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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기차가 가는 소리는 흔히 긴 여행과 고향을 생각하게 해준다.

고향이 그리울 때면 정거장 대합실에 가서 자기 고향 이름을 외치는 스피커의 소리를 듣고 온다는 탁목(琢木)이도 나만큼이나 고향을 못잊어 했던가보다. 아버지기 손수 심으신 아라사 버들이 개울가에 하늘을 찌를 듯이 늘어서 있고 뒤 울안에는 사과꽃이 피는 우리집.

눈 내리는 밤처럼 꿈을 지니고 터키 보석 모양 찬란했다. 눈이 오면 아버지는 노루 사냥을 가신다고 곧잘 산으로 가셨다. 우리들은 곳간에서 강난콩을 꺼내다가 먹으며 늦도록 사랑에서 아버지를 기다렸다. 수염 덥석부리 영감에게 나는 으레 옛날이야기를 해 달라고 졸랐다. 그러면 영감은

"어제 장마당에 가서 팔고 와서 없어." "아이 그러지 말구 어서 하나만." "이거 또 성화 났군. 그렇게 얘길 좋아하면 이다음에 시집갈 때 뒤에 범이 따라간단다." "그래도 괜찮아, 그럼 박첨지더러 쫓으라지. 무섭나, 뭐." 램프 불 밑에서 듣는 얘기는 재미있었다.

이런 밤이면 어머니는 엿을 녹이고 광에서 연시를 꺼내다 사랑으로 보내주셨다. 고향과 함께 그리운 여인이다. 내 어머니처럼 그렇게 고운 이를 나는 오늘날까지 보지 못했다. 어머니는 늘 옥루몽(玉樓夢)을 즐겨 읽으셨다. 읽으시고 또 읽으시고는 읽을수록 맛이 난다고 하셨다. 백지로 책 뚜껑을 한 이 다섯 질의 책을 나는 어머니의 기념으로 두어뒀다. 어머니가 보고 싶를 때면 장마다 어머니의 손때가 묻었을 이 책을 꺼내서 본다.

어머니의 책 읽는 음성이 어찌 좋던지 어려서 나는 어머니의 이 책 보시는 소리를 들으며 늘상 잠이 들었다. 이 고장 아낙네들은 머리를 얹는 것이 풍습이다. 공단결 같은 머리를 두 갈래로 나누어 땋아서는 끝에다 새빨간 댕기를 물려 머리를 얹고서 하아얀 수건을 쓰고 그 밖으로 댕기를 사뿐 내놓는다. 이런 모양을 한 고향의 여인들이 나는 가끔 그립다. 서울의 번화한 거리에서도 이따금 이런 여인이 보고 싶다.

뒤는 산이 둘러 있고 앞에는 바다가 시원하게 내다보였다. 여기서 윤선을 타면 진남포로, 평양으로 간다고 했다. 해변에는 갈밭이 있어 사람의 키보다 더 큰 갈대들이 우거지고 그 위에는 낭떠러지 험한 절벽이 깎은 듯이 서 있었다. 아래는 퍼런 물이 있는데 여름이면 이곳 큰 애기들은 갈밭을 헤치고 이 물을 찾아와 멱을 감았다. 물 속에서 헤엄을 치고 놀다가는 산으로 기어 올라간다. 절벽을 더듬어 올라가느라면 바위 속에서 부엉이 집을 보게 되고 산개나리꽃을 꺾게 된다.

산개나리를 한 아름 꺾어 안고는 산마루에 올라서서 수평선에서 아물거리는 감빛 돗폭을 보며 훗날 크면 저 배를 타고 대처(大處)로 공부를 간다고 작은 소녀는 꿈이 많았다. 내가 사는 데서 한 20리를 걸어가면 읍이었다. 고모님댁이 거기 있고, 또 성당이 있어서 가톨릭 신자인 우리집에선 큰 미사가 있을 때면 읍엘 들어가야 했다.

달구지를 타거나 걷거나 하는데, 고모집엘 갔다 올 때면 고모가 언제나 당아니(거위) 알을 꽃바구니에 하나 가득 담아 달구지 위에다 올려놔 주는 것이었다. 흔들거라는 달구지 위에서 이 당아니 알이 깨어질까 봐 나는 몹시 조심이 됐다.

펑펑 내리는 함박눈을 맞으며 달구지에 쪼그리고 앉아서, 눈 덮이는 좌우의 산과 촌락들을 보며 어린 나는 말이 없었다. 고향을 버린 지도 20여 년, 낯선 타관이 이제 고향처럼 되어 버리고 그리운 고향은 멀리 두고 그리게 되었다. 나는 고향에 돌아갈 기약이 없다.

앞마당에는 아라사 버들이 높게 서 있는 집, 거기엔 어머니가 계셨고, 아버지가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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