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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잃어버린 물건들 / 이어령

부흐고비 2020. 2. 24. 11:17

잃어버린 물건들 / 이어령
- 낚시질 놀이에서 얻은 외짝 장화의 의미


거리를 지나가다 이따금 이삿짐을 나르는 광경을 보면 슬픈 생각이 든다. 거리를 누비고 지나가는 가구들의 인상은 생활에 시달린 늙은 아버지의 얼굴 같다. 아무리 부잣집 이삿짐이라 하더라도 거기에는 피로한 생이 묻어 있다. 공허하게 빛나는 장롱의 거울이라든가 칠이 벗겨진 상다리라든가, 색종이로 바른 궤짝과 자질구레한 생활 용품들, 그것들은 왜 그렇게 초라해 보이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들이 사랑해야 할 생활인 것이다.

이상스럽게도 가구는 낡아갈수록 사람을 닮아간다. 사물은 뜻이 없는 물질이지만 사람과 함께 오랫동안 살면서 손때가 묻게 되면 생명감을 풍기게 된다. 가구상이나 잡화상에 진열된 주인 없는 물건들은 비정적이다. 그것들은 죽은 물체에 지나지 않는다. 물질이 지니고있는 생소한 감각에서 우리는 사물 그 자체를 본다.

그러나 인간의 체취가 밴 물건들은 물질세계의 얼어붙은 정적으로부터 조금씩 빠져나오게 된다. 고물상의 의자는 물체가 아니라 늙은 창녀의 추억과 같은 것이며, 쓰레기터에 내던져진 부서진 완구는 방황하는 미아의 모습이다. 그것들은 결코 우리와 무관할 수 없다. 사물은 침묵하는 언어며 우리들 생의 한 부분이다. 고물들은 버려지지만 살아 있다. 퇴색해갈수록 살아 있다. 신흥도시의 빌딩가보다도 1천여 년 전 페허의 유적지에서는 하나의 돌, 하나의 기왓장에도 피가 흐르고 있다. 단순한 감정이입만은 아닐 것이다.

혼자 심심하면 이따금 나는 낚시질을 했다. 강가에 가서 고기를 잡는 그런낚시질이 아니다. 그것은 참으로 기이한 놀이였다. 긴 대나무 끝에 철사를 구부려서 장롱 밑과 가구와 가구의 틈바귀, 그리고 마루청 밑에 버려진 물건들을 끌어내는 일이다. 말하자면 일어버린 물건, 모르는 사이에 우리생활 속에서 아주 잠적해버린 그 사물을 낚시질하는 장난이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장롱 밑으로 연필이 굴러 들어갔기 때문에 그것을 꺼내려고 한 일이었다. 그러다가 연필만이 아니라 잃어버렸던 물건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아낸 것이다. 사람의 눈이나 손이 미치지 않는 구석진 곳엔 언제나 어둠과 먼지가 깔려있었다. 좁지만 그 망각의 지대를 탐색한다는 것은 정말 재미가 있었다. 나에게 있어서 그것은'솔로몬의 동굴'과 같은 것이었다.

얼굴을 방바닥에 깔고 가구가 놓인 밑바닥 같은 데를 들여다본다. 처음엔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시간이 좀 흐르면 어둠 속에 눈이 익어 어렴풋이 무엇인가 사물의 윤곽들이 떠오른다. 그러나 대나무로 그것을 끄집어내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너무 힘을 주면 그것들은 더 깊숙이 안으로 굴러 들어가게 된다. 호흡을 죽이고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당겨야 한다.

물건과 대나무가 부딪치는 촉감과 매캐한 먼지냄새, 그리고 곰팡내 같은 것이 나의 상상력을 자극시켰다. 먼지와 어둠에서 졸고 있던 물건이 이윽고 밝음 속으로 나와 그 정체를 드러낼 때 기쁨은 절정에 달한다. 물론 보석 같은 것은 아니다. 내 솔로문의 동굴에서 찾아낸 물건들은 사이다 병마개나 단추나 안약 병이나 녹슨 호루라기 그리고 언젠가 잃어버렸던 셀룰로이드 삼각자 , 지우개, 연필토막, 나뭇조각같은 것들이다. 그래도 내 마음은 언제난 흡족했다. 대체 이것들은 어떻게 하다 이 속으로 숨어버리게 되었을 까? 그 중에서도 아주 낯익은 것들 그리고 찾고 있었던 물건들이 나오게 되면 , 나는 가벼운 흥분에 취해서 소리치기도 했다. "아! 이게 여기 있었구나".그리고 먼지도 털지 않고 그것들을 가슴에 꼭 껴안는다.

