아득한 시절 고향집 처마에 걸어둔 호야등이 아슴푸레 떠오른다.

유년 시절, 저녁 무렵이면 마루 끝에 걸터앉아 푸른빛으로 물드는 저녁 풍경에 빠지곤 했다. 바닷가 비탈진 마을을 쬐던 해가 저물고 어둠이 마을을 삼키기 시작하면 남포에 석유를 채우고 등피를 닦아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전날 밤에 타고 남은 그을음을 나직한 입김으로 닦아내면 등피는 허공처럼 맑아졌다. 투명해진 등피를 조심스레 남포에 씌우고 불씨를 당기면 어스레한 시골집이 환해졌다. 환하게 타오르는 등을 처마 아래 걸어두면 횟가루의 속살이 하얗게 드러나고 그 아래 옹기종기 모인 가족들의 이야기는 등피를 씌운 호야등처럼 훈훈했다.

흙 마당에 쑥으로 모깃불을 피우던 여름밤, 등피를 씌운 호야등은 처마 아래에 매달려 가족들의 마음을 이어주는 불빛이었다. 등피의 보호를 받는 불빛 아래에서 해어진 옷을 깁던 어머니의 손길은 자식들의 해어진 마음까지 기웠다. 쑥이 타는 냄새를 맡으며 살붙이들과 평상에 누운 나는 북두칠성이 거꾸로 선 하늘의 별을 좇으며 꿈을 키웠다. 분꽃 향기가 나던 언니는 입술을 모아 노래를 불렀고, 장난기 많은 남동생은 피어오르는 모깃불을 해작거렸다. 언니의 해맑은 노래가 끝이 나면 밤하늘에는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이 모여 별로 가득했다.

등피속에서 타오르는 심지는 고된 삶속에서도 맑은 소망을 염원하는 어머니의 마음이었다. 부엉이 울음소리가 깊도록 어머니의 바느질은 이어졌고 호야등 불길이 가물가물해져 밤이 이슥해지면 밤이슬에 젖는다고 자식들을 방 안으로 들게 하였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이 없다는 말이 있듯이 자식 아홉을 낳았던 어머니의 근심은 끊이질 않았다. 장손으로 태어난 아들을 핏덩어리 째 잃었고 어린 두 딸은 홍역으로 가슴에 묻었으니 남아 있는 자식들을 보호하기 위한 어머니의 희생은 끝이 없었다.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어머니는 애써 강한 척하셨지만 뒤란 장독대에서 멍든 가슴을 달래며 속울음을 삼켰을 것이다.

자식을 셋이나 먼저 잃은 어머니는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또 한 번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만 했다. 뜨거운 볕이 쏟아지던 여름날 바닷가에서 멱을 감던 둘째언니가 물에 빠졌다. 밭에서 급한 기별을 받은 어머니는 김을 매던 호미를 내던지고 바닷가로 달려갔다. 물에서 허우적대던 언니가 물속으로 사라지자 동네 오빠가 바다 속으로 뛰어 들어가 구했다. 겨우 목숨을 구한 언니는 바위에 축 늘어져 있었다. 언니의 숨결은 약했고 체온까지 떨어지고 있었다. 어머니는 두르고 있던 치마를 벗어 언니를 감싸고 몸을 비비기 시작했다. 생명이 꺼져가는 딸을 감싸 안고 어머니는 울부짖었다.

어머니의 울음소리는 파도소리에 섞여 바닷가 언덕을 한참 동안 타고 올랐다. 애달픈 모습을 내려다 본 하늘이 돕기라도 한 것인지 언니의 식어가던 몸은 다시 따스해지기 시작했다. 언니가 깨어나자 어머니는 하늘을 향해 절을 몇 번이나 올렸다. 그 일이 있은 후 언니는 바다에 가는 것을 싫어했고 피붙이들에게도 바닷가에 가는 일은 한동안 허락되지 않았다. 그 때 언니를 감싸주었던 어머니의 치마는 바람에 꺼질 듯 흔들리는 불을 감싸는 등피와도 같았다.

이제 나도 그때 어머니의 나이가 되어 세월을 뒤따르고 있다. 어머니의 등피 같은 희생에는 따를 수 없지만 두 아이의 바람막이가 되는 노력은 아끼지 않는다. 녹록하지 않은 생활 때문에 두 딸은 학원에 다니지 않고 공부를 한다. 작은 아이의 중간고사가 하루 남은 휴일 오후였다. 책을 읽던 나는 평소 즐기지 않는 낮잠에 설핏 들었다. 모든 것을 알아서 척척 하는 찬찬한 맏딸과는 달리 철부지 작은딸은 늘 바람 앞에 선 등잔불 같이 덤벙댄다. 사춘기를 겪고 있는 작은 아이는 호기심이 많고 사회에 나도는 부정한 일들을 지나치게 비판하며 목소리를 높인다. 아직 사회나 어른들 일에 참견할 나이가 아니라고 여기는 나는 늘 걱정이다. 그런 마음이 내 안에 잠재하고 있었던 것일까. 작은 아이의 꿈을 꾸었다.

작은아이가 혼자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간다. 어설프게 노를 저으며 바다로 나아가는 아이를 보며 나는 가슴을 졸인다. 일렁이는 파도와 싸우는 아이를 보던 나는 아무리 고함을 쳐도 말문이 터지지 않는다. 아이가 탄 배가 금방이라도 뒤집어질 것 같아 발을 동동 거리지만 아이를 구할 방도가 없다. 나는 아이를 애타게 부르지만 아이는 파도와 싸우며 자꾸만 바다로 나아간다. 그때, 내 신음소리를 들은 큰아이가 나를 흔들어 깨운다. 잠에서 깨어난 나는 꿈인 줄 알면서도 작은 아이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이름을 크게 불렸다. 제 방에서 공부를 하던 아이가 대답을 한다.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꿈에서 얼른 벗어나고자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모든 어머니의 마음은 한결같은가 보다. 치열하고 험난한 사회에 섞여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을 걱정하는 내 마음이나 지금도 고향집에 전화를 하면 어찌 사냐며 걱정 섞인 목소리로 울먹이는 어머니의 마음은 매한가지이다. 아직도 나를 걱정하는 노모를 보며 나는 내 아이들에게 얼마만큼의 바람막이가 되어주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이제는 두 딸의 키가 나의 키를 앞질러 미래를 위해 한창 심지를 태워야 할 때이다. 커 가는 내 아이들에게 폭풍우 같은 바람은 없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의 능력에 큰 보탬이 되어주지 못하는 마음이야 두고두고 아프지만 어미로서 그 부족함을 대신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마음을 모아 등피가 되어주는 일이 아닐까.

밤이 이슥하여 밤바람 소리는 깊고 등불은 은은하다. 사위가 밝은 형광등이나 백열등 불빛은 생활을 편하게는 하지만 등피를 씌운 호야등의 은은한 불빛은 허물이나 티끌을 살며시 가려주는 인정이 있다. 그래서 가끔은 호야등이 그립다. 이런 밤에는 향수병마저 도진다. 은은한 등불 아래서 밤이 깊도록 자식들의 해진 옷을 깁 던 어머니와 마당 가득 머물던 쑥 냄새와 피붙이들도 그립다. 지금은 등피를 씌운 등이 사라진지 오래지만 늘 바람막이가 되어주던 어머니의 마음은 그대로 남아 등불을 감싼 등피처럼 나를 안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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