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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인생시계 / 김제숙

부흐고비 2020. 2. 9. 18:20

인생시계 / 김제숙
제24회 신라문학대상


인터넷 주문으로 책을 샀더니 인생시계라는 것이 선물로 함께 왔다. 사람의 일생을 팔십 년으로 가정하여 하루 스물 네 시간으로 나눈 것이었다. 스프링으로 마무리한 수첩 모양인데 일 년에 한 장씩 넘기에 되어있다. 내 인생시계는 몇 시일까? 여러 장을 넘기고서야 지금 내 시간에 닿을 수 있었다. 남아있는 것보다 넘긴 장 수가 더 많다. 어린아이였을 때, 아버지가 특별한 날에만 사주시던 양과자를 조금씩 아껴 먹었던 것처럼 이제 남은 시간을 아껴써야 할 세월 위에 서게 되었다.

숨 가쁘게 달음질 하듯 걷던 시간의 길에서 내려온다. 내려와서 오래 전에 장이 넘어가버린 시간으로 거슬러 간다. 갑자기 가슴이 서늘해진다. 이미 살아버린 날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슬픔, 회한 같은 감정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시간의 앞부분은 유년 시절이다. 인생의 새벽이고 봄이다. 한 알의 씨앗이 세상에 심겨져 바야흐로 뿌리를 내리는 시간이다. 그 씨앗은 미지의 세계이기도 하다. 또한 스스로 품고 있는 가능성으로 성장하리라는 확실한 세계이기도 하다. 바로 앞에 놓인 시간들을 살아내느라 흘러간 날들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행여 놓칠세라 단단히 잡고 있던 시간의 줄을 놓자 마음은 기다렸다는 듯이 한걸음에 그 시절로 달려간다. 넓은 마당 한쪽에 우물이 있고 옆에는 가지가 휘어질 듯 감을 매달고 있는 감나무가 있던 집, 그 집으로 가면 북적이는 대가족이 보인다. 삼십 대의 젊고 순수한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에 눈이 부시다. 어찌된 일인지 나이가 들수록 오래된 기억이 더 선명하다. 바로 엊그제 일인 양 손에 잡힐 듯하다. 어린 계집아이는 그 유년의 뜰에 서서 아른거리는 봄의 숨결에 몸을 맡긴다. 시간은 그렇게 열려서 느릿느릿 흘러갔다.

여명이 지나자 아침이 왔다. 비로소 세상의 움직임이 조금씩 보였다. 뿌리를 땅 속으로 내린 나무는 가지를 뻗으며 왕성하게 자라났다. 대가족의 삶은 이미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다. 나풀거리던 단발머리는 긴 생머리였다가 파마머리로 바뀌었다. 인생시계는 다시 몇 장이 더 넘어가서 나는 이미 여름에 당도했고 한낮의 햇살이 머리 위로 쏟아졌다. 사랑은 모험일까? 오래 사귀었던 남자는 반듯하긴 했지만 건강이 좋지 못하였다. 그것이 어둠이 되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어느 날, 헤어지면서 편지를 내밀었다. 집에 와서 펴 보니 내용은 단 두 줄 뿐. '졸업을 할 때까지 기다려 줘. 등나무 아래에서 책을 읽으며 살 수 있도록 해줄게.' 살아서 졸업이나 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젊음을 믿고 모험을 했다.

해가 뜨면 어둠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시간은 충분했다. 부모님이 떠난 자리에 내 몸을 통해 다시 두 생명이 내게로 왔다. 그러는 동안 남편은 한 번 힘차게 뛰어보지도 못하고 청춘을 보냈다.

가을로 들어서자 태양은 정점에서 이울기 시작했지만 후회는 없었다. 인생시계는 제법 빠른 속도로 넘어가는 듯 느껴졌다. 남편은 교사의 삶을 접고 자리를 바꿔 앉기로 결정했다. 인생은 모험일까? 사람들은 좋은 직업을 그만 두고 왜 그렇게 어려운 길을 가느냐고 물었다. 나 역시도 끝이 보이는 안정된 길을 버리고 낯선 길을 선택한 것에 대한 두려움은 잇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을 애써 눌렀다. 사람은 누구나 사명을 품고 이 세상으로 온다. 사람마다 마땅히 해야 할 몫의 삶이 있는 것이다. 남편도 지금 그 사명을 다하고 있을 터이다. 명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는 곧은 길을 가고 싶어 했다.