사방탁자 밑에서 찢어진 만화책을 발견해냈을 때에도, 그리고 사랑방 약장 밑에서 소리나는 생철 팽이를 꺼냈을 때에도 모두 그러했다. 그러나 대개는 보잘것없는 물건들일 경우가 더 많았다. 용도를 상실한 쓸모 없는 폐품들만 있었다. 생활에서 떨어져나간 운석들이다. 깨지고 마멸하고 껍데기만 남아 있는 물건들이었으나 그래도 나는 실망하는 적이 없었다. 하나도 버리지 않고 커다란 상자에 주워 담아서 온종일 물로 씻어내기도 하고 종이로 붙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일 때문에 집안 식구 사이에 작은 논쟁이 벌어졌다.

누님은 방안을 늘어놓고 먼지를 피우는 그 장난에 반대였다. 그러나 형들은 물건을 아끼고 폐품을 이용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는 것이다. 어머니는 중립을 지키셨다. 내가 닭띠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씀이시다. 닭은 흙을 헤적여서 먹이를 찾아내는 습성이 있는데, 내가 하는 일이 꼭 그와 닮아는 데가 있다고 생각하신 모양이다.

쓸데없이 방구석을 뒤져 어지럽게 만든 것을 어머니도 좋아하지는 않으셨다. 다만 무엇을 찾고 얻으려는 마음씨만은 길러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눈치였다. 나는 내 의견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는 없었지만, 무언가 좀 다른 이유를 들어 내 '낚시질'을 설명해보려고 애썼다. 방을 어지럽히기 위한 심술도 아니었고 또 그렇다고 무엇을 뒤져 내여 폐품을 이용하려고 하는 소유욕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사물 그 자체에 대한 흥미였을 것이다. 사라지고 있는 것, 녹슬고 있는 것, 깨지고 마멸해 가고 있다는 것, 그런 것에 대한 무의식적인 애정이었을지 모른다. 구질구질한 생활을 사랑하는 의지였던가? 버려진 사물에는 버려진 생활이 있다. 잃어버린 생활을 아쉬워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기도 하다.

그 날도 나는 '낚시질'을 하고 있었다. 가장 어둡고 지저분한 마루밑을 탐색하는 일이었다. 마루청에 배를 깔고 머리를 숙여 마루 밑을 들여다보면서 물건을 끄집어내야 했기 때문에 유난히 힘이 들었다.

마루 밑은 깜깜했다 .어디서 흘러 들어오는 광선이었는지 한 줄기 가느다란 햇살이 어둠 속을 찌르고 있었다. 그 때 나는 가느다란 그 광선 줄기가 머무는 곳에 '빨간 것'이 빛나는 것을 보았다. 긴 대나무가 닿을락말락한 곳이었다. 대청마루 끝에 박쥐처럼 매달려서 허리까지 뻗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빨간 물체를 끌어내는 데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거꾸로 매달려서 손을 놀리고 있었기 때문에 현기증이 났다. 더구나 그것은 무거운 편이어서 앞으로 쉽게 당겨지지 않았다. 참을성이 있어야 만 했다. 그렇게 해서 꺼낸 물건은 빨간 고무 장화 한 짝이었다. 나는 그 고무 장화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것은 소학교에 입학하였을 때 선물로 받은 장화였다. 비가 오지 않는 날에도 나는 그 고무 장화를 신고 돌아다녔다. 고무가 구겨지는 가벼운 장화 소리가 좋았다.

