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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풀매 / 신정애

부흐고비 2020. 2. 8. 15:44

풀매 / 신정애
제28회 신라문학대상


두 개의 행성이 맞물려 돌아간다. 드르륵 드르륵! 어처구니를 잡은 손등 위로 더운 김이 솟아오른다. 밖엔 눈이라도 내리는지 소란하던 사위가 고요하다. 미열로 시작된 감기에 잣죽이 좋다며 엄마가 풀매를 돌린다. 따뜻한 방 안에는 어린 내가 누워 있고 대청마루에 그린 듯 앉아있는 엄마의 치마폭에서 솔향기 같은 잣 냄새가 난다.

유년 시절에는 감기를 달고 살았다.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흐르던 콧물로 코밑은 성할 날이 없었다. 환절기가 되면 편도부터 부어올라 밥보다 죽을 먹은 기억이 더 많다. 뽀얗게 불린 찹쌀과 잣을 풀매에 곱게 갈아 주걱으로 저어가며 끓이면 온 집안에 잣 향기가 아늑하게 퍼졌다. 엄마는 남은 찹쌀가루로 작고 동글납작한 녹두전이나 찹쌀전병을 만들었다. 그 위에 꿀을 듬뿍 뿌려 먹는 것은 아플 때만 누리는 호사였다. 봄이면 창포꽃잎이 하얀 전병위에 피어나기도 하고 겨울이면 대추가 솔잎위에서 붉은 수를 놓았다.

풀쌀을 가는 작은 맷돌이 풀매다. 고운 돌로 만들어 맷돌보다는 작고 아담하다. 아랫돌과 윗돌이 만나 돌아가는 부분에는 서로 다른 무늬의 홈이 파여 있다. 맞물려 물샐 틈 없이 돌아가도 홈이 있어 마찰로 생기는 열을 적게 해준다. 불린 쌀을 아가리 속으로 물과 함께 조금씩 넣어가며 어처구니를 잡고 빙글빙글 돌려주면 곱게 갈린 곡물이 내려온다. 큰 맷돌보다 부드럽게 갈려 죽을 쑤거나 모시, 명주 같은 옷에 고운 풀을 먹일 때 주로 쓰였다.

여름 날 빳빳하게 푸새가 된 아버지의 정갈한 모시옷도 풀매가 한 몫을 했다. 추수가 끝난 늦가을 때쯤이면 아이들 등살에 너덜너덜해진 창호지문에도 겨울채비를 서둘렀다. 곱게 간 풀물을 창호지에 듬뿍 적셔 창살에 발라 두면 늦가을 볕에도 한나절동안 팽팽하게 당겨졌다. 살을 에는 동장군 추위에도 바람을 거뜬하게 막아주었다. 풀물이 고와야 얼룩이 지지 않는다며 풀매를 돌릴 때 엄마는 결코 서두르는 법이 없었다. 악기를 연주하듯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리듬을 타며 박자를 맞추었다. 아랫돌 윗돌이 추임새를 넣으며 일심동체로 돌아가면 엄마의 가녀린 어깨도 함께 어우러졌다.

장단을 맞추며 한 몸이 되어 돌아가는 동안은 엄마 혼자만의 고유영역이 된다. 실타래처럼 엉킨 삶을 추스르는 의식 같은 모습이었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던 육남매를 키울 때는 새우잠을 자고 일어나도 엄마의 하루는 부족했다. 일상이 전쟁 같은 날들에도 늘 아랫돌처럼 그 자리를 지켰다. 주름살 하나 없이 정성들여 손질하는 모시옷처럼 구겨졌던 일상들이 하나 둘 펴졌다. 그건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풀매의 힘이었다.

