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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내 벗이 몇인가 하니 / 구활

부흐고비 2020. 1. 16. 19:41

내 벗이 몇인가 하니 / 구활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란 그 말씀 너머에 자연이 존재한다. 무슨 말이냐 하면 세파의 인정에 넌덜머리가 난 사람들은 더 이상 ‘사회적 동물’이기를 포기하고 도망치듯 자연 속으로 숨어들어 은자가 된다는 말이다. 고향을 포함하여 넓은 의미의 자연은 어머니의 자궁과 가장 밀접하게 닮아 있기 때문에 일상이 고단한 이들은 자연의 품에 안겨야 비로소 안정과 휴식을 얻을 수 있다.

몇 푼의 봉록이 걸려있는 관직생활에 심신이 피로해진 도연명은 불후의 명작인 ‘귀거래사’를 읊으며 고향으로 돌아갔으며, 회재 이언적도 김안로와의 권력투쟁에 밀려 안강 자옥산 기슭에 독락당을 짓고 7년이나 은둔생활을 해야 했다. 그리고 고산 윤선도도 젊은 패기에 푸른 꿈이 있었지만 당쟁의 세력다툼이 싫어 보길도로 들어가 자연 속으로 회귀하려 했다.

“내 벗이 몇인가 하니 수석과 송죽이라
동산에 달 오르니 긔 더욱 반갑고야
두어라 이 다섯 밖에 또 더하여 무엇 하리“(고산의 시 ‘오우가’)

이렇게 자연으로 들어간 은자들은 곁에 늘려있는 물상들을 친구로 삼을 뿐 더 이상 사람을 친구로 삼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간들이 모여 사는 사바세계에는 요즘 유행하는 ‘코드’라는 패거리 문화의 악습이 항상 내재하고 있기 때문에 그 범주 속의 일원이 되지 못하면 왕따를 당하거나 심할 경우엔 목숨까지 잃는 예가 허다했다.

벼슬아치들의 유배 기록을 보면 무엇을 잘못해서가 아니라 상대편의 모함으로 억울하게 귀양 간 경우가 절반이 넘는다. 정적들에게 보복을 당하면 으레 그러려니 하겠지만 때론 친한 친구에게도 배신을 당했으니 어찌 배반당한 이들이 초야에 묻혀 지낼 때 사람을 친구로 삼으려 하겠는가.

주변 사물들을 친구로 사귄 옛 중국의 예를 보자. 임포는 매화를 아내로 학을 자식 삼아 강호에서 일생을 지냈으며, 도연명은 울 가득 국화를 심어 두고 남산을 바라보았고, 주돈이는 맑은 향의 연꽃을, 왕휘지는 대나무를, 삼국시대 명의 동봉은 치료비 대신 살구나무를 심게 했으며, 미불은 바위만 보면 꾸벅 절을 올렸다. 장한은 농어와 미나리가 먹고 싶다며 벼슬을 버리고 떠났으며, 굴원은 향초를 몸에 둘러 맑은 마음을 기렸고, 명필 회소는 만 그루의 파초를 키웠고, 처종은 닭을 사랑했으며, 왕소군은 비파를, 진나라 사람들은 무릉도원을 꾸며두고 세상과의 인연을 멀리했다.

그러나 시원찮은 군주들에 의해 지나치게 과분한 대접을 받은 사물들이 있어 훗날 백성들의 손가락질을 받은 경우도 더러 있다. 속리산 입구의 정이품송은 세조의 행차 때 연이 걸리지 않도록 가지를 들어 주었다하여 그렇게 불리지만 ‘단종애사’를 떠올리게 하는 세조라는 왕의 가치를 생각해 보면 그것 역시 만화 수준이다.

태산에서 내려오던 진시황이 비바람을 만나 소나무 아래 피한 후 그 소나무를 오대부(五大夫)에 봉한 일이나 위의공이 학을 좋아하여 대부의 봉록을 주고 수레까지 하사한 것도 결코 희화 수준을 넘지 못할 일이다. 반면에 중국 유일의 여황제 측천무후는 성불 기도 중에 귀뚜라미가 요란스레 우는지라 기도에 방해가 된다 해서 귀뚜라미 포살령을 내린 일이 있다.

학에게 수레를 하사한 것이나 귀뚜라미 포살령을 내린 것이나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 누구처럼 군주의 고유권한을 곧잘 남용하는 불가해한 처신들이다. ‘수석과 송죽은 내 벗이네. 동산에 떠오르는 달도 역시 내 친구네’라고 읊은 고산의 심성은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가. 이런 풍류를 모르는 소인배들이 정치를 하면 나라의 장래를 그르치는 법이다.

고산은 효종이 등극하기 전인 봉림대군 시절에 그를 가르쳤던 사부였다. 그는 임금의 남다른 총애도 받았지만 반대세력인 서인들에게 밀려 생애 중에 18년이란 긴 세월을 귀양살이로 보냈다. 그래도 고산은 아부를 하지 않았으며 벼슬이 내려질 때마다 면직을 청하고 물러나기를 거듭했다. 그는 유배지에서 몇 년을 더 버티는 한이 있더라도 임금을 향해 치사한 사모곡은 부르지 않았다.

“낚대는 쥐어 있다 탁줏병 실었느냐/ 동풍이 건 듯 부니 물결이 고이 인다/ 돛 달아라 돛 달아라/ 동호를 돌아보며 서호로 가자스라/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모든 것 팽개치고 어부사시사를 읊으며 곧잘 바다로 나가곤 했던 고산이 몹시 그리운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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