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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파랑새 / 공월천​

부흐고비 2020. 5. 18. 01:42

벽제에서 돌아온 남편의 눈자위가 부석부석했다. 밤새 마신 술 때문만은 아닌 듯했다. 그 눈 쌓인 밤에, 신고 갔던 구두 대신 납작한 플라스틱 슬리퍼가 겨우 발에 걸려 있었다. 거기가 어디라고 예까지 저러고 왔을까 싶어서 ‘구두는 어쩌구요?’ 하는 물음이 입술 끝에까지 달려 나와 대롱거렸지만 애써 삼켰다.

눈동자 속에 일렁이는 것이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술기운 탓인지 그를 보낸 아쉬움 때문인지를 살피느라 숨을 죽인 내게 남편은 잔뜩 쉰 소리로 입을 열었다.

“없어져 버리더만. 산처럼 컸던 덩치가 겨우 네 조각 뼈로 남드구먼. 그것조차도 두루룩 갈아 버리니 삶이 한 줌 먼지더군.”

마음 아프게 무얼 그것까지 다 지켜보았느냐는 내 질책에 힐끗 쳐다보는 것으로 남편은 대답을 대신했다.

그의 부음(訃音)을 전해 들었을 그때의 상황은 조금 묘했다. 음력 정월 초하루였고, 그가 그토록 원하던 이사(理事)로 진급한 지 일주일이 되는 날이었고, 남편이 직장에서 본의 아니게 명예퇴직을 하여 백수 신세가 된 지 육 개월이 되는 날이었다. 그날 벽제 화장장(火葬場)에서 그는 육신이 타서 먼지가 되고 남편은 백수인 자기 설움에 마음이 타서 먼지가 된 듯했다.

남편이 제대(除隊)한 복학생이어서 나이가 다소 위이긴 했지만 그와는 각별한 친구 사이였다. 대포 한잔에 리포트도 대신 써 주고 시험 답안지도 슬쩍슬쩍 보여 주던 은인이었다고 하면 얼른 이해가 될는지.

“당신 덕택에 나 대학 졸업했지.” 그를 보면 남편이 늘 하는 말이었다.

직장과 학업을 병행해야 했던 남편은 그의 의리를 고마워했다. 덕분에 배불뚝이 임부의 몸으로 그와 또 다른 친구들에게까지 밥상을 차려 대느라 내 신상이 좀 괴롭기는 했었다.

“젓갈 속에 덜 삭은 생멸치 한 마리 꺼내 쭈욱 찢어 쌀밥 위에 얹어 먹던 맛이란 환상 그 자체였지요.” 그는 수년이 흐른 뒤에도 배고프던 시절 형수가 차려 주던 밥상 운운하며 입맛을 쩝쩝 다시고는 그때를 들먹이곤 했다. 그는 그리고 남편의 대학 동기들은 나를 형수라고 불렀다.

어쩌다 지방으로 출장을 오는 날 저녁이면 그의 쉰 듯한 걸걸하고 유쾌한 목소리가 우리 집 안에 가득 넘쳐났었다. 그런 때마다 그의 지칠 줄 모르는 무용담과 걸쭉한 입담 때문에 우리는 덩달아 유쾌해져서 날이 새는 줄을 몰랐다.

“형수, 어디엔가 파랑새는 있을 겁니다. 내 손으로 파랑새를 꼭 잡고 말 거요.”

술이 거나해지면 그는 산홋빛 부리에 코발트색 깃털이 곱게 달린 파랑새가 마치 눈앞에라도 있는 듯 두 손으로 소중하게 잡는 시늉을 하며 호방하게 껄껄 웃었다. 그러나 마치 날개옷을 잃어버린 천사인 양 아이 둘을 키우며 그럭저럭 늙어 가는 나로서는 파랑새의 존재를 부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꿈을 잃어버린 시시한 아낙으로 전락한 내게 어느 곳에도 파랑새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았다.

