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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고 싶다 / 장기오

부흐고비 2019. 12. 30. 10:35

‘별’이고 싶다 / 장기오
TV 드라마론의 머릿말


1961년 KBS의 개국으로 TV방송은 시작됐다. 그 후 50여 년, 이제 지천명(知天命)이다. 하늘의 뜻이 어디 있는지를 아는 나이다. 그런데 아직도 TV 드라마는 ‘막장드라마’의 오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상을 보는 관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동적(動的)인 세계관, 즉 디오니소스(dionysos)적 관점이고 하나는 세상은 불변이라는 정적(靜的)인 세계관, 즉 아폴론(apollon)적 관점이다. 그러나 변하지 않은 진리도 없으며, 인류가 추구해야 할 가치 있는 진리들은 또한 불변이다. 그렇게 변하면서도 또 지킬 것을 지키고 발전시켜 나가는 변증법적 발전이 바로 역사의 대세다.

문화의 관점도 변해왔다. 18세기 중반부터 산업혁명까지는 고급 문화적 관점이었다. 그 이후 사회가 산업화, 도시화하면서 인류학적인 문화, 즉 ‘보통사람들의 문화가 문화’라는 관점으로 변화하면서 대중문화(mass culture)의 개념이 정착됐다. 현대에 와서 문화는 어떤 의미나 가치를 표현하는 것이라는 사회적인 문화, 다시 말해 문화연구적인 관점으로 바뀌었다.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관점을 지키고 변화시켜 오늘날의 문화로 발전시킨 것이다.

품위 있고 전통 있는 사회는 반드시 지켜야 할 것들을 지킨다. 도덕이 그렇고 상식이 그렇다. 한국 TV도 웬만하면 그럴 때도 됐는데 아직 그럴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날이 갈수록 타락의 도는 점점 심해지고, TV는 이제 우리 사회에서 ‘악의 꽃’으로 지탄받고 있다. 본받아 할 작품도, 존경받아야 할 작가도, 연출가도 없다. 그래서 TV에는 고전(classic)이 없다. 지키고 보전해야 할 그 무엇도 갖지 못했다. 옛것은 낡은 것으로 치부하고, 새로운 것만을 추구하는 우리의 TV 문화는 천박하다고 해도 변명할 수가 없다. TV 문화가 트렌디 문화임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면서도 의미 있는 것들은 지키고 보전시켜 나가는 성숙한 문화 사이클을 우리 TV는 외면하고 있다. 이제 TV는 단순히 오락의 차원이 아니다. 마셜 매클루언(Marshall McLuhan)의 말처럼 TV는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매체이기에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낸다. 브레히트(Brecht)도 “드라마를 통해 관객이 역사와 자신의 인생을 직시하게 되고 사회 변화의 주체가 될 수 있다.”라고 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관통하는 가치관을 제시할 수 있는 하나의 문화로 정착할 수 있는 통시성(通時性)이 TV에 요구될 때다.

그러나 연륜이 더해질수록 TV는 더욱더 패악을 부추기고 있다. 언어를 오염시키고 인간을 사악하게 만든다. 여기에 자본과 여론이 가세한다. 광고 팔아 장사하고, 시청률을 올려야 한다. TV가 어디까지 갈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대중문화는 혼자 만들어지지 않는다. 만드는 사람과 그것을 수용하는 사람 모두가 만들어간다. 아무리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도 그것을 지켜주는 사람이 없으면 무망한 것이며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는 콘텐츠라도 많은 사람들이 그것에 환호한다면 그것 또한 의미가 없다. 문화자본(culture capital) 역시 돈벌이에만 열중할 것이 아니라 문화 창시자로서 우리 사회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해야 마땅할 것이다.

우선 만드는 사람이 변해야 한다. 우리 TV의 수준을 결정짓는 것은 크게 보면 방송정책 당국과 그 경영자들이지만 결국은 만드는 사람, 즉 드라마 작가, 연출가들의 의식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이 어떤 의식과 생각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우리나라 드라마의 수준이 결정된다는 말이 된다. 한국의 드라마는 지금 돈 잔치를 하고 있다. 당국의 정책이 독립프로덕션을 육성발전시킨다며 일정 비율의 외주제작을 의무화하고 있지만 TV 드라마의 발전은커녕 오히려 발전의 장애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그래서 작금은 과거보다 오히려 좋은 드라마의 제작이 줄어들고 있다. ‘과 같은 문예 드라마’나 ‘테마성 짙은 단막드라마’가 방송 3사에 전무한 것이 그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작가나 연출자들도 좋은 작품보다는 시청률 높은 프로를 만들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풍토가 되고 말았다. 경쟁은 품질을 향상시킨 것이 아니라 질을 떨어뜨리고 자극의 도만 더해주었다. 그래서 인기 작가들의 고료나 스타 탤런트들의 출연료는 일반의 상상을 초월하지만 어느 누구도 드라마의 작품성을 논하지 않는다. 오히려 추악할수록 더 좋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그러나 그래서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TV가 전적으로 고상해서 대중들이 재미를 못 느낀다면 이 역시 큰 문제지만 작금처럼 유희로서의 드라마만으로 대중을 현혹시키는 것 역시 옳지 않다.

‘별’이고 싶다. 나는 이 책에서 정도(正道)를 주장한다. 사도(邪道)는 많다. 많은 학원들이 그것을 속성으로 가르친다. 이럴 때는 주인공을 식물인간으로, 기억상실증으로, 때로는 파격적인 불륜으로 풀어가라고 말이다. 테크닉만 있고 정신이 없는 드라마가 양산되고, 시청자들은 또 그것을 즐기고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잘못도 저지르고 실수도 한다. 또 본의 아니게 남에게 위해(危害)도 끼친다. 그러나 그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과 당연시 여기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그래서 TV는 우리 사회의 보편적이고 건전한 상식을 제공하고 적어도 이래서는 안 된다는 부끄러움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이러한 나의 주장이 지나치게 교조적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Happy are those days, when the starry sky is the only way of all the possible paths).”라는 루카치(Lukács)의 말처럼 이 책은 하나의 ‘별’이고 싶다.

읽는 이 모두가 행복하기를 빌 뿐이다.

2009년 겨울 석가헌(夕佳軒)에서
장기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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