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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고향을 향한 마음 / 송건호

부흐고비 2020. 5. 11. 16:46

고향을 향한 마음 / 송건호1


젊어서는 고향을 등지는 것이 그들의 당연한 생활처럼 생각되고 있다. 학교를 나온 뒤 서울이나 지방 도시에서 하다못해 몇만 원 월급쟁이라도 해야만 고향 사람들의 칭찬의 대상이 되지 집에서 농사를 짓거나 마을 일을 돕는 것으로 그친다면 이러한 청년은 사회에서 낙오된 젊은이로 업신여김을 받기 일쑤다.

남자가 뜻을 세워 고향을 나온 이상 성공을 못 하고는 죽어도 귀향하지 않는다는 결심이 훌륭한 젊은이로 칭찬을 받는다. 그래서 많은 청년들이 장성하면 고향을 등지고 이른바 '성공'을 위해 노력한다.

물론 젊은이들의 이러한 '성공'에의 야망을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고 이러한 야심에 찬 젊은이가 많으면 많을수록 나라의 앞날이 양양해진다는 것도 긴 설명을 필요치 않는다. 그러나 내가 여기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아무리 야심 많은 사람이라도 고향에 대한 '향수'만은 결코 버리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큰 뜻을 품고 고향을 떠난 사람일수록 가슴 속에는 고향에 대한 끝없는 사랑이 불타오르고 있다. 수만 리 떨어진 먼 외국에 사는 사람일수록 오히려 고향에 대한 절절한 향수에 사로잡혀 있다. 이것이 '마음의 고향'이라고 할까.

살인강도와 같은 흉악범도 죄를 범하고 난 후에는 많은 경우 그가 어려서 자란 고향에서 잡히는 일이 많다. 일단 죄를 범하고 난 뒤에는 순간적인 격정에서 저지른 잘못을 크게 뉘우치고 마음이 약해져 자기도 모르게 어릴 적에 자란 고향 마을에 찾아갔다가 잡힌다는 것이다. 범인의 이러한 심리적 약점을 알고 있는 수사관들이 미리 그의 고향에 잠복했다가 잡는 것이다. 사람은 평소에는 별로 생각도 느끼지도 못하지만 누구나 고향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다. 어릴 적에 늘 만지작거리던 어머니의 젖꼭지와 자랄 때 아침저녁 대하던 고향 산천은 다 같이 '마음의 고향'으로서 우리의 가슴 속 깊이 숨어 있다. 내가 오늘 있는 것은 고향 산천의 힘이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고향 산천을 대해도 할 말이 없다--고향 산천은 고맙기만 하여라.

어느 시인이 부른 시 한 구절이다. 젊어서 고형을 뛰쳐나온 젊은이도 나이가 들면 으레 고향을 그리게 된다. 외국으로 왔다갔다하며 우리 풍습을 거의 잊은 사람도 50이 넘고 60이 되고 하면 점점 고향을 그리게 되고 입는 옷은 물론 취미도 한국적인 것에 심취한다.

일본에 사는 어느 우리 동포가 20대에 고향을 떠나 일본에서 자수 성가, 그 곳에서 뼈를 묻게 됐으나, 생전에 틈만 있으면 "춘향전"의 레코드를 틀어 놓고 고향 생각을 하며, 눈물지었다는 이야기를 그의 아들에게서 들은 일이 있다. 아들은 서울에 온 길에 "춘향전"에 관한 레코드를 모조리 구해다가 돌아간 선친의 영전에 바쳤다고 한다.

나는 지방색을 의식적으로 배척하고 반대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자기를 낳고 길러 준 고향 마을에 대해서는 좀더 관심을 보여야 옳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은 지방색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나이가 들수록 고향 마을에 대한 생각이 간절해지는 것이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경향이다. 누구나 성장한 뒤에는, 특히 고향을 떠나 사회나 나라의 지도적 위치에 선 사람이면, 고향에 무엇인가 뜻있는 일을 했으면 한다. 큰일이 아니라도 좋다.

크게 귀를 했거나 축재한 사람이라면 고향 마을을 위해 좀더 보람 있는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크게 보람 있는 일이 아니어도 좋다. 오히려 작은 일이라도 정성에 더 뜻이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자라고 한글과 산수를 깨우쳐 준 고향 모교인 국민 학교에 몇 권의 책을 기증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것이다. 한국 위인전, 동화집, 또는 학습에 도움이 되는 이것저것 책을 사서 고향의 모교에 보낼 수도 있다. 자라나는 고향의 후배들이 얼마나 좋아하고, 도움이 될 것인가. 사람은 누구나 연로하여지면 자기 반성을 하게 된다. 또 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출세'를 위해 또는 '축재'를 위해 편안한 날이 없었다.

그러나 연로할수록 사람들은 자기의 지난날을 회고하게 된다. 조그마한 일이나마 무엇인가 뜻있는 일을 하고자 생각한다. 뜻있는 일은 물론 수없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 중에 고향에 대한 무엇인가의 기여도 마지막 인생을 장식하는 좋은 일이 될 것이다.

  1. 송건호(1927~2001): 평론가. 충북 옥천 출생. 서울대 법대 졸업. 한국 일보, 경향신문, 조선일보, 동아일보의 논설위원과 경향신문. 동아일보의 편집국장을 역임. 저서에 "민족 지성의 탐구" "한국 민족주의의 탐구" 등이 있다. 역사적 안목의 비판이 실린 많은 평론. 에세이를 발표했으며 한국 지성의 현실과 문제를 일깨우는 인물로 지목되고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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