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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익, 휘익.”

뱀이 보내는 신호다. 한밤의 검은 휘장을 찢는 소리, 무겁게 내리누르던 적막을 걷어 올리는 소리, 잠잠한 대기를 휘저어 바람을 일으키는 소리…. 나에게는 그것이 봄이 왔다는 신호다.

3월 26일 새벽 3시. 작년보다 이틀이나 늦었다. 날짜를 확인하면서 먼저 든 생각. 작년엔 3월 24일에, 그 전해엔 3월 25일에 그 소리를 들었다. 날짜를 기억하는 이유는 그해의 3월은 그날이 마지막 날이기 때문이다.

자투리 날들은 4월에 이어 붙인다. 내 달력엔 4월 35일인 해도 있고 4월 37일인 해도 있다. 봄을 맞이하는 나만의 방식이다. 다른 사람은 남녘의 꽃소식으로,아니면 달라진 기온으로 봄을 느끼겠지만, 나는 다르다. 뱀이 신호를 보내야 봄이 시작되는 것이다.

“휘이익”

밤에 듣는 짧고 높고 강한 외마디 소리. 그것은 어떤 소리와도 섞이지 않는다. 깜깜한 허공을 간단없이 가르고 저쪽 산에서 이쪽 산을 일직선으로 가로지른다. 그 소리에 대기가 움칠하는 것을 나는 이불 속에서도 느낀다.

뱀은 그렇게 눈을 뜬다.

“어젯밤에 뱀이 울었어. 드디어 봄이 온 거지.”

내가 들뜬 목소리로 전화를 하면 사람들은 모두 의아해한다. 왜 하필 뱀이냐는 것이다. 민들레 싹이 나왔다든지, 매화가 벙글었다든지 얼마든지 봄을 발견할 수 있는 게 지천인데 뱀이라니 밤중에 음산하고 괴기스러운 소리를 들으면 무섭지 않는냐고도 한다. 그래서 그 소리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말하지 못한다.

“이맘때 뱀이 내는 소리는 동면에서 깼다는 신호야. 사실 뱀은 소리를 내지 못해. 성대가 없거든. 몸통의 수백 개 뼈마디를 부딪쳐서 나오는 커다란 숨, 그러니까 한숨인 셈이지.”

그런 말을 하다 보면 애틋하고 절실한 감정이 가슴 밑바닥부터 차오르곤 한다. 해마다 3월이면 어김없이 도지는 불안과 우울증, 무력감으로 얼마나 힘들었는지, 오래전 우연히 뱀이 우는 소리를 들었던 날부터 말끔히 털고 일어났다는 것을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어렸을 때는 3월 한 달이 막연히 힘들었다. 3월이 되어 학년이 바뀌면 선생님도 친구도 바뀌는 것이 낯설었다. 새롭게 시작하는 모든 것이 두려웠다. 선생님과 친구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이 되어 짐짓 명랑한 체하며 먼저 다가가돈 했다. 사실은 그러고 싶지 않은데 가만히 있는 것도 불편했다. 집에 돌아올 땐 그날했던 행동이 후회스럽기까지 했다. 소심한 나와 안 그런 척하는 나는 좀체 손잡지 못했다. 진학도 마찬가지였다. 중학생이 되어서는 초등학교를 찾아가고, 고등학생이 되고도 중학교 교정을 배회하곤 했다. 나는 앞으로 나갈 생각은 안 하고 뒷걸음질을 했다.

중3이 된 3월 어느 날, 더 이상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 준 생리혈을 발견했을 때 나는 내 몸이 싫었다. 그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스무살의 3월이었다. 친구도 선생님도 곁에 없는 사회에 내몰려서 이름 대신 미쓰 리로 불렀을 때, 그 3월은 유난히 바람이 맵고 시렸다.

그뿐이 아니었다. 소중한 사람들은 3월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내 곁을 떠났다. 아버지도 은사님도 그리고 몇 사람이…. 봄에 희망을 거는 건 가당치 않다는 듯 냉정하고 오만하게 등 돌린 3월은 마른 잔디를 입힌 무덤가에 남은 사람들을 세워놓았다. 그 자른 떠난 사람의 빈자리보다 산 사람들이 앞날을 걱정하느라 ‘제 설움에 겨워 우는’자리였다. 남은 사람들은 이전과는 달라진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새 학년이나 첫 사회생활과는 비교할 수 없이 낯설고 불안한 날을 앞에 내놓는 3월은 계절이 아니었다. 불온한 경계일 뿐.

오랫동안 3월이 되면 어김없이 우울과 불안이 도져서 포승줄에 묶인 것처럼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했다. 어렸을 때 줄에 묶였던 코끼리는 나중에 그것을 풀어주어도 제 반경을 넘지 못한다는데 3월 한 달을 매년 그렇게 허비했다.

그러다 깊은 밤에 고음의 휘파람 소리를 듣게 된 것이다. 고막을 뚫고 가슴을 관통하는 그 소리는 다음날, 그다음 날에도 들렸다. 전신을 관(管)삼아 토해내는 큰 한숨 같았다. 나는 드디어 뱀이 눈을 떴다고 생각했다. 근거도 없이 내내 찍어 누르고 있던 무기력과 불안을 거둬줄 거라고 믿으면서 잠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10년 가까이 뱀이 우는 소리에 기대어 3월을 견딜 수 있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하는 말이 그 소리는 뱀이 우는 소리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내가 올해는 뱀이 이틀 늦게 울었다는 말을 했을 때였다.

“아니 그러면 나는 누가 일으키라고….”

마치 일 년 내내 3월에 갇혀 지내야 한다는 말처럼 들렸다. 뱀이 3월 말에 동면에서 깨는 것도 이르다는 말을 귀까지 전달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내가 뱀이 운다고 했을 때 남편이 돌아누우며 무슨 소리냐고 했던 기억이 났다.

환청이 들었던 것일까. 하루 이틀 차이나는 날짜까지 기억하고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소리는 새나 다른 짐승이 낼 수 있는 소리가 아니었다. 목에서 나오는 소리로는 대지를 흔들만큼 진동을 전달할 수 없을 테니까. 그것의 뱀의 신호여야 했다. 적어도 내겐.

겨울 동안 눈꺼풀이 없어 뜬눈으로 웅크리고 있던 뱀이 일어날 때는, 봄을 기다렸던 것이 아니라 독니로 겨울의 허리를 끊어버리는 것이어야 한다. 대기가 따뜻해져서 땅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냉혈의 몸을 비벼 대기를 덥히는 것이어야 한다. 차가운 공기를 기다란 몸 깊숙이 들이마셔서 한 번에 토해낼 때, 뜨거운 한숨이 대지를 녹이는 것이어야 한다. 뒤로 갈 수 없는 뱀이 앞으로만 가든 돌려가든 제 길을 찾아가듯 그에 밀려서 나도 뒷걸음질을 멈추고 앞으로 걸어가야 한다.

나는 그의 말을 듣지 않기로 했다. 그래야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뱀의 신호로 우울에서 조증으로 튀어 오르듯. 방치했던 삶을 알뜰하게 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부리나케 청소를 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꽃모종을 사다 심고 사람들을 만나러 나갈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는 동안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음 즈음엔 가을이 깊어갈 것이다. 수척해진 앞산을 보며 뱀이 동면에 들 때가 가까워졌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나의 한 해도 다 간 셈. 나 또한 동면을 준비할 것이다. 내 안에서 잠든 뱀이 3월이 되면 먼저 눈 뜰 것을 믿으면서, 시나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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