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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사라진 액자 / 신미경

부흐고비 2020. 11. 2. 12:32

버릇처럼 눈은 작은 창을 향한다. 그러다 이내 텔레비전으로 돌리고 만다. 더 이상 그 창을 그윽하게 볼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오전 11시 즈음 대부분의 전업주부들이 느낄 수 있는 한가한 시간이다. 난리법석 속에 아이들이 학교로 가고, 남편도 출근하고 설거지에 청소기까지 돌리고 나면 오전의 전쟁이 끝난다. 그제야 나른함이 물려오고 습관처럼 커피를 담아 들고 낮은 탁자 앞에 털썩 앉는다. 늘 보아왔던 작은 창밖의 세계, 나는 그곳을 어느 유명한 화가가 그린 명화보다 더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젠 사라져버린 그곳에 더 이상 눈을 둘 수가 없다.

‘노르웨이 숲’이라고 불렀던 그곳은 이제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 숲은 한낮에도 어둑해 보일 정도로 소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곳이기에, 마치 은밀한 비밀을 간직한 듯 음침해 보이기까지 했다. 내가 좋아하는 주방의 그 창은 소나무 숲을 담고 있는 하나의 액자였다. 내게는 창의 역할보다는 액자로 더 큰 의미를 가졌었다.

도시의 계절 변화는 여인의 옷차림으로 알 수 있다고들 하지만, 난 그 창을 통해서 보였다.

헐벗은 겨울 산이지만 다가올 봄의 향연을 위해, 땅 속의 무한한 생명력의 아우성과 부지런 떠는 소리까지 창을 통해 들려오는 듯했다. 봄은 분홍빛 진달래로 온 산을 물들이며 펼쳐지고, 짙푸른 녹음과 간간히 콧속을 간질이는 아카시아 향기로 여름은 오고 만산홍엽의 가을 산은 나를 창으로 다가가도록 만들었다. 어디 그 뿐인가. 어느 해 겨울 밤, 불 꺼진 거실에서 창을 보는 순간 탄성이 저절로 나왔다.

소나무 가지가 휘어질 정도로 소리 없이 내린 눈은 온 세상을 하얗게 바꾸어 놓았다. 그 흰 소나무 숲은 거실을 달빛처럼 밝게 비추었는데, 눈의 빛이 그렇게 환한지 처음 알았다. 눈이 귀한 삭막한 도시에 살다보니, 그 옛날 여름엔 반딧불 빛으로, 겨울엔 눈빛으로 공부했다는 ‘형설지공’이라는 사자성어가 과장이 아님을 알게 해준 밤이었다. 그렇게 사계절의 정취는 그 창에 담겨져 나의 뇌리 속에 심어 놓았다.

그런데 어느 해 봄, 개나리가 흐드러지게 피고 질 무렵, 하루하루를 무기력하게 보내는 날이 이어졌다. 내 마음속에 로맨티스트로 각인되어 있던 친정아버지와의 갑작스런 이별이 큰 슬픔으로 다가왔다. 언젠가는 겪어야 할 별리의 아픔이 내게 찾아왔을 때 생각보다 그 후유증은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창을 볼 만큼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그런 와중에도 간간이 들리는 기계톱 소음은 느끼고 있었지만 창에 눈길을 주는 것조차 귀찮았다. 그래도 정 잊기에는 세월이 약이라고 슬픔이 조금 가실 무렵, 창을 열고 밖의 풍경을 보다 망연자실하고 말았다.

그렇게 위안을 받던 그 소나무 숲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햇볕이 사정없이 내리쬐는 그늘 하나 없는 들판이 되어 있었다. 치마처럼 두르고 있던 소나무 숲이 없어지다니, 그 산은 물끄러미 쳐다보는 나에게 몸 둘 바를 몰라 하는 듯 했다.

산과 전원을 끼고 있는 아파트였기에 이사 왔고, 나처럼 이런 주변 경치가 좋아서 온 많은 사람들의 아이들 때문에 초등학교 부지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제는 푸른 숲이 아닌 콘크리트 건물이 서 있을 테고, 그 기계음에 산은 쉬지 못하고 늘 깨어있을 것이다. 초여름 숲 근처에는 산딸기들이 알알이 맺혀져 우리 집 베란다 한 귀퉁이에서 산딸기주가 되어, 여름 내내 술 익는 냄새로 가득했었다. 그 붉은 산딸기 덤불도 불도저의 큰 삽에 뽑혀졌고, 이제는 내 추억 속에서만 살아 남아 있다.

어찌 우리 동네뿐이랴. 지구촌 곳곳에는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문명의 세계는 야금야금 산림을 훼손하고 있다. 지구의 허파, 산소공장이라는 아마존 밀림조차 일 년에 여의도 부지의 배만큼 숲이 없어진다고 한다. 내 이이에게 걸어서 몇 걸음 안 되는 학교를 다닐 수 있는 편리함을 주기보다는, 창으로 사시사철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숲을 보여주고 싶다. 점점 사라지고 있는 우리의 숲을 바로 내 눈앞에서도 봐야만 하는 그 현실에 비애감이 밀려온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며 텔레비전을 본다. 이젠 현란하게 움직이는 액자를 보며 바보처럼 웃고 있다. 오염되지 않은 땅을 찾으러 이동하는 철새처럼, 어딘가에 숲이 보일 것 같은 내 안의 작은 창 그 액자는 차츰 추억 속으로만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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