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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거미 / 배종팔

부흐고비 2021. 2. 1. 12:58

2007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당선

아무리 봐도 그는 신이 내린 건축가임에는 틀림없다. 덫이라 하기엔 짜임새와 균형, 간격이 한 치의 빈틈도 없어 적어도 먹잇감이 걸리기 전까진 아름답고 섬세한 고품격의 구조물이다.

눅눅한 이불을 널려 베란다 방충망을 열어놓은 사이, 거미가 들어와 베란다 들창과 회벽을 축으로 그물을 짰나 보다. 그물의 얼개가 되는 발판실과 세로실은 거미 뱃속의 점액이 공기와 맞닥뜨리는 순간 굳어진 거미줄로, 거미의 이동을 위한 통로이면서 그물의 축을 이룬다. 그러나 정작 사냥의 비결은 가로실에 있다. 가로실은 공기와 접촉을 해도 끈적끈적한 끈끈이로 남아 걸려든 곤충을 옴짝달싹 못하게 한다. 물살처럼 퍼져나간 동심원의 한가운데 블랙홀에 거미는 낮게 엎드려 이 가로실의 미동을 감지한다.

어린 고추잠자리 한 마리가 거미줄 가장자리에 걸려들어 퍼덕퍼덕 날개를 세차게 바동댄다. 잠자리는 바동댈수록 거미의 끈끈한 점액이 덧칠된 가로실에 더욱 말려든다. 완강한 떨림을 더듬이로 감지한 거미는 촉수를 세우고 가장자리로 걸음을 재촉한다. 물속에서 유충으로 견디고 풀잎에서 젖은 날개를 열고 이제 막 세상맛을 볼 즈음에 포식자의 올가미에 걸려든 어린 고추잠자리. 그의 꿈마저 거미줄에 돌돌 말려 박제되고 말라간다. 이윽고 잠자리는 거미의 가로실에 칭칭 감겨 하얀 고치가 된다. 어린 잠자리는 암흑 같은 고치 속에서 꿈을 사르며 생을 마감하고 있으리라.

한때 내 삶도 저 잠자리처럼 탈출구라곤 없는 고치 속에 갇혀 현실의 거센 물살에 휘둘리며 피동체로 부유한 적이 있다. 집착하듯 매달리던 고시 공부의 연속된 실패와 좌절은 어쩌면 인생의 쓴맛을 알게 하고 또 다른 도약의 소중한 발판이 되는 줄 알았다. 남편으로서, 가장으로서, 아버지로서의 짐을 직장과 부업에 허덕이는 아내 어깨 위에 고스란히 부려 놓고서, 어둡고 좁은 거미줄의 틈바구니에서 희미한 불빛을 좇아 꽤나 몸부림쳤다. 사회라는 가로실과 세로실의 직조 속에서 평평하고 걷기 편한 세로실만 딛다가 맞이한 가로실의 끈끈이는 늦깎이 사회 초년병에겐 감당하기 어려운 덫이었다. 내 서툰 발걸음은 잔뜩 차려 놓은 밥상에 젓가락질만 해도 된다는 식당 프랜차이즈 사업마저도 실패로 이어갔다. 하지만 실패는 가슴속에 더 큰 보상욕구를 갖게 했다. 급기야 고향 땅을 저당 잡히고 사채를 끌어들여 운영했던 입시학원도 채 삼 년을 넘기지 못하고 어이없이 파산하는 불운을 맞았다. 가혹하리만치 매서웠던 현실의 거미줄에 젖은 날개를 채 펴 보지도 못하고 덜미가 잡힌 잠자리 꼴이었다. 우편함에 꽂혀 있는 연체료 고지서와 빚 독촉장은 날을 바짝 세운 채 내 눈과 자존심을 날카롭게 찔러댔다. 그 파장은 아내와의 잦은 마찰로 이어졌다. 현실의 실체를 모르고 사회의 보호망 안에서 오로지 공부에만 몰두하던 때가 마냥 그리웠다. 삶의 어느 모퉁이에서는 한여름날의 버드나무 잎처럼 뜨거운 열기와 광풍을 온몸으로 견뎌야 하는 시기가 있나 보다.

