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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밤비 오는 소리 / 이태동

부흐고비 2020. 3. 9. 08:03

밤비 오는 소리 / 이태동1


대부분의 사람들은 듣지 못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에는 침묵으로 말을 하거나 내면으로 스며드는 아름다운 노래가 있다. 그래서 베토벤과 브람스 같은 천재적인 음악가들은 자연의 비밀스런 소리에 남다른 귀를 가지고 오늘날 우리들이 듣는 훌륭한 음악을 작곡한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이 자연으로부터 쉽게 들을 수 있는 소리 역시 얼마나 아름답고 경이로운가. 강물 위를 나는 철새 떼의 울음소리, 오월의 푸른 벌판을 달리는 맑은 시냇물 소리가 아니라도 좋다. 초여름 무논에서 들려오는 개구리 울음소리와 깊어가는 가을밤 별빛 아래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는 얼마나 유머러스하고 구슬픈가.

어찌 이것뿐이랴. 햇빛 찬란한 봄 언덕위에서 들려오는 송아지의 울음소리와 한적한 시골집 담장 위에서 대낮의 정적을 깨뜨리며 홰를 치고 우는 수닭의 울음소리는 상실된 ‘유년의 뜰’을 생각하게 할 만큼 우리의 가슴에 깊고도 긴 여운을 남긴다. 또 한여름 밤, 폭우를 대지 위에 쏟아 부으면서 울리는 천둥소리는 얼마나 시원하면서도 무서운가. 마치 산이 먹구름 뒤에서 공을 굴리듯 대낮처럼 밝은 번갯불과 함께 무섭게 부서지면서 들리는 천둥소리는 사람의 마음에 거미줄처럼 엮인 뇌의 쇠사슬을 한순간에 끊어버리는 듯한 느낌을 준다.

소나기가 쏟아지는 날이면, 두려워하면서도 천둥소리를 얼마나 듣고 싶어 했던가. 천둥소리는 가까이 들리는 듯하지만, 그것은 어느새 저 멀리 산 너머로 굴러가서 구름 뒤에서 지축을 울리듯이 떨어지며 무섭게 깨어진다. 그러나 그 소리는 구성지면서도 또한 시원하다. 여름의 자연이 연주하는 교향악의 심벌즈 소리와도 같다.

그렇지만 자연 가운데는? 우리가 귀 기울이지 않으면 듣지 못하고 묻혀버리거나 사라져버리는 또 다른 아름다운 소리가 있다. 그것 가운데 하나는 밤비 오는 소리다. 그것은 귀 기울이지 않으면 쉽게 들리지 않는 소리다. 밤비 소리가 감미롭게 들리는 것은 쉽게 접할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비 오는 소리는 보통 한밤중이나 새벽과 같이 정적의 시간이 아니면 그것이 지닌 아름다운 여운을 접할 수 없다. 대낮의 빗소리는 소낙비가 아니면 쉽게 들을 수가 없다. 장대비가 나뭇잎에 떨어지는 소리는 우리들의 마음을 더없이 시원하게 한다. 그러나 그것은 하늘 끝까지 쌓인 소음 때문에 어두운 밤에 들리는 소낙비 소리와는 다르다. 낙숫물 소리와 마찬가지다. 구름이 낮게 끼어 있는 대낮에의 낙숫물 소리는 청승맞고 구슬프지만, 밤에 들리는 빗소리는 현악기에서 조용히 들려오는 낮은음자리 소리만큼이나 우아하다.

봄밤에 흐르는 빗소리를 들어보라. 그것은 이 세상에서 들을 수 있는 그 어느 소리보다 깊고 부드럽다. 가는 빗소리는 가는 대로, 굵은 빗소리는 굵은 대로, 각각 독특한 아름다운 소리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나는 봄밤에 비가 내리면, 잠이 들었다가도 깨어 창밖에서 빗물 흐르는 소리에 귀 기울이기를 좋아한다. 모든 것이 잠든 고요한 밤에 혼자 깨어 문 밖에서 들리는 듯한 빗소리를 들으면 문득 기차를 타고 멀리 떠나와서 어느 종착역에 도착한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갑자기 지붕 위와 뜨락에 쏟아지는 빗소리는 사원의 종탑에서 쏟아지는 은빛 종소리만큼이나 순수해서 두려움과 경이감마저 느끼게 된다. 그래서 나는 밤비 오는 소리를 들을 때면, 그것과 함께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서, 내가 본의 아니게 지은 잘못을 생각하고 그것에 대해 반성하는 마음을 갖는다.