"아! 내 장화" 가슴이 미어지듯이 반가웠다. 나는 그 장화 한 짝을 잃어버리고 돌아왔던 그 날 일을 생각하면서 소리쳤다. 도랑물에서 놀고 있었을 때 한 짝 장화가 벗겨진 것이다. 곧 잡으려고 했지만 그것은 아래로 자꾸 내려갔던 것이다. 결국은 나까지 물에 빠지고 말았다. 한 짝 장화만 신고 집으로 돌아올 때의 그 안타깝던 마음에는 흙탕물이 넘치고 있었다.

"아! 내 장화!" 나는 우물터에 가서 깨끗이 씻었다. 색깔도 바래 있었고 고무도 이제는 다 삭아버렸다. 미키마우스의 얼굴도 그 윤곽만이 어렴풋했다. 그것을 신어보았다. 이미 내 발에 맞지도 않는 것이다. 발이 큰 것이다. 그것을 신고 도랑물에서 물탕을 치며 놀던 그 아이는 이제 아무 데서도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이었다. 외짝장화처럼 시간의 흐름 속에서 그 아이는 떠내려가고 말았다. 그러나 한 짝 장화는 여기 이렇게 남아 있지 않는가?

시간은 이 사물(장화)가운데 멈춰져 있었다. 흘러 가버리는 것이 아니라 시간은 괴어 삭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역사다. 역사는 사물 같은 데서 숨쉬고 우리를 향수에 젖게 한다. 인간은 사물과 함께 살고 있지만 사물은 훨씬더 많은 생활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까닭이다. 무엇 때문에 나는 그 외짝 장화를 보고 그렇게 좋아했는지? 나는 지금 어른의 안목으로 그때의 일을 설명하고 있지만 아마 그보다도 훨씬 순수한 감정이었는지 모른다.

낡은 장화를 들고 들어왔을 때 집안 식구들은 모두 놀라서 소리치는 것이었다. 그때만은 누구도 내 편이 되어주지 않았다. 폐물을 이용하는 것은 훌륭한 일이라고 역설하는 형들도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세상에... 그게 무슨 짓이냐. 나중엔 별걸 다 들고 들어오는구나"

나는 완전히 고립되어 있었지만 버리고 오라는 그 말에 양보하지 않고 상자에 진열해 놓았다. "엿장수한테 팔려고 그러니?" "아니..." "그럼 무엇에다 쓰려고 그러니?" "몰라, 아무것에도 쓰지 않아" 무슨 말에도 신통한 대답을 하지 않으니까 저놈은 다음에 고물 장수를 할거라고 누나는 약을 올리는 것이다.

나는 정말 엿 사먹을 생각 때문에 그것을 가지고 들어온 것은 아니었다. 쓸모없는 장화였지만 그냥 갖고 싶었다. 짝 잃은 장화를 한쪽에만 신고 돌아오던 그날처럼 그냥 버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어두운 그늘 속에서 퇴색하고 있는 물건들은 ...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먼지처럼 묻어있는 매캐한 그 냄새는 ..그리고 무엇이었을까? 낡은 사진첩에서 먼 옛날 죽어버린 사람들의 얼굴을 찾아냈을 때 같은 그 서글픈 놀라움은 ..아 !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수챗구멍과 같이 역겹고, 폐가처럼 적적하고, 시효 넘은 증서와도 같고, 헤어진 모닝코트자락에서 떨어진 나프탈렌 같고, 추녀 밑에서 녹슬어 가는 풍경 같고, 삭아서 끊어진 구두끈 같고, 입김이 새어버리는 낡은 호루라기 소리 같은 그것은 대체 무엇이었을 까? 사라져 버리는 사물들에의 감각은, 페품의 퇴적 같은 생활은, 그 애수는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낚시질놀이'를 언제부터 그만두었는지, 그리고 그 외짝 고무 장화가 그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지금 나는 기억할 수가 없다. 거리를 지나가다 이삿짐을 끌고 가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으레 나는 그 삭아버린 빨간 고무장화를 생각한다. 온통 그 짐들이 외짝 장화들로 쌓여있는 것이라는 착각이 든다. 아니 고물상자, 푸른 '로이드' 안약병과, '삿뽀로'맥주 병마개와, 찌그러진 단추, 녹슨 치차(齒車), 샐룰로이드 비눗갑, 부러진 칫솔, 폐품으로 가득 찬 고물 상자를 생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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