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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마에 관한 몇 가지 단상 / 구활


움womb과 툼tomb은 묘한 상관관계가 있다. 영문자 스펠은 한자씩만 틀린다. 그러나 뜻은 자궁과 무덤으로 시작과 끝을 암시하고 있다. 움과 툼이란 글자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알파벳도 한자와 같은 표의문자가 아닌가 하는 부질없는 생각이 든다.

움의 첫 스펠인 w는 가랑이 사이에 있는 자궁의 위치를 설명하는 거 같고 툼의 t는 무덤 앞에 세우는 십자가의 형상을 쏙 빼닮았다. 움과 툼이란 단어를 처음 만든 사람은 참으로 많은 고심 끝에 그렇게 만들었으리라.

말레이시아의 옛 무덤들은 하나 같이 자궁의 형상을 하고 있다. 그것은 아마 움과 툼의 역설적 관계, 즉 ‘종말은 시작’이란 걸 설명하기 위해 그렇게 만든 것은 혹시 아닐까. 움과 툼에 관한 단상은 어느 학자의 논문이나 학설이 아닌 순수한 내 생각이다.

어느 화가가 그린 치마 그림을 보다가 바람난 내 못된 의식이 치마 속에 감춰져 있는 자궁을 연상하고 그 연이은 무의식적 의식의 흐름이 움과 툼으로 이어졌나 보다. 하기야 자궁을 가릴 유일한 수단이 치마라는 이름의 장막밖에 없으니 흘러가는 강물과 구름을 탓할 수 없듯 멋대로 흐르는 내 의식 또한 크게 나무랄 일도 아니다.

인류의 역사는 치마의 역사다. 에덴동산의 이브가 뱀의 꼬임에 빠져 선악과를 따먹기 전에는 치부가 부끄러운 줄 몰랐다. 아담도 이브도 벗고 살았다. 그러나 ‘선악과 따먹기’라는 진실게임 때문에 나뭇잎 치마를 입어야 했고 그 업보는 자손들에게 이어졌다.

연정의 출발은 치마에서 출발한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는 노래 가사나 그네 타는 춘향이의 치맛바람도 모두 그게 그것이다. 치마는 자궁을 은유하고 상징한다. ‘저 사내는 드럼통에 치마만 둘러도···.’라는 시쳇말이 이 대목을 설명하고도 남는다.

치마는 화선지를 대신한다. 오원 장승업은 대놓고 마시던 기생집에 술값을 치러야 할 날이 오면 붓과 화선지를 가져오게 하여 술값 대신 그림을 그려 주었다. 어떤 때는 기생의 속치마에 난도 그리고 대도 쳐주었다. 치마 그림은 단순한 술값이 아니라 기생의 치마 속 은밀한 곳을 드나든 통행세쯤으로 생각하면 비약일까.

퇴계는 48세 때인 단양 군수 시절, 18세인 관기 두향을 만나 사랑하고 죽을 때까지 그리워하는 정을 지녔다. 그는 9개월간의 짧은 임기를 마치고 떠나기 전날 밤 두향의 치마폭에 이런 시를 써 주었다. ‘죽어 이별은 소리조차 나오지 않고 살아 이별은 슬프기 그지없네(死別己呑聲 生別常惻測).’ 그런데 왜 하필 치마였을까.

조선조 선조 때 의병대장으로 두 아들과 함께 장렬히 전사한 고경명도 젊은 시절 황해도에 놀러 갔다가 그곳의 기생과 사랑에 빠진 적이 있다. 기생은 갓 부임한 관찰사의 눈에 들어 사랑하는 청년과의 사랑놀이를 청산해야 했다. 청년은 사랑하는 여인을 떠나보내면서 속치마에 시 한 수를 써주었다. 기생은 청년과의 추억을 잊지 못해 그 속치마를 입고 술시중을 들었다. 마치 치마폭이 바람에 날려 이별의 사연이 드러나고 말앗다. 기생의 사랑 이야기를 들은 사또는 치마를 어루만지면서 이렇게 말했다. “뛰어난 풍류객이로다.”

치마 그림은 남녀 간의 애절한 저을 표현하는 칠판은 아니다. 부녀간의 정을 피마 그림으로 표현한 예도 더러 있다. 강진에서 귀양살이하던 다산은 부인 홍씨가 보내온 빛바랜 붉은 치마를 가위로 오려 시집간 딸을 위해 매화 가지에 앉아 있는 새 한 마리를 그렸다. 고려대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매조도에는 이런 시가 씌어져 있다.

“새들아 우리 집 마당 매화 가지에 날아들었네.
그 진한 향기를 따라 찾아 왔겠지.
여기 깃들고 머물러 즐거운 가정을 꾸려다오.
꽃이 이렇게 좋으니 그 열매도 가득하겠지."

조선조 숙종 때 선비화가였던 홍수주는 자신의 환갑잔치 때 어린 딸이 옆집에서 빌려온 비단옷을 입고 절을 하다 간장 종지가 엎질러져 치마를 버려 놓았다. 청백리로 소문난 선비는 갚을 길이 없자 얼룩방울 위에 포도 그림을 그렸다. 마침 중국으로 사신가는 역관에게 그 치마 그림을 들려 보내 팔게 했다. 역관은 그림을 팔아 받은 돈 5백 냥으로 비단 치마 열 벌을 사왔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이 세상에 흔해 빠진 게 치만데 어머니는 치마 한 폭도 걸치지 못하시고 하늘나라로 가셨다. 몇십 년 전에 미리 가 계시던 아버지는 치마도 입지 않고 도착한 어머니를 보고 “무엇이 그리 바빠서···.”하고 어리둥절하셨겠지만 나는 괴롭다.

어머니는 치매로 돌아가셨다. 우리 집 막내아들의 혼인예식 때 속치마 위에 두루마기만 걸치고 식장에 나오신 이래 치마 입기를 포기하셨다. 운명하신 후 명주 수의는 꽁꽁 입혀서 보내 드리긴 했지만 저승 가는 길목에 홀라당 치마를 벗어 던지고 아무래도 그냥 올라가셨을 것 같다. 하늘나라까지 퀵 서비스로 달려가는 오토바이가 있다면 치마를 보내 드릴 텐데. 오!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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