다음 날 아침, 그물망엔 하얀 고치가 두어 개 더 늘었다. 그런데 동심원 한가운데 있어야 할 포식자가 눈에 띄지 않는다. 거미줄에 눈을 바투 대고 고치를 눈여겨 살피다 흠칫 놀란다. 박제된 잠자리 고치 옆에 작은 풀무치가 아직 생명의 냄새가 채 가시지 않을 만큼 생생하게 말려 있고, 또 반대편엔 왕파리만한 등에 한 마리가 완성되지 않은 고치로 걸려 죽었는지 미동조차 않는다. 뜻밖에도 거미가 그 등에 한쪽 날개에 배를 맞대고 죽어 있다. 짧은 순간, 소름 돋는 듯한 서늘함이 등줄기를 훑고 내려 나는 그 자리에서 붙박이가 된 듯 꼼짝도 못했다. 가로실에 걸려 발버둥치는 잠자리의 애처로운 몸짓을 보며 내 처지를 잠자리에 비유해 안쓰러움을 가졌는데, 세상이 냉혹하고 살벌한 곳임을 모르고 섣불리 날다 고치가 된 잠자리가 나와 닮은꼴이라 연민까지 느꼈는데, 포식자 거미가 잠자리보다 더 비참하고 초라한 꼴로 죽어 말라 있다니.

거미는 욕심을 부렸나 보다. 잠자리의 진액을 채 삭이기도 전에 풀무치가 거미줄에 걸려들었겠지. 꽁무니에서 성능 좋은 가로실을 마구 뽑아내어 풀무치를 둘러쳤으리라. 그런 와중에 걸려든 달콤한 먹잇감 등에를 보고 마음은 더욱 바빴을 게다. 풀무치 고치를 완성하지 못한 채 반대편으로 건너와 등에 몸통을 가로실로 서둘러 둘러치다 그 줄에 자신도 모르게 걸려들었나 보다. 아직도 풀무치는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의 나처럼 살려고 발버둥치며 움찔거리건만, 거미는 죽어 이미 말라가고 있다. 가로실을 마구 뽑았듯이 그는 욕심도 가슴에서 맘껏 방사했으리라. 풀무치와 등에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하거늘 과욕의 채에 그만 발목을 잡히고 만 것이다.

내가 그 광경에서 형언할 수 없는 묘한 기분에 휩싸인 건 조금 전 등줄기를 서늘하게 훑고 지나간 소름의 근원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시행착오를 겪고 좌절의 구렁텅이에서 여러 차례 헤어나지 못했던 건 사회 초년병이란 경험 미숙보다는, 저 거미처럼 성급함과 과욕에서 비롯됐다는 생각이 뇌리를 휙 긋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내 자신을 과신하여 능력 밖의 고시 공부에 세월을 허송하고, 학원 운영이든 프랜차이즈 사업이든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경험의 돌을 쌓으려 하지 않고, 펼치기만 하면 큰돈이 한꺼번에 굴러올 것 같은 성급함과 과욕에 젖어 스스로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내몬 꼴이 아닌가. 가장의 몫과 경제적 부담을 고스란히 아내에게 떠넘기고 내 욕심껏 공부하고, 독선과 고집으로 사업을 계획하고 확장에만 급급했으니……. 성년이 되면서 가슴 한켠에 남모르게 키워온 열등의식과 그 보상 욕구가 나를 고시와 사업이라는 한탕주의로 내몰았는지도 모르겠다. 야망이란 이름 아래 한껏 탐욕만 키워오다 가로실이 내 발목을 옥죄어 오는 줄도 모르고 자멸의 길로 치달았다. 어느새 나는 날카로운 촉수를 세우고 명예와 부, 기회를 한꺼번에 좇는 욕망의 아귀가 큰 거대한 거미가 돼 있었던 것이다.

아내는 고치가 보기 흉하다며 잠자리와 풀무치가 말라붙은 거미줄 한쪽을 파리채로 걷어냈다. 동심원의 왼쪽이 뻥 뚫린 채 간격과 탄성마저 느슨해진 거미줄은 이제 더 이상 덫과 사냥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 이제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겠다. 구멍을 깁고 느슨한 거미줄을 팽팽하게 죄어 거미줄 본래의 기능을 회복하는 건 이제 내 몫이 되었다. 해도 안 된다는 열등의식과 좌절감을 핑계로 촉수마저 움츠리는 건 나태와 포기의 상징이리라. 비록 거미줄 한쪽이 허물어 상처투성이긴 해도, 희망이란 조각을 덧대어 꿰매고, 용기란 세로실로 차근차근 깁다 보면, 어느덧 마음을 비운,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 보다 작은 것, 사소해서 도외시했던 것, 가까이 있어 더욱 소중한 것의 가치를 알기 위해 가족과 주변부터 눈여겨 살펴야겠다. 밤이 이슥하도록 이 학원 저 학원 전전하는 프리랜서 논술강사라는 지금의 내 일에 만족하는 여유부터 익혀야겠다.