그러나 밤에 쏟아지는 소낙비 소리는 오랫동안 들을 수 없다. 소낙비란 잠깐 동안 무섭게 내리고 마는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후회와 반성의 시름에서 오는 자신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곧 잠이 들고 말기 때문이다.

한밤중이나 새벽녘에 잠을 깨우면서 시원하게 쏟아져 내리는 소낙비 소리도 좋지만, 어둠을 타고 천천히 내리는 빗소리 또한 이에 못지않게 아름다운 음악이다. 조용히 흐르는 밤비소리는 밤중에 문득 잠에서 개어난 사람만이 들을 수 있다. 그것은 잠을 깨워놓고는 사라졌다가, 우리가 조용히 귀 기울이면 다시 돌아오는 듯이 들린다. 마음이 어지러운 사람에게는 그 아름다운 선율이 들리지 않지만, 밤에 잠을 자다가 눈을 뜨고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고 반성하거나 후회하는 사람에게는 조용히 흐르는 미사곡처럼 들린다. 어떻게 들으면 그것은 비둘기 깃털만큼이나 부드럽고 , 산 그림자를 지우며 어디론가 넘어가는 학의 날개깃만큼이나 긴 여운을 지니고 있어서, 대낮에 상처 입은 마음을 위로하고 달래준다.

이렇게 밤늦게 듣는 빗소리는 그 어떤 소리보다 짙은 향수를 느끼게 한다. 나는 빗소리가 들리는 밤이면 가끔 일어나서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서 기억의 땅을 배회하곤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내가 가졌던 가장 행복했던 일들과 가장 슬펐던 일들을 재현해 본다.

향수를 실어다주는 밤비 오는 소리는 누가 들어도 비가(悲歌)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감상의 물결로 흐르지 않고 조곡(組曲)처럼 절제된 음악 속에 우리의 마음을 씻게 하고 ‘마르셀 프로스트가 말한 최초의 행복’을 영원히 재현시키려는 욕망을 일으킨다. 그래서 나는 밤비 내리는 소리를 들으면 즉물적으로 슬픔을 느끼지만, 슬픔이라는 그 순수한 마음을 통해서 잃어버렸던 ‘최초의 행복’을 다시 찾는다. 이때 내가 순간적으로 가졌던 밝고 투명한 마음속에서 발견한 순수한 행복이 시인들이 말하는 유토피아가 아닐까.

그러나 밤비 소리를 듣기란 그렇게 쉽지 않다. 1년을 두고 말해도 밤에 비가 오는 소리를 듣는 경우는 몇 번 되지 않는다. 구름이 산마루에서 내려오는 장마 때도 한밤중이나 새벽녘에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면 밤비 소리를 듣지 못한다. 영겁으로 흐르는 시간이지만, 최초의 원시적인 행복을 생각나게 하고 또 그것을 마음속에서나마 꾸밈없이 재현시켜 볼 수 있게 한 순간이 우리들의 삶 가운데서 몇 번이나 될까.

나는 비가 내리면, 빗물 소리에 귀 기울이고 싶어서 잠을 이루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러나 잠이 들지 않는 상태에서 듣는 빗소리와 잠에서 문득 깨어나서 듣는 빗소리가 다르다는 것을 안다. 잠결에 듣는 빗소리가 다른 어느 소리보다도 아름답게 들리는 것은 잠이 마음에 묻은 헛된 욕망과 시름을 씻어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1. 이태동: 1959년 경북 청도 출생. 서강대학교 영문학 교수를 역임한 문학평론가. ‘한국현대시의 실체’, ‘한국문학의 현실과 이상’, 수필집 ‘밤비 오는 소리’ 등 많은 저서가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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