열일곱 살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세상을 떠나 버린 부모를 대신하여 동생 셋을 맡은 가장이 되었을 때의 일도, 차마 고아원에 보내지 못해 갖은 고생을 하며 동생들을 공부시킨 일들을 이야기할 때도 그의 목소리는 언제나 밝았다. 대학 때 정치하는 교수를 따라다니며 오로지 떠벌리는 입심과 뻔뻔한 배짱으로 학비를 면제받아 졸업장을 딴 것을 만담(漫談)처럼 늘어놓으면서도 전혀 비굴해하지도 않았다. 지방 대학 출신으로 대기업의 간부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을 말할 때도 그건 하늘의 별 따긴데 내가 별을 땄으니 키가 크긴 크다고 너스레를 떠는 그 속에 위트와 해학이 있었다.

그러나 나도 한번 본 적이 있는 첫사랑인 그녀의 말만 나오면 그의 호흡은 예외 없이 빨라졌다. 결혼식 날 신부가, 대학 4년을 젓가락 한 쌍처럼 붙어 다니던 그녀가 아니라는 사실에 우리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후일 내가 “그때 왜 그랬나요?” 하고 물었을 때 그의 대답은 “너무 사랑해서요.”였다.

“집도 절도 없는 가난뱅이인 나한테 오면 고생이지요. 좋은 가정에서 자란 여잔데 나보다 좋은 사람 만나라고 등 떠밀었지요.” 하며 씨익 웃는 그의 깊은 속을 그제야 헤아리고 마음이 아팠었다. 그의 결혼식 소식에 충격을 받은 그녀는 군대에 지원을 했고 그 후 여군 장교로 근무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나는 그의 수다가 상처를 이겨내는 세련된 방법이었음을, 그의 호방한 웃음소리가 통곡을 대신했다는 것을, 벽제로 가기 전 그해 가을에서야 알았다. 그리고 우리나라 굴지의 대기업의 임원이었던 그가 편하고 멋진 호텔 같은 숙소를 마다하고 굳이 좁고 초라한 우리 집에 묵기를 좋아했던 이유도 나름대로 해석이 되었다.

그날도 이곳으로 출장을 온 그가 조금은 늦은 저녁상을 앞에 두고 한 번도 밖으로 꺼내 보이지 않던 아내 이야기를 시작으로 삶의 고단함을 털어놓았다. 그를 안 지 이십 수년 만에 처음으로 본 어두운 얼굴이었고 눈물이었다. 직원들 가정사의 애로점이나 혹은 어려움을 당한 지인들의 일상사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심성 탓에 늘 분주하게 밖으로 나도는 남편을 아내는 전혀 이해하지를 못했다. 어렵게 자란 탓에 남을 도와주기를 좋아해서 늘 비어 있는 주머니 또한 그의 아내가 못 견뎌 하는 한 부분이었다. 직책에 견주어 내려지는 과중한 업무와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감당하기 힘들어 몸에 이상이 온 지도 꽤 오래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저런 이유로 아내와 별거한 지가 10년이 넘었다며 쓸쓸해했다. 나는 보이는 것밖에 볼 줄 몰랐던 나의 우둔함에 할 말을 잃었다.

“나는 그저 된장 끓이는 냄새가 솔솔 나는 아침, 그 냄새와 달그락거리는 그릇 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고 싶었을 뿐인데, 그게 너무 큰 욕심이었나요? 지금껏 참 신세 많이 졌소. 형수.”

그날, 그는 내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일찍 부모를 여읜 그에게 우리 집이 늘 고향 같았다는 말도 함께였다. 생전 안 하던 소리들을 하기에 마음이 몹시 거북하고 울적했는데 어쩌면 그는 멀지 않은 죽음을 그때 예감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인은 심근경색과 무호흡증 때문이래. 화장터에 박 중령도 왔더구먼. 소리 없이 눈물만 쏟더라. 얼마나 하염없이 우는지… 그놈의 눈이 내려서 그런가? 돌아오는 길은 왜 그리 화사하기만 하던지. 내 참!”

한참 후 남편은 쓸데없이 그의 첫사랑이었던 그녀의 말을 꺼냈지만 나는 내내 파랑새 생각만 났다. 그가 평생 잡고 싶어 목숨까지 걸고 안달을 했던 파랑새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늘 옆에 있었지만 눈에 보이지 않았던, 그래서 놓쳐 버린 형체도 없는 꿈은 아니었을까?
​나는 그에게 묻고 싶다.

‘파랑새를 보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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