곡물이 잘 갈려서 나오는 것은 원심력과 구심력이 상호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자꾸만 밖으로 뛰쳐나가려는 윗돌을 아랫돌은 지긋이 당겨준다. 아버지의 늦바람으로 가슴앓이를 하면서도 자식들이 알세라 엄마는 내색 한번 하지 못했다. 육 남매 중 누구도 아버지의 일탈이나 엄마의 아픈 속내를 알지 못했다. 돌 틈사이로 비집고 나오던 하얀 한숨을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들이었다. 궤도를 이탈할 듯 보이는 자전(自轉)도 가정이라는 울타리에 묶여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온다. 언젠가 잎 떨어진 나목이 되어 돌아 올 아버지의 빈자리를 아랫돌이 되어 묵묵히 지켜내었다.

풀매를 돌리면서 가끔 엄마는 낮은 소리로 흥얼거렸다. 곡조도 없는 넋두리 같은 노래를 드르륵거리며 돌아가는 소리에 반주삼아 불렀다. 때로는 우물 속 같은 깊은 한숨소리가 대신할 때도 있었다. 어처구니를 잡은 손등에는 고무줄처럼 파란 힘줄이 솟아올라 마치 작은 풀매에 온 몸이 매달린 듯 했다. 돌들이 부딪치면서 내는 마찰음이 신음처럼 돌아 나오면 넋두리 같은 노래도 풀물에 젖어 들었다. 흥건하게 젖은 넋두리나 깊은 한숨이 마를 때쯤이면 어느 듯 지친 마음도 팽팽하게 당겨 놓았다. 누구나 삶의 버팀목 하나쯤은 가졌다면 엄마에게는 아마도 풀매였으리라.

육남매가 모두 떠나고 빈 둥지가 되자 풀매 잡을 일도 없어졌다. 빳빳하게 푸새된 모시옷을 입어줄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자 쓸모없는 돌덩이가 되었다. 언제부터인지 엄마가 다시 풀매를 잡았다.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라 손사래 쳐보아도 이미 풀매 앞에 앉은 엄마를 말릴 수 없었다. 믹서기로하면 빠르고 쉬우련만 애써 풀매를 고집했다. 힘들게 만든 전병도 옛날처럼 맛이 나지 않아 냉장고 안에서 굳은 채로 버려지기 일쑤였다. 귀할 것도 없는 음식을 만드느라 한나절을 붙잡아 두는 엄마를 이해 할 수 없었다.

얼마 전 유학간 아들이 방학동안 잠시 다니러 나왔다. 생활패턴이 바뀐 탓에 적응하기 힘들다며 떠나는 날은 정성들인 아침상도 마다하고 주스 한 잔만 마시겠다고 했다. 믹서로 간편하게 갈면 될 것을 쓰지 않던 강판을 꺼내 토마토를 갈았다. 다시 볼 날이 아득해진 속내를 강판으로 감추었다. 식탁 앞에 앉은 아들을 바라보며 강판위의 손도 자꾸만 느려졌다. 내 자식을 떠나보내고 나서야 풀매를 잡던 엄마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다. 그때의 엄마도 나처럼 잡고 싶었던 속내를 대신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짜증을 부렸던 한나절의 시간들이 죄송함으로 아릿하게 가슴을 저민다.

엄마 치마폭에 배여 있던 솔향기 함께 풀매 돌아가는 소리 들린다. 입 안에 번지는 잣의 향기로 온몸이 알싸해진다. 이 모든 것들은 아랫돌처럼 가끔 궤도를 벗어나려던 나를 제자리에 당겨 놓는다.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준다. 삶이란 소소한 기억의 편린들로 잘 맞추어 나가는 퍼즐 같은 것인가 보다. 미열에 들 뜬 어린아이의 숨소리며, 푸새된 모시옷이며, 장구처럼 팽팽하게 당겨졌던 창호지문이며, 찹쌀전병위의 진달래가 평면을 채운다. 둥글거나 모난 기억의 조각들이 함께 어우러져 빈틈을 메워 놓는다.

가만히 나만의 풀매를 돌려본다. 아직 못다 채운 여백이 고운 풀물에 젖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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