그동안 나는 몸집이 작고 아귀와 촉수만 큰 기형의 거미였나 보다. 사냥감을 포획하는 데 쓰는 가로실이 또한 나를 옭아매는 죽음의 줄인 줄도 모르고 꽁무니에서 마구 뽑아댔다. 내겐 나방의 체액을 단숨에 흡입할 수 있는 강력한 촉수와 감아 놓기만 하면 올무가 되어 나방의 숨통을 죄는 가로실이 있다고 믿었기에, 거미줄에 걸려든 모든 날벌레가 내 것이 되는 줄만 알았다. 하지만 나는 부실한 촉수와 가로실조차도 없이 허망한 신기루를 좇아 막무가내로 달려온 것을 안 지금. 동심원의 한가운데를 벗어나 구멍이 뚫리고 줄이 느슨해진 가장자리와 테두리를 살피며 발판실과 세로실을 뽑을 준비를 한다. 동심원의 얼개가 얼추 완성되면 가로실도 뽑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꽁무니의 방적돌기가 꽤 아플 테고 또 가로실이 내 발목을 채는 그물이 될까 봐 두렵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런 두려움은 전혀 개의치 않으련다. 내 거미줄에 아무리 많은 먹잇감이 걸려들더라도 내 가로실이 감당할 만큼만 포획하고, 작은 곤충의 체액으로도 포만감을 느끼는 법을 알았기 때문이다.

한쪽이 텅 빈 상처투성이의 거미줄은 베란다 창으로 비껴 든 가을햇살을 온몸으로 만끽하고 있다.

 

 

배종팔 씨 당선 소감 - "상처투성이 작품 부끄러울뿐"

좋은 글을 쓸 땐 처음부터 팬 끝에 힘이 실린다. 얽힌 실타래가 술술 풀리듯 글이 저 혼자 알아서 길을 찾는다. ‘거미’는 가로실로 짜고 세로실로 엮어 동심원에 이르기까지 꽤 공들인 집이다. 발판실을 잘못 디뎌 옆길로 빠지는 거미를 다시 동심원 안으로 끌어들이기를 몇 번……. 내 능력의 부재를 흠씬 느끼게 했던 상처투성이의 집이다. 하지만 그런 거미를 통해 속내에 참았던 말들을 한꺼번에 토해내는 카타르시스를 맛보았다. 장르를 불문하고 글이란 고통과 성취감이 맞물린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생각이다. 짙은 안개 속에서 길을 찾아 헤매다 지친 끝에 목적지에 이르고서야 느끼는 쾌감. 그 완성의 성취감 덕분에 글을 쓰는 게 아닌가 싶다. 이것에 더하여 당선은 내게 성취감의 극한치를 맛보게 한다. 퇴고를 끝내고 우체국을 나서면서, 후련함 끝에 글을 좀 더 갈무리 못한 아쉬움이 앙금처럼 남았다. 당선이 되었다 하여 그 아쉬움이 완전히 치유되는 것은 아니리라. 앞으로 글쓰기란 이런 아쉬움을 하나하나 지워가는 수행의 과정이 아닐까 싶다. 용케도 부실한 꽁무니로 첫 실을 뽑았다. 이제 세로실과 가로실로 멋진 얼개의 집을 짓는 건 내 몫이리라. 내공을 튼실하게 쌓다 보면, 언젠가 비바람을 너끈히 견딜 집 하나쯤은 내 가슴에 지워져 있으리라.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전북도민일보와 심사위원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라대곤 수필가 심사평 - "정교·치밀한 감성의 직조 훌륭"

올해 수필부문 응모작은 37명 54편이었다. 특기할 것은 풍성한 응모작 수에 비해 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작품의 질이 많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신진작가를 발굴하려는 신춘문예의 특성을 알고 경건한 마음으로 응모하려는 풍토가 조성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종까지 선자의 손에 남은 작품은 강경채씨의 '그녀의 눈동자와 배종팔씨의 '거미'다. 강경채씨의 '그녀의 눈동자'는 문장의 길이도 적절하며,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기다림'이라는 주제를 천착하며 흐름을 놓치지 않는데 성공한 작품이다. 그러나 작품 말미에 여러 경우의 '기다림'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긴장감이 흔들리는 것이 흠결이 보였다.
배종팔씨의 '거미'는 거미줄을 무대로 벌어지는 삶의 결을 세밀하게 관찰하여 인간세계의 성공과 실패의 결을 잘 포착한 작품이다. 소재도 신선하고 주제를 형상화하는 솜씨도 뛰어나다. 정교하고 치밀한 감성의 직조도 높이 샀다. 글말형태(문어체)의 문장 및 군데와 매끄럽지 못한 곳이 마음이 쓰였으나 이는 작가가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곧 좋아질 것으로 보였다. 좀더 노력하는 좋은 작가가 될 소지가 보여 배종팔씨의 '거미'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더욱 정진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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