태양은 어느새 어깨 위에 얹혀 있다. 이제 바람도, 햇빛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인생시계는 오후 네 시를 지나고 있다. 무모하게 날을 세우지도 않고, 너무 앞서지도 않고, 체념하여 지레 문을 닫아걸지도 않는 시간이다. 나는 이 시간이 좋다. 청명한 오전에는 많은 것을 계획하고 꿈을 꿀 수가 있다. 한낮의 정열은 그 청사진을 가슴에 품고 마음껏 뛸 수 있게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후가 되면 지금까지 해온 일을 서서히 마무리한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은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도 한다. 나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중년의 다리를 건너면서 지난 몇 해 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신체적인 변화야 자연의 섭리니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친한 친구를 암으로 먼저 떠나 보냈고, 새 일을 시작한 남편이 다른 토양에서 뿌리를 내리느라 심한 몸살을 하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빠듯한 봉급으로 생활하느라 서울의 사립대학을 다니던 아들의 학비와 생활비 마련에 몇 년간 속을 태웠다. 그 모든 것을 이겨냈다고 생각할 즈음 복병처럼 숨어있던 의욕상실에 덜미를 잡혔다. 매사가 시들하고 눕고만 싶었다. 몸은 끝도 없이 밑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내 인생의 시계는 여기에서 그만 멈추고 마는가 싶어서 절망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랜 친구를 만났다. 이런저런 대화를 하는 중에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세상에는 봄에 피는 꽃도 있고 여름에 피는 꽃도 있다. 자연만물이 풍성한 가을에 피는 꽃도 있고 겨울 푹풍한설을 뚫고 한두 송이 홀로 피는 꽃도 있는 것이라고.

이 말을 듣는 순간 가슴에 환한 불이 켜졌다. 그렇다. 출발에 늦은 시간이란 없다. 이 단순한 명제를 붙들고 나는 용기를 냈다. 청춘과 열정은 가고 없지만 지혜와 연륜은 그동안 내가 일궈온 재산이 아니던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게는 등불을 켜서 걸어 둘 나무가 있지 않은가.

과실수는 열매를 거두고 나면 가지치기를 해서 불필요한 잔가지들을 잘라낸다. 그래야만 튼튼하게 자라서 다음 해에 더 많은 열매를 맺는다. 나의 삶도 나무와 다를 바 없다. 두 아이를 낳아 길러 세상에 내보냈으니 이제 잔가지들을 정리해야 마땅했다. 생명의 봄을 위해 몸피를 줄이는 나무처럼 밖으로 향한 분주한 삶을 차례로 거둬들였다. 그러자 오롯이 내 앞에 주어지는 얼마간의 시간이 있었다. 아무도 모르게 갈무리 해두었던 마음속의 보자기를 풀자 수많은 조각들이 머뭇거리며 얼굴을 내밀었다. 그것은 빛바랜 사진처럼 남루하였지만 풍상을 견뎌온 삶의 흔적들이었다. 나는 서툰 솜씨지만 남은 시간동안 띄엄띄엄 그것을 맞춰나갈 생각이다. 절반 이상을 살아버린 인생은 좀 더 빠른 속도로 세월을 건너는 것 같다. 하루 동안 수많은 일들이 파도처럼 내 무릎 앞으로 다가왔다가 어깨 너머로 사라진다. 살아가는 것은 한정된 시간을 쓰는 것이다. 하루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네 시가 지나면 다섯 시가 온다. 나는 지금 완숙의 가을을 걷고 있다. 뒤에는 봉인된 겨울이 기다리고 있다. 내가 모르는 시간이다. 그러나 내가 살아가야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남은 시간들을 나는 어떻게 써야 할까? 때로 폭풍우 때문에 몸을 낮추기도 하고, 때로 향기로운 바람과 눈부신 햇살 속에 서기도 할 것이다.

고통은 무릎을 꿇게 만들지만 때로 더 큰 힘으로 두 발로 우뚝 서게도 한다. 그러나 환희의 순간이나, 고통의 시간도 주어지는 대로 충실하게 보낼 일이다. 어느 시인은 '내게 오는 건 다 축복이었다'고 고백했다. 그 고백은 오후 시간을 살아가는 나에게도 유효하다.

선물로 따라온 작은 인생시계 덕분에 이미 살아버린 시간 속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돌이켜 생각하니 어느 한 순간도 소중하지 않은 시간이 없었다. 오늘 하루를 사는 것이 바로 일생을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이 바로 내 생애의 황금시간이다. 시간 여행을 통해 얻은 